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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그 시간은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한국 향해 공 돌린 北, 무엇을 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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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평양 상공에 한국 무인기가 침투했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며 “참변”과 “전쟁 발발”까지 운운했다. 무인기의 실체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는 가운데 북한은 이례적으로 “철면피한 대한민국 족속들”에 의해 평양 상공이 뚫렸다는 소식을 대내적으로도 알렸다. 이를 북한 주민의 대남 적개심 고취에 활용하는 한편 대남 도발의 명분으로 삼으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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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북한 노동장 부부장. 조선중앙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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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은 12일 밤 담화를 통해 “군부가 하지 않았다고 뻔뻔스레 잡아뗀다고 하여 우리 국가에 대한 중대 주권 침해행위를 무난히 넘기고 국제사회의 우려의 시선을 피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고 밝혔다.

군이 “북한 주장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해줄 수 없다”고 공식 입장을 낸 데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는》 주권침해도발이 반복되여도, 그것이 전쟁발발에로 이어져도 저들에게는 아무러한 책임도 없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선포한 것이나 같다”고 비아냥댔다. “우리 수도의 상공에서 대한민국의 무인기가 다시 한 번 발견되는 그 순간 끔찍한 참변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면서다.



무인기 정체 논란…軍은 아니라는 데 무게



앞서 북한 외무성은 지난 11일 “10월 3·9·10일 심야에 한국이 무인기를 평양에 침투시켜 전단을 살포했다”며 열상감시장비(TOD)로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무인기 형상 물체와 대북 전단 사진을 공개했다.

군이 무인기를 날려 보냈을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평가된다. 복수의 정부 소식통은 “정전협정 위반에 해당하는 무인기 침투를 군이 선제적으로 실시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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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외무성은 지난 11일 저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중대 성명을 발표하고 "한국은 지난 3일과 9일에 이어 10일에도 심야시간을 노려 무인기를 평양시 중구역 상공에 침범시켜 수많은 반공화국 정치모략 선동 삐라(대북전단)를 살포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감행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청사구역 상공에서 삐라를 살포하는 적무인기"라고 쓰여 있다. 조선중앙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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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단체일 가능성도 있다. 기술적으로 민간 무인기를 평양까지 약 140㎞를 날려 보내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를 연이어 세 차례나 성공적으로 평양 상공에 진입시킬 확률이 크지 않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동시에 나온다.



전단 평양 도달하자 수습책으로? 北 ‘자작극’ 의혹도



북한이 공개한 사진에 고정익 무인기가 담긴 점도 의문스럽다. 프로펠러 드론이 아닌 고가의 고정익 무인기는 민간에서 구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군 안팎에선 북한 당국이 사실을 왜곡해 부풀리고 있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와 관련, 최근 한 민간단체가 보낸 풍선이 북한 ‘종심’까지 도달한 적이 있다고 정보 소식통은 전했다. 이때 대북 전단이 평양에 떨어졌을 수 있는데, 북한이 무인기라는 자작극적 요소를 더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일각에선 북한 내 반정권 소행에 한국을 끌어들였다는 시각도 있다.



작정한 듯 대남 적개심 선전전



주목할 대목은 북한이 사실상 영공 방어에 실패했다고 볼 수 있는 무인기 침투 사태를 오히려 이슈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이날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 1면에 김여정 담화를 실으면서 “온 나라가 분노의 활화산으로 화했다”고 강조했다. “괴뢰 한국 쓰레기들'이 천추에 용납 못할 짓거리를 감행했다는 소식에 접하고 피가 거꾸로 솟아올랐다”는 등 주민 여론을 전하면서다.

