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구구 에너지 정책
전국(제주 제외)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기가 강제로 발전을 중단하는 ‘출력제어’ 건수가 한 해 사이 15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전력을 생산해도 보낼 길이 비좁은 탓에 생산을 중단하거나 줄이는 횟수가 급증했다는 의미다.
1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실이 한국전력거래소 등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제주를 제외한 전국에서 이뤄진 재생에너지 출력제어 건수는 31건을 기록했다. 2021년 3건→2022년 0건→지난해 2건을 기록했다가 15배 넘게 불어난 것이다. 보통 재생에너지 출력제어는 생산량이 많으면서 육지로 전기를 보낼 방법이 여의치 않은 제주에서 빈번(올해 1~8월 83건)한데, 최근 내륙에서도 관련 현상이 잦아지고 있다. 출력제어가 늘수록 낭비되는 에너지도 불어나기 마련이다.
출력제어가 급증한 배경에는 전력망 등 관련 인프라 부족 문제가 있다. 전력을 생산해도 보낼 길이 충분치 않아서다.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전세계적인 탄소 감축 흐름에 동참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보급을 빠르게 확대하면서도 관련 인프라 건설은 지지부진했다.
이른바 ‘전력 병목현상’은 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전체 발전원의 문제로 확장된다.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국내 발전설비(태양광·원전·LNG·석탄 등)는 2014년 9만3216㎿에서 지난해 14만4421㎿로 55%가량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송배전망의 주축인 송전선로는 3만2795C-㎞에서 3만5596C-㎞로 약 9% 느는 데 그쳤다. 송배전망 건설이 주춤한 것은 관련 지역에서 “송배전망이 들어오면 사람 건강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반발하는 영향이 크다. 이런 현상은 2008년 ‘밀양 송전탑 사태’를 시작으로 반복되고 있다. 주민과 환경 관련 시민단체가 실력 행사에 나서면 지방자치단체는 이들 눈치를 보며 인·허가를 주저하거나 내주지 않는 식이다.
정부의 재생에너지 보급 드라이브에 LNG(액화천연가스) 복합화력발전소의 기동정지도 급증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기후 변화 등에 따라 생산량이 들쭉날쭉한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LNG 발전소를 자주 껐다 켰다 하게 됐다는 뜻이다.
발전 5사(중부발전·동서발전·남부발전·서부발전·남동발전)가 운영 중인 LNG 복합화력발전소의 연간 기동정지 횟수는 2014년 1만5000회 정도에서 2021년 2만회로 30% 넘게 증가했고, 2022년과 지난해에도 비슷한 수치를 나타냈다. 석탄발전소 기동정지 건수는 더 급격히 불어나고 있다. 발전 5사 석탄화력발전소의 연간 기동정지 횟수는 2014년 28회에서 지난해 957회로 증가했다. 발전소들의 기동정지가 늘어나면 설비 수명에 악영향을 주고 고장 가능성 상승→유지보수 비용 증가→국민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나 의원은 “정부가 재생에너지의 높은 변동성에 맞춰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을 충분히 확충해야 했지만 이를 외면하고 재생에너지를 얼마나 늘렸느냐에 집중한 탓”이라고 비판했다.
앞으로가 더 문 제다. 더딘 인프라 확충을 해결하지 못한 채 정부는 재생에너지 보급 비중을 늘릴 계획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31일 전력수급기본계획 총괄위원회가 발표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을 보면, 전체 발전원 중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현재 10% 수준에서 2030년 21.6%로 늘리도록 돼 있다. 2038년 비중은 32.9%에 달한다.
세종=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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