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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 (일)

성희롱·성폭력 경험한 서울 의료인, 검·경 신고율 0%…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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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재택치료관리 상황실에서 의료진들이 분주하게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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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의료인을 성희롱하는 등 병원 내 성희롱·성폭력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인들은 대부분 환자로부터 피해를 보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절반 이상은 신고하거나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넘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의회는 서울시 산하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의료인 300명을 대상으로 병원 성차별·성범죄 현황, 성평등 수준 등을 설문 조사한 결과를 13일 발표했다. 지난 7월 11일부터 24일까지 서울시 산하 공공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의료인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다.

서울시의회, 의료인 300명 설문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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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의료인 성희롱 성폭력 피해 경험 여부. 그래픽=박경민 기자


조사 결과 최근 1년간 병원 내에서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11.3%(34명)였다. 의료인 10명 중 1명 이상이 최근 1년간 병원 내에서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당했다는 뜻이다.

가해자 유형을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환자로부터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겪었다는 응답이 76.5%로 가장 많았다(복수 응답 허용). 수직적 위계관계에 있는 상급자(20.6%)나 동료·하급자(5.9%) 등 같이 일하는 의료인에게 당한 경우는 26.5%였다. 환자의 보호자(17.6%)가 뒤를 이었다.

응답자 성별로 보면 남성은 7.1%, 여성은 12.0%가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에는 성희롱·성폭력 피해자의 다수가 여성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남성도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통계로 드러난 셈이다. ‘남녀 고용 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2조 2호는 성희롱 피해자의 성별을 제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남성도 성희롱 피해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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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성폭력 가해자의 유형. 그래픽=박경민 기자


11% “성희롱·성폭력 경험”…64.7% “참고 넘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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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성폭력 대처 방법. 그래픽=박경민 기자


논란이 된 건 피해 대처 방법이다. 의료인들에게 성희롱·성폭력 피해 때 어떻게 대처했는지 묻자 ‘참고 넘어갔다’는 답변이 64.7%로 가장 많았다. 피해자 10명 중 6∼7명은 성희롱·성폭력을 경험하고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

이에 비해 ‘가해자에게 문제 제기하고 사과를 요구했다’며 적극적으로 대처한 경우는 23.5%에 불과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동료나 친구·가족과 상의했다’는 응답은 26.5%였고, ‘병원 내 고충 처리(상담) 창구 등에 신고했다’는 답변은 2.9%였다.

특히 경찰·검찰 등 수사기관이나 여성가족부·국가인권위원회·성폭력상담소에 등 관련 기관에 신고했다는 응답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신고해봤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서다. 실제로 이들은 신고하지 않은 이유를 선택해달라는 설문에서 ‘신고하더라도 병원·기관에서 아무런 조치도 취할 것 같지 않아서(42.4%)’라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다.

몰라서 손 놓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전체 응답자의 32.3%는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을 신고할 수 있는 병원 내 공식· 비공식 절차에 대해 잘 모른다’고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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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을 방문해 이현석 서울의료원장과 의료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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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관 내부의 성평등 수준이나 제도화 정도에선 다른 응답 대비 상대적으로 양호한 결과가 나왔다. 소속 병원의 조직문화를 살펴본 결과, ‘성차별적인 발언을 자주 한다(7.3%)’라거나 ‘외모나 옷차림, 화장 등에 대해 성적인 평가나 대화가 자주 오고 간다(10.7%)’는 응답 비율은 10% 내외를 기록했다. ‘조직 내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져 음담패설이나 성정 농담, 외모 평가 등에 대해 조심하는 분위기’라는 데 72.3%가 동의했다.

다만 유리천장에 대한 불만은 있었다. ‘고위 행정업무(보직)에 여성보다 남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항목에 동의한 응답자는 15.3%였다. 유리천장은 눈에 보이진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암묵적인 사회적 차별·편견을 지칭하는 용어로, 주로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가로막는 장벽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용어다.

병원의 수직적 위계질서나 권위적 문화도 바뀌어야 할 부분이라고 공공의료인들은 생각했다. ‘상급자에게 업무에 대한 자유로운 의견 제시가 어렵다’는 문항에 동의한 응답자는 39.7%, ‘조직의 발전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감수하는 분위기가 있다’는 문항에 동의한 응답자는 48.3%를 기록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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