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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기후 격변] ④ 기후 온난화에 오늘도 깎여 나간 강원 동해안 백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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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 52% 침식 우려·심각…D등급 속초·강릉 각 3, 삼척 2, 양양 1 순

"해수면 상승에 난개발이 침식 부추겨…더 빠르고 심각하게 삶 위협할 것"

정부, 10년마다 피해 대응하나 '사후약방문'…근본적인 대책 마련 시급

[※ 편집자 주 = 최근 폭염과 기후 온난화로 강원에서도 이상 기후 피해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는 주민과 관광객 불편뿐만 아니라 농작물 수급 불안으로 물가 상승, 경기 침체 등 또 다른 재앙을 예고하는 상황입니다. 연합뉴스는 강원 도내 바다와 해안, 농어촌 최일선 기후변화 현장을 점검하고, 미래 대응을 위한 실마리를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격주로 송고합니다.]

연합뉴스

해안 침식이 심각한 강릉 안인·하시동 사구
[촬영 류호준]


(강릉=연합뉴스) 류호준 기자 = "심각하다고 듣긴 했는데 이 정도일 줄 몰랐네요."

강원 동해안 백사장의 해안 침식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해안 침식의 주된 원인으로는 '기후 온난화'가 지목된다.

기후 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동해안 백사장 모래가 빠른 속도로 유실 중이다.

최근에는 동해안 일대 난개발이 해안 침식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안 침식이 심한 곳은 해안 도로가 무너지거나 해변 인근 건물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

기후 위기의 직격탄을 가장 크게 맞고 있는 동해안 일대를 찾아 해안 침식의 심각성을 살펴봤다.

◇ "옛 모습 기대는 접었죠"…강릉 안인 사구 일대 '아수라장'

연합뉴스

성인 키만큼 깎여나간 강릉 사근진해변 백사장
[촬영 류호준]


지난 10일 방문한 강릉 사근진해변 일대에서는 파도에 깎여나간 백사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성인 키만큼 깎인 곳도 눈에 띄었다.

이곳은 2021년 연안 침식 실태 조사에서 해안침식 D등급(심각)을 받기도 했다.

이날 사근진해변에서 만난 관광객 김근하(45)씨는 해안 침식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고 놀랐다.

김씨는 "해안 침식이 워낙 뉴스에 자주 나오다 보니 심각성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5년 전쯤 왔을 때는 이 정도로 깎여있지는 않았던 거 같다"고 말했다.

이어 "생각보다 침식 구간도 길어 해변을 걷기 불편하다"며 "백사장보다는 바위나 해중 전망대 등에서 놀다가 가야 할 거 같다"고 덧붙였다.

인근의 강릉 안인·하시동 사구는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

이곳은 동해안에서 해안 침식이 가장 심한 곳으로 손꼽힌다.

2천400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곳은 해양 생물 다양성의 보고와도 같았다.

해양 생태계 보전 측면에서 큰 학술 가치를 지니고 있어 환경부는 2008년 12월 안인·하시동 사구 23만3천㎡를 동해안 최초로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이곳도 기후 온난화의 습격을 피해 가지 못했다.

특히 주민들은 인근에 화력발전소가 들어서면서 해안 침식이 매우 심각해졌다고 전했다.

최근 이 일대에서 돌제 등 침식 저감 시설 설치가 시작됐지만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해안 침식과 이를 막기 위한 공사로 안인 사구 일대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주민들은 이제 안인 사구가 옛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조차 접었다.

평생을 이 동네에서 산 주민 김모(78) 씨는 이러한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는 "기후 온난화가 원인이든, 화력발전소 공사가 원인이든 주민 입장에서는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며 "몇 년 전만 해도 정말 아름다웠던 안인 사구가 이제는 중장비와 침식 방지 시설만 남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강원도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동해안 해변 중 52%가 해안 침식 우려나 심각 단계인 것으로 나타났다.

해변 101개소를 대상으로 침식 현황을 조사한 결과 A등급(양호)과 B등급(보통)은 받은 해변은 각각 5곳과 43곳이다.

또 C등급(우려)과 D등급(심각) 해변은 각각 44곳과 9곳이었다.

D등급을 받은 해변은 속초와 강릉이 각각 3곳으로 가장 많았고, 삼척 2곳, 양양 1곳 등 순이었다.

◇ "해안 침식 속도 빨라질 것…정부 정책, 사후 복구에 집중해서는 안 돼"

연합뉴스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진 강릉 안인·하시동 사구
[촬영 류호준]


해안 침식이 주요 환경 문제로 대두되면서 관련 연구와 대책도 논의되고 있다.

녹색연합은 올 상반기 국내 시민단체로는 최초로 동해안과 서해안 일대 해안 침식 실태를 조사했다.

해당 조사에 참여한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앞으로 해안침식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재철 전문위원은 "전 세계적으로 기후 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을 국가적 문제로 인식하고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며 "앞으로 해안 침식은 더 빠르고, 더 심각한 양상으로 우리의 삶을 위협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에서는 연안관리법에 따라 2000년부터 10년마다 연안 정비계획을 수립, 해안 침식 피해에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표했다.

특히 대부분의 예산과 정책이 사후 복구에 집중돼 있어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 위원은 "연안 정비계획을 바탕으로 정부에서도 침식 피해에 대응하고 있지만 사후 복구를 위한 해안구조물 건설 등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각 연안에 맞는 맞춤형 해결책과 연안 개발 및 모래 흐름에 대한 통합적 관리 방안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최근 국정감사를 통해 비슷한 주장을 했다.

임 의원은 해안 침식 현장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달 직접 강릉을 방문하기도 했다.

해양수산부는 침식을 막기 위해 수중 방파제, 이안제, 돌제 등의 침식 저감 시설물을 설치했다.

그러나 속초 등 일부 지역에서는 2차 침식을 유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임 의원은 "연안 침식 문제는 근본적인 관리 체계의 부재를 보여준다"며 "침식 저감 시설물을 설치하거나 개발사업을 진행할 때 철저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자체 대책 마련에 분주…강원도, 연안항만 방재센터도 조속히 추진

연합뉴스

경포해변의 해안침식…드러난 테트라포드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자체에서도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강릉·동해·삼척·속초·고성·양양 등 동해안 6개 시·군은 지난달 강원도 동해안권 상생발전협의회 제11차 정례회에서 채택한 공동건의문을 국회사무처와 기획재정부, 해양수산부, 강원도 등 관계 기관에 발송했다.

해당 건의문에는 '해안침식 연안정비 사업 국가 시행' 등 해안 침식 대응을 위한 내용이 포함됐다.

강원도 역시 해양수산부와 함께 동해안 해안침식 문제 해결을 위해 연안항만 방재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대지 확보 등에 난항을 겪으며 사업 추진에 차질을 빚고 있다.

애초 도는 강릉 옥계면 일대의 부지를 해양수산부에 제공하기로 하고, 사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현행 공유재산법상 도가 해수부에 토지를 무상 제공할 수 있지만 해당 부지에 연구 시설은 들어설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 관계자는 "강원특별법 3차 개정안에 공유재산법 특례조항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며 "이른 시일 내 연구시설 문제를 매듭짓고서 해안 침식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ry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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