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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투란도트의 힘… 큰 스케일 파도 타고 감동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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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KSPO돔에서 개막한 ‘투란도트’

오렌, 40년간 베로나 페스티벌 지휘

푸치니 음악 세부까지 완벽 장악

밀도 높은 조명 무용-의상 화려… 눈에 안 띄는 군중 움직임도 생생

동아일보

12일 서울 송파구 KSPO돔에서 개막한 아레나 디 베로나의 푸치니 ‘투란도트’는 규모와 세밀함을 함께 갖춘 장려한 무대와 지휘자 다니엘 오렌의 박력 있고 꼼꼼한 해석, 독창진과 합창단의 성의 있는 가창이 어우러진 공연이었다. 12일 공연이 끝난 뒤 투란도트 역 소프라노 옥사나 디카(가운데 흰 옷)를 비롯한 출연진이 관객들의 갈채에 답하고 있다. 솔오페라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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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는 수백 명에서 천 수백 명의 관객에게 들려주기 위해 400년 이상 진화된 장르다. 관객 1만 명을 넘보거나 이를 넘는 대형 공간에서 공연되는 오페라가 20세기에 개발됐지만 이 경우 음악과 무대의 디테일을 일부 희생하고 규모가 주는 압도감으로 감동을 대신하는 일이 흔하다.

12일 서울 송파구 KSPO돔에서 개막한 ‘2024 오페라 투란도트 아레나 베로나 디 오리지널’은 이런 평범한 생각을 뒤집었다. 고 프랑코 체피렐리가 설계한 무대는 눈에 띄지 않는 군중 한 사람까지 시종일관 숨 쉬듯 움직이게 만들었다. 밀도 높은 조명부터 화려한 무용과 의상까지 볼거리가 넘쳤다.

40년 동안 이탈리아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에서 지휘해온 지휘자 다니엘 오렌도 이에 상응하듯 푸치니 음악의 세부까지 완벽히 장악했다.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오렌의 지휘 동작은 열 개 손가락으로 오디오 믹싱 장치를 조종하는 듯했다. ‘푸치니가 가진 색감을 중간 정도만 연주한다면 그의 음악을 파괴하는 것’이라는 그의 자신감은 과장이 아니었다. 그는 템포를 약간 당겨 잡고 선이 굵은 ‘투란도트’를 이끌어 냈다.

1막, 조명이 켜지기 전부터 무대 위 ‘베이징의 백성들’은 바쁘게, 한가롭게, 무심하게 각자 다른 거동으로 움직여 다녔다. 합창단에 일부 무용단이 가세한 이 ‘백성들’은 음악이 시작되면서 유기적인 표정을 갖추기 시작했다. 거대한 호수 위에 바람이 물결을 만들 듯 이들은 칼라프 왕자의 도전을 응원하고, 관리들의 폭력에 한숨을 내뱉고, 때로는 지배자의 폭력에 영합해 희생자를 겁박하는 수많은 ‘익명’들에게 적절한 밑바탕을 제공했다.

주역 가수들은 공연 일자에 따라 세 개의 팀으로 나뉜다. 개막일 공연에서 가장 큰 갈채를 끌어낸 주인공은 시녀 류 역의 소프라노 마리안젤라 시칠리아였다. 1막 아리아 ‘주인님 들으소서’에서부터 그의 호소력 있는 음색과 여린 탄원의 피아니시모는 객석을 사로잡았다. 극 초반의 이 아리아부터 예상을 뛰어넘는 갈채가 터졌다. 그의 탁월한 음성 연기는 류가 자신을 희생하는 3막 아리아 ‘얼음의 마음을 지닌 공주여’에서 깊이 가라앉는 비극적 분위기를 넘어 다시 한 번 큰 갈채를 이끌어 냈다. 공연 뒤의 커튼콜에서 가장 큰 박수를 받은 사람도 류 역의 시칠리아였다.

목숨을 건 수수께끼에 도전해 사랑을 쟁취하는 칼라프 왕자 역은 독일 테너 마르틴 뮐레가 맡았다. 노래의 프레이즈(분절)를 자신에게 편한 호흡에 맞춰 빠르게 끌고 가는 인상이 있었지만 서정적인 표현과 칼칼한 표정을 함께 갖춘 결을 가진 그의 영웅적 음색은 이 ‘막무가내 도전자’ 역에 제격이었다. 2막의 ‘공주여, 그대의 열렬한 사랑을 원할 뿐이오’ 장면에서 그는 남녀 영웅의 팽팽한 대결에 걸맞은 강렬한 높은 C(도)음을 뽑아냈다.

이날의 투란도트인 소프라노 옥사나 디카의 ‘현실적’인 음색은 초월적인 투란도트 공주와 결이 다른 면이 있었다. 칼라프의 부왕(父王)인 티무르 역 베이스 페루초 푸를라네토는 약하고 탄식만 하는 노인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티무르의 모습을 선보였다.

뉴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위너오페라합창단은 큰 갈채를 받을 만했다. 오렌의 지휘가 세부까지 빛을 발한 데는 그 섬세함에 치밀하게 반응한 이들의 공이 컸다.

‘2024 오페라 투란도트 아레나 베로나 디 오리지널’은 19일까지 이어진다(14일 공연 없음).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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