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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추천 몫인 헌법재판관 3명에 대한 여야 협의가 길어지면서 우려했던 '헌법재판소 마비' 사태가 결국 현실이 됐다. 헌재 심리는 재판관 9명 중 7명 이상이 필요하기 때문에 후임 재판관 추천이 미뤄질수록 주요 사건 처리도 그만큼 지연될 수밖에 없다. 재판관 교체 때마다 늑장 추천을 하는 국회의 고질병을 고치지 않으면 헌재 기능이 정지되는 위기가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국회 추천 몫 재판관인 이종석 헌재소장과 이영진·김기영 재판관은 오는 17일 퇴임을 앞두고 있다. 이들 3명은 2018년 각각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더불어민주당 추천으로 임명됐다. 나머지 재판관 6명 중 3명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한다.
국회 추천 재판관들의 퇴임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야는 후임 재판관 추천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헌재법은 국회 내부에서 추천 절차를 어떻게 운영할지 세부적으로 정해놓지 않았다. 6년 전에는 교섭단체 요건을 충족한 당이 3곳이어서 1명씩 추천하면 됐지만, 이번엔 여야가 각각 1명을 추천하더라도 나머지 한 자리는 협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여야는 국회 몫 3명의 추천 권한을 놓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여야가 1명씩 추천하고 나머지 1명에 대해서는 합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국회는 기본적으로 합의 정신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야당인 민주당은 의석수에 비례해 여당이 1명, 야당이 2명을 추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민주당은 여당이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 차라리 국회 몫 추천 3명 모두 야당 뜻대로 처리하겠다는 계획이다. 의석수에 따른 추천권 배분 등은 관례일 뿐 법률에 정해진 바가 없기 때문에 과반의 의석수를 활용해 추천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다.
여야가 서로 양보해 당장 합의점을 찾더라도 청문회 등 임명 절차에 필요한 시간을 고려하면 헌재의 기능 마비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신임 재판관 3명이 임명되기 전까지 재판관 6명 체제로는 사건을 심리할 수 없어서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헌재 국정감사에서도 후임 임명 절차 지연을 두고 여야 간 공방이 펼쳐졌다. 국민의힘은 '추천권을 정치 도구화한다'며 비판했고, 민주당은 '의석수를 반영해야 한다'며 맞받았다. 의원들 질의에 김정원 헌재 사무처장은 "공석 사태는 피하는 게 좋다"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실제 당장 재판관 3명이 퇴임한 다음 날인 18일부터 주요 사건 심리가 전부 멈추게 된다. 여기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심판 등 진영 간 대치가 첨예한 사건도 포함된다. 탄핵소추안이 통과돼 직무정지된 이 위원장은 재판관 교체가 늦어질수록 업무 공백도 길어지게 된다. 민주당이 방통위 '강제 휴업'을 노리고 재판관 공백을 악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헌재가 신속한 선고를 위해 '적시처리 사건'으로 지정한 사건도 심리가 중단된다. 헌재는 지난 7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청원 청문회 관련 권한쟁의심판을 적시처리 사건으로 분류한 바 있다. 적시처리 사건은 불필요한 사회적 논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패스트트랙'과 같이 집중 심리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1996년과 2010년에 이어 세 번째로 폐지 심판대에 오른 사형제와 조력존엄사를 허용해달라는 연명의료결정법 관련 헌법소원 등 사회적으로 파급력이 큰 사건도 줄줄이 선고 일정이 늦춰질 전망이다.
특히 이번 사태를 계기로 헌재 기능 마비가 고질적 문제로 자리 잡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치적·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판단하는 헌재 특성상 국회에서 재판관 추천을 두고 매번 대치 상황이 벌어지고 그 결과 후임 임명 절차가 늦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지적이다.
앞서 2012년과 2018년에도 국회 추천 3명에 대한 인선이 늦어져 헌재 재판이 중단된 적이 있다.
한편 법조계에 따르면 이 위원장이 헌법재판관의 정족수 부족으로 자신의 탄핵심판이 정지되는 것은 부당하다며 지난 10일 헌법소원을 냈다. 이 위원장이 자신의 탄핵심판이 열리지 못하고 무기한 직무 정지에 놓이는 것은 부당하다며 헌법소원을 낸 것이다.
[강민우 기자 / 전형민 기자 / 박자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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