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오른쪽)와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가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한석훈 국가인권위원회 위원 선출안이 부결된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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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몫 주요 기관 인사 추천을 두고 여야 간 불신의 골이 가팔라졌다. 지난달 26일 본회의장에서 야당이 여당 추천 몫 한석훈 국가인권위원회 위원 선출안을 예고 없이 부결시켰기 때문이다.
같은 날 야당이 추천한 이숙진 인권위원 선출안만 통과하자 국민의힘에선 “국회 본회의장에서 민주당에 사기를 당할 줄은 몰랐다”(배준영 원내수석부대표)는 반발이 쏟아졌다. 민주당은 “사기를 친 건 인권위원으로서 자격 없는 인물을 추천한 국민의힘”(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이라고 주장했다. 국회 몫 인사 추천은 여야 합의로 선출안을 본회의에 올리면 그대로 확정돼 온 관례가 여야의 대치 국면 속에 깨진 것이다.
나흘 뒤 소통을 재개한 여야 원내 지도부는 당시 상황을 두고 인식 차를 다시 나타냈다. 국민의힘 원내 관계자가 “다신 예고 없이 인사 선출 합의를 깨지 말아 달라”고 요구했지만, 민주당에선 “의원들이 자율적으로 투표한 것이라 지도부 차원에서도 예견치 못했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과거에는 극히 드물었던 ‘인사 추천 합의 파기’는 최근 잦아지는 추세다. 21대 국회에선 지난해 2월 국민의힘이 추천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이제봉 위원 선출안이 당일 예고 없이 야당 주도로 부결됐다. 이때도 국민의힘은 “여야 합의로 올린 인사안 부결은 반칙이자 비(非)매너”라고 반발했지만 허사였다. 과반 의석을 가진 거야(巨野)는 여당 협조 없이도 ‘국회의원 과반 출석, 과반 찬성’이란 선출안 처리 요건을 충족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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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에선 “민주당이 앞으로도 주요 인사 추천 시즌마다 뒤통수를 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당장 17일 임기가 만료되는 국회 몫 헌법재판관 3인의 후임자 추천부터가 문제다. 국민의힘은 관례대로 양당이 한명씩, 나머지 한명은 양당 합의로 중립적 인사를 추천하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자신들이 다수 의석을 가졌다는 이유로 2명 추천권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1명이든 1.5명이든 국민의힘 추천권이 담보될 수 있느냐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헌재는 각종 탄핵안 심사는 물론, 야당 폭주를 저지할 권한쟁의심판도 맡고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며 “이 때문에 민주당이 또다시 뒤통수를 칠 경우 그 피해는 엄청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여권 일각에선 여당 추천 몫 인사 선출안을 통과시킨 뒤 야당 추천 몫 인사안을 투표해야 한다는 주장부터, 원내대표 간 각서를 쓰고 본회의를 개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한들, 민주당이 과반 의석으로 맘대로 의결하는 걸 저지할 방법이 없다”는 게 여당의 고민이다.
지난달 20일 이은애 재판관을 시작으로 오는 17일 이종석, 이영진, 김기영 재판관의 임기가 한 번에 끝난다. 대법원 지명 몫인 이은애 재판관의 후임 인선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지만 국회 추천 몫인 3명의 공백을 채우기는 난항이 예상된다.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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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에선 ‘최후의 보루’는 윤 대통령의 임명 거부권이란 말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미 지난해 국회에서 추천된 야당 몫 방통위원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았고, 이번에 본회의를 통과한 이숙진 후보자도 인권위원으로 임명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상당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민주당이 만약 인권위원뿐 아니라 거듭 여야 합의 관행을 깬다면 윤 대통령이 민주당 추천 인사를 임명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차진아 고려대 로스쿨(헌법) 교수는 “여야가 인사 추천권을 나눠 갖는 이유는 그만큼 각각 국민 대표성을 갖기 때문”이라며 “거야가 힘으로 밀어 붙이는 식으로 합의 정신을 지키지 않는 일을 반복한다면 헌재는 물론 방통위 등 국회가 추천권을 갖는 주요 기관 구성이 다 마비가 되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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