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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기고] "세계적 작가 올라선 한강…그 뒤엔 번역자들 헌신도 있었다" [한강 노벨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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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한국인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된 소설가 한강.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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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기고



한강 작가가 2024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역사적 상처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 선정 이유다. 한강은 한국 근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나타난 역사적・사회적 폭력이 한 개인의 삶에 남긴 깊은 상처를 정직하게 응시해 왔다. 역사가 세로로 당기고, 사회가 가로로 밀어붙이는 힘들은 그 교차점에 선 인간의 신체를 뒤틀고, 정신을 파괴한다. 시적 언어를 통해서 그 찢겨나간 신체와 영혼을 제자리로 되돌리는 것이 한강 작품의 오랜 주제이다.

5・18 민주화 운동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소년이 온다』, 제주 4・3 학살 사건이 남긴 피 묻은 기억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 가부장제 폭력에 시달리던 한 여성의 내적 상처를 그려낸 『채식주의자』, 언어를 잃어가는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의 만남을 통해 가족 상실의 의미를 탐구한 『희랍어 시간』 등 한강의 주요 작품들은 한국 문학이 활력과 위엄을 잃어가는 2010년 이후에 주로 쓰였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큰 의미가 있다. 작가는 자기 주변의 이야기에 대한 세밀화적 묘사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와 사회의 고통에 참여하고, 그 고통의 치유에 이바지하는 언어를 발명해야 한다는 점을 한강은 다시 한번 우리에게 확인시켜 준 셈이다.

한강 작가의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강 작가 개인의 노력만은 아니다. 어느 영역에서든 문화의 해외 진출은 ‘수용자 집단의 관심ㆍ평가ㆍ적극 수용’ 단계를 밟아 확산된다.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 이전에도 영국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프랑스 페미나상 등 각국의 대표적 문학상을 수상해 왔고, 그 배경엔 일찍이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을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 한국문학번역원과 대산문화재단 등의 꾸준한 지원,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 이바지한 여러 언어 번역자의 헌신적 노고가 있었다.

한국문학번역원은 2023년 12월 말 기준 44개 언어 총 2032건의 번역 및 출판 활동을 지원해 왔다. 민간 재단인 대산문화재단도 가장 먼저 이 사업에 뛰어든 이래, 지금까지 꾸준한 번역 지원 활동을 통해서 성과를 남겨 왔다. 한강 작가의 작품들도 대다수 이들 기관의 지원을 받아서 전 세계에서 출판되었다.

아울러 작품의 좋은 평가를 얻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은 번역의 질이다. 한강 작가가 세계적 작가로 올라서는 데 큰 역할을 한 계기는 『채식주의자』가 2016년 데버라 스미스의 번역으로 맨부커 국제상을 받으면서부터이다. 스미스의 번역은 일부 논란은 있었으나 현지 독자의 맥락을 살린 번역으로 유명하다. 이후, ‘한강 이펙트(effect)’가 형성되면서 한국문학에 대한 해외 평가를 바꿔놨다. 편혜영의 『홀』(셜리 잭슨상), 황석영의 『해질 무렵』(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일본번역대상), 손원평의 『아몬드』(일본서점대상 번역부문), 김혜순의 『죽음의 자서전』(그리핀 시문학상) 등 해외 수상 소식이 대폭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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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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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노벨문학상 수상 이유에서 특히 주목하고 싶은 것은 “죽음과 삶에 대한 독특한 인식”이라는 표현이다. 이는 한강 작가의 문학이 진도의 씻김굿에서 나온 우리 문학의 고유한 사유와 언어를 확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국의 문화적, 언어적 전통에서 나온 깊은 뿌리와 현대적 언어가 만날 때 비로소 문학의 세계화 가능성은 열린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드디어 한국 문학의 언어가 세계 시민의 언어로 나아갈 가능성을 보여준 쾌거이다. 수상을 축하한다.

기고 정리=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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