북한은 전단 사진까지 공개했는데, 김정은 부녀의 명품 착용이 소재였다. 흐리게 처리하긴 했지만, 사진을 조금만 확대하면 내용물 추정이 가능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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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노동신문을 통해 공개한 대북 전단. '자기배 불리기에 여념 없는 김정은' '연소득으로 구매 가능한 식량 비교' 등 문구와 함께 김정은 딸 주애가 입은 명품 패딩 사진이 담겼다. 노동신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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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권이 이처럼 ‘최고 존엄 모독’을 담은 전단까지 공개하는 위험을 감수한 건 대남 적개심을 끌어올리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게 정부의 평가다. “(군사행동의)그 시간은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다”는 대목에서는 책임을 한국에 돌리고 도발의 명분을 쌓으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이에 대해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은 13일 오전 KBS에 출연해 “북한이 체제 위협을 확대·강조하는 게 내부 통제에 이점이 있다고 본 것”이라며 “그만큼 내부가 흔들린다는 방증”이라고 해석했다.

국방부도 이날 입장을 내고 “김정은 일가의 거짓 독재정권에 지쳐있는 북한 주민들의 적개심이라도 이용해 보려는 노림수”라고 꼬집었다. 또 “북한이 평양 상공이 뚫린 것을 두고 '끔찍한 참변', '공격태세'를 운운하는 것은 독재정권이 느끼는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실제 북한의 과민한 대응에선 초조함도 묻어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여정은 “참변”을 거론하면서도 담화를 “나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한다”고 마무리했다. 보복 조치를 예고하면서도 “반복되는 도발시” 등 조건을 수차례 되풀이했다.



"확인 않는다" 軍 모호한 대응…어떤 실익 있나



이와 관련, 긴장 완화보다는 강경 대응에 더 방점을 찍는 듯한 정부 대응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당초 북한 외무성 발표 후 상황을 파악하고 “사실이 아니다”와 “확인해 줄 수 없다” 등 두 개의 입장을 검토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전략커뮤니케이션(SC)이 후자로 가닥이 잡힌 건 북한의 의도에 말려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정부 관계자는 “사실 관계를 놓고 북한과 진실 공방을 벌이다가 자칫 남남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고 말했다.

신원식 실장도 방송 출연에서 “확인해 준다는 것 자체가 북한이 원하는 우리 내부 갈등을 야기할 것”이라며 “경험에 의하면 제일 좋은 최고의 정답은 무시”라고 말했다.

군 당국은 모호성을 통해 북한의 대응에 혼선을 초래하는 일종의 ‘심리전’ 효과를 의도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진위 여부를 떠나 북한이 이번 사건을 남북 관계 단절을 통한 ‘적대적 두 국가론’에 당위성을 부여하거나 도발의 빌미로 활용할 게 자명한 가운데 이런 대응이 오히려 북한을 지나치게 자극할 가능성도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모호한 태도에 따를 수 있는 부작용을 생각해야 한다”며 “북한이 ‘정부 주범론’을 계속 제기할 경우 안팎으로 난처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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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평양 상공에서 9일 포착했다고 주장하는 한국 무인기. 조선중앙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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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북한이 자살을 결심하지 않을 것 같으면 전쟁을 일으키지 못한다”(신원식 실장)거나 “북한이 우리 국민 안전에 위해를 가한다면, 그 날이 바로 북한 정권의 종말이 될 것”(국방부 입장)이라고 밝히는 등 앞으로도 강경한 입장을 이어갈 분위기다. 억제력을 강조하는 측면이지만, 일각에선 위기 관리 노력이 아쉽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남북한 모두가 지금처럼 역대급 대결 자세를 유지할 경우 군사적 충돌까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북한 쓰레기 풍선에 GPS 탑재



한편 군 당국은 이날 북한이 그동안 부양한 쓰레기 풍선 일부에 위성항법장치(GPS)가 탑재돼 있다고 밝혔다. 군 관계자는 “원격조종이나 유도 목적이 아니라 GPS로 이동 경로에 대한 정보를 축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정 풍향에서 풍선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면 발열 타이머의 작동 시간을 조정해 원하는 지점에서 풍선을 터뜨리는 게 수월해지는 만큼 군은 다양한 가능성을 놓고 추가 분석을 진행 중이다.

이근평·박현주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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