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래, 테이트모던 터빈홀 최연소 입성
양혜규, 120점 작품 망라 헤이워드 전시
정희민, 타데우스 로팍서 첫 유럽 개인전
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터빈홀에서 공개된 이미래 작가의 신작 설치작품 ‘열린 상처'(Open Wound)의 모습. 런던=손효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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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남부 뱅크사이드의 테이트모던 미술관. 화력발전소를 개조해 만든 테이트모던의 입구 터빈홀은 발전기 장치가 있던 공간으로, 층고가 35층 높이에 면적이 3,300㎡에 달한다. 이 공간에 공사판 가리개로 만든 100여 개의 분홍색 직물 조각이 쇠사슬에 걸려 기괴한 모습으로 공중에 늘어져 있었다. 중앙에 매달린 7m 폭의 기계장치가 돌아갈 때마다 장치에 연결된 실리콘 튜브에서 진득한 분홍색 액체가 뚝뚝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액체를 흡수한 직물은 매달린 채로 건조되고 있었다. 거대하고 기이한 외양과 소리로 미술관을 들어서는 관람객의 이목을 한 번에 사로잡는 설치작품은 한국 설치미술가 이미래(36)의 신작 '열린 상처(Open Wound)'다.
이미래 작가가 영국에서 선보이는 첫 번째 대규모 전시로, 참여작가 중 최연소 작가다. 현대자동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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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최고 미술공간 접수한 한국 여성 작가들
이미래(오른쪽) 작가가 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에서 열린 '현대 커미션: 이미래: 열린 상처'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런던=손효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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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아트페어 '프리즈런던'(10월 9~13일)이 열리는 런던 미술위크에서 한국 여성 작가들이 그야말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양혜규, 이미래, 정희민 등 해외에서 인지도를 쌓아온 30~50대 여성 작가들이 런던의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동시다발로 굵직한 전시를 선보이면서다. 세계 3대 미술시장인 프리즈런던은 해외 '큰손' 컬렉터와 미술계 주요 인사들이 동시대 미술의 격을 가늠하는 자리다.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뛰어난 작가를 간판으로 내세워 수준 높은 전시를 선보이려고 애쓰는 이유다.
가장 큰 화제는 이미래 작가를 낙점한 테이트모던의 '현대커미션' 전시. 테이트모던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현대미술관으로, 현대자동차 후원으로 매년 작가 한 명을 선정해 터빈홀에서 10월부터 이듬해 봄까지 전시를 할 기회를 준다. '현대커미션'은 모든 설치 작가들의 꿈의 무대다. 매년 수백만 명의 관람객이 가장 먼저 만나는 미술관의 얼굴인 데다, 압도적인 대작을 선보일 수 있는 드문 공간이기 때문이다. 루이스 부르주아, 애니시 카푸어, 아이웨이웨이 등이 이 무대를 거쳐 갔다. 이 작가에게 세계 미술계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이 작가는 2020년 서울 아트선재센터 개인전, 2022년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 2023년 미국 뉴욕 뉴뮤지엄 개인전 등을 열며 설치미술계의 '깜짝스타'로 떠올랐다. 한국 작가 최초이자 역대 최연소로 테이트모던 터빈홀을 '접수'한 그는 '열린 상처'에 대해 "예술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지만 바꿀 수 없는 데서 좌절하는 '예술가로서의 상처'에서 출발했다"며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무기력이 아니라 슬픔, 아픔, 역경 같은 상처를 닫지 않고 함께 겪으면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여성 작가들, K미술 존재감 키운다
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개막한 양혜규의 개인전 '양혜규: 윤년'에 전시된 '윤에 따른 엇갈린 랑데부'. 런던=손효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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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에는 유럽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양혜규(53) 작가가 실험적 전시로 명성이 높은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양혜규: 윤년'을 시작했다. 헤이워드는 문화특구 사우스뱅크의 메인 현대미술아트센터로 테이트모던과 함께 런던 현대미술계의 쌍두마차로 통한다. 갤러리는 전시 공간 전부를 사용해 세계 곳곳에서 선보인 양 작가의 실험적 작업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융 마 큐레이터의 주도로 설치, 조각, 콜라주, 텍스트, 비디오, 벽지 등 작가의 작품 세계 전체를 조망하는데, 작품이 120여 점이다. 2006년 양 작가가 살았던 인천 폐가에서 열린 첫 번째 개인전 '사동 30번지'를 18년 만에 재해석하는 작품부터 은색 스테인리스스틸 방울을 금속 링으로 엮은 '농담濃淡진 소리 나는 물방울-수성 장막(Sonic Droplets in Gradation-Water Veil)' 신작까지 망라한다. 양 작가는 가정에서 사용하는 일상적인 사물과 산업용품을 독특한 조각이나 다양한 매체를 결합해 설치작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지난해 독일 경제잡지 '캐피탈'에 세계 100대 작가 중 93위로 이름을 올린 데 이어 이번 전시를 통해 유럽에서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이란 평가를 받는다.
유럽에서 손꼽히는 명문 갤러리인 타데우스 로팍과 소속계약을 맺은 신예 정희민(36) 작가도 타데우스 로팍 런던 갤러리에서 최근 첫 개인전을 열었다. 정 작가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작품에 질감과 부피를 더하는 방식으로 전통적인 회화 장르를 시적이고 추상적인 작품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한다. 이 갤러리가 런던에서 개최한 한국 작가 개인전은 이불 이래 두 번째다.
대전시립미술관장을 지낸 선승혜 주영한국문화원장은 "한국 작가들이 세계 미술의 중심인 런던에서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대형 전시를 여는 날이 올지는 상상도 못 했다"며 "한국 작가들의 인지도와 위상이 상당히 올라왔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런던=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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