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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월)

추락하는 제주관광, 만족도보다 심각한 '가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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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제주가 추락하고 있다. 올해 여름휴가 만족도 조사에서 중위권인 7위로 내려 앉은 데 이어, 처음 측정된 가심비에서 16개 광역시도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가심비가 여행 의사결정의 전과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근시일안에 만족도가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여행 리서치 전문기관 컨슈머인사이트는 '연례 여행 만족도 조사'일환으로 올해 여름휴가(6월~8월) 목적으로 국내 여행을 다녀온 소비자 1만 7000명을 대상으로 만족도를 조사했다. 결과는 16개광역 시도(세종시 제외)별로 비교했다.

시도별 가심비 차이의 원인 분석을 위해 각 지역의 '여행자원 매력도'와 '여행환경 쾌적도' 10개 세부 항목 점수와 순위도 비교했다. 세부 항목은 '여행자원 매력도' 측면 5개(△쉴거리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 △살거리)와 '여행환경 쾌적도' 측면 5개(△청결·위생 △편의시설 △물가·상도의 △안전·치안 △교통환경)였다.

광역시도별 여행경험자가 평가한 가심비는 광주(64.4%, 1위), 전북(60.9%, 2위), 전남(59.6%, 3위) 순으로 호남지역 3개 시도가 최상위권을 독식했다.

그 뒤를 강원도, 경상도, 충청도 등 도 지역이 차지했고, 서울, 부산, 인천, 대구, 울산 등의 대도시는 하위권에 머물렀다.

제주도는 42.9%라는 가장 낮은 평가로 16개 시도 중 최하위가 됐다.

전자신문

2024년 국내 여름휴가 가심비 평가표. (표: 컨슈머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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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심비는 '지출 비용에 합당한 심리적 만족'이 있는가를 따지는 개념이다. 본래는 점심값과 비슷한 커피 가격의 지불을 합리화하려는 소비현상을 설명하는 데서 출발했다. 그러나 높은 물가와 소득 감소에 따라 지출 여력이 줄어들면서 '비용과 투입에 맞는 만족도가 있는지'를 따지는 개념이 됐다. 경기 침체로 식비마저 줄이는 여행의 초긴축 성향이 심화되면서 여행 소비자는 지출에 대해 훨씬 더 신중하고 계산적인 성향이 됐다.

최근 가심비는 꼭 필요한 것에 대한 '합당한 지출'을 의미한다. 컨슈머인사이트는 “금액과 관계없이 '부당하다'고 느끼면 실망을 넘어 분노하게 된다. 이 분노는 흔히 SNS 등을 통해 표출되고, 걷잡을 수 없는 집단 비난과 공격으로 발전한다”며 “순식간에 유명 여행지에 오명을 씌우고 배척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고 짚었다.

국내여행에서 가심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해외여행과 달리 여행비용으로 보인다. 1일 평균 비용이 가장 작은 광주(6.3만원)가 1위, 가장 큰 제주(13.4만원)가 최하위인 16위를 차지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부산, 서울, 인천(각각 비용 15위, 14위, 13위)과 같은 고비용 대도시들이 모두 하위권(각각 11위, 13위, 15위)에 몰린 것도 그 이유다. 이에 더해 호남 3시도가 상위권을 독식한 것은 먹거리 평가에 힘입은 바 크다.

해외여행에서도 1일 평균비용이 가장 작은 베트남(19.8만원)이 31개국 중 1위에 올랐고, 저비용 2, 4, 7위인 태국, 대만, 일본이 상위권(각각 12위, 9위, 8위)에 올랐다.

제주 여행비는 전국 평균(8.8만원)의 1.5배, 가장 적게 드는 광주의 2배가 넘고, 일정도 평균 4.1일로 전국평균(2.9일)의 1.4배에 달한다. 이를 보면 제주도의 고비용은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문제는 비용 자체가 아니라 '합당한 비용으로 소비자에게 받아들여 지는지' 여부다. 종합만족도를 구성하는 여행 콘텐츠와 인프라에 대한 10개 평가항목 중 제주도는 거의 전 항목에서 중위권 이상의 평가를 받았으나, 단 하나 물가·상도의에서 16위로 최하위였다. 가심비 최하위 평가는 실제 지출비용이 많은 것보다는 거의 전적으로 물가-상도의에서 '합당하지 않다'고 평가받은 것에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제주도의 낮은 가심비는 충분히 예견됐던 것이다. 전체 여행 과정에서 계속 부진한 결과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컨슈머인사이트는 “'가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는 관심도, '여행지로 고려하고 있다'는 계획률, '실제 여행을 다녀온' 점유율, '여행 종합만족도'와 '추천의향', '재방문 의향' 등 모든 지표에서 2022년 이후 하락세를 이어왔다. 코로나 엔데믹 시 급상승한 후 바로 급하락세로 반전했으나 이에 대한 대처는 크게 미흡했다”고 부연했다.

컨슈머인사이트는 낮은 가심비가 여행 전과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여행의향 감소→여행계획지 선정 제외→방문자 감소→만족도 하락→가심비 하락의 악순환이 이어진다. '물가·상도의'가 좋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은 십중팔구 확증편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한 제주도의 미래는 암울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반면 대전시에서는 제주도와 반대되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대전은 지난 7년 동안 여행자 만족도 최하위를 6번 차지하며 '노잼도시'라는 오명에 시달렸으나, 올해는 중위권(10위)으로 뛰어오르며 '먹(거리)잼도시', '살(거리)잼도시'로 변신했다. 배경에는 물가·상도의(1위), 먹거리와 살거리(각각 4위), 가심비(8위) 뿐만 아니라 여행객 수 증가도 있었다. '성심당' 효과다. 빵 하나가 대도시 하나를 살릴 수도 있고, 비계삼겹살 한 조각이 천혜의 자연 자원을 날릴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해외 여행도 마찬가지다. 가장 가심비가 높은 베트남, 일본, 대만(각각 1, 8, 9위)은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과 높은 만족도로 한국 여행객을 끌어 들이고 있다.

컨슈머인사이트는 “올해 조사에 처음 도입된 가심비는 소비자가 여행지에 투입한 비용과 지출에 대한 총합적 평가를 반영하는 지표”라며 “여행소비자 행태를 이해하고 예측하는데 매우 유용한 지표로 판단된다. 향후 이를 식음료, 숙박, 교통, 물가, 기타 비용 등으로 측정 항목을 세분화해 보다 정밀하고 활용도 높은 지표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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