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연휘선 기자]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흔히 부모의 현실감각이 돌아오는 순간을 두고 "내 아이가 똑똑하지 않다는 걸 알았을 때, 심지어 그렇게 착하지도 않다는 걸 알았을 때"라고 한다. 그렇다면 당신의 아이가 똑똑하기는 커녕 착하지도 않고, 심지어 범죄를 저질렀을 때. 부모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답은 정해져있지만 현실적으로 선뜻 답하기 힘들 터. 비범한 질문으로 평범한 가정의 민낯을 까발린다. 문제작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영화 '보통의 가족'이다.
오는 16일 개봉하는 영화 '보통의 가족'(감독 허진호, 제공/배급 (주)하이브미디어코프·(주)마인드마크, 제작 (주)하이브미디어코프, 공동제작 (주)하이그라운드)은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던 네 사람이 아이들의 범죄현장이 담긴 CCTV를 보게 되면서 모든 것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담은 웰메이드 서스펜스 작품이다. 헤르만 코흐의 소설 '더 디너'를 원작 삼아 영화로 각색됐다.
'보통의 가족'은 형 재완(설경구 분)과 동생 재규(장동건 분)의 전혀 다른 가족에서 출발한다. 재완은 돈 잘 버는 변호사로 어린 미모의 아내 지수(수현 분)와 재혼해 '쉰둥이' 사랑을 낳고 가정을 꾸렸다. 사별한 아내와의 사이에서 첫째 딸 혜윤(홍예지 분)도 낳았는데 현재 입시를 앞둔 수험생이다. 재완의 동생 재규는 소아외과 의사로 생명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연상의 자원봉사 활동가 아내 연경(김희애 분)과 결혼해 아들 시호(김정철 분)를 뒀고, 형을 대신해 알츠하이머 증세를 보이는 노모를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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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있는 변호사로 돈 되는 사건을 수임해 가정을 책임지는 재완이나, 갓 태어난 아이를 둔 엄마라고 믿기지 않는 관리의 여왕 지수와 친모가 세상을 떠난 뒤 인정하기 싫은 '새엄마'와 그래도 귀여운 배다른 동생과 살아가는 입시생 혜윤. 여기에 존경받는 의사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아빠 재규나, 봉사 활동가로 활약한 연경과 사춘기 아들 시호까지. 이들 모두 남다른 유복함이 평범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특별하지는 않은 한 번쯤은 만나볼 수 있는 제목처럼 '보통의 가족'이다.
그러나 부도덕과 위선의 씨앗이 이들 가족 사이엔 자리잡고 있다. 재완은 홧김에 교통사고를 내고 사람을 치어 죽인 재벌가 자제의 변호를 '돈이 된다'는 이유로 수임한다. 사람을 죽이고도 반성하는 기색은 전혀 없지만 의뢰인이라는 이유로 재완은 재벌가 자제의 혐의에 대한 변론을 일말의 죄의식 없이 착실하게 수행한다. 혜윤 엄마와 사별 후 어린 떡집 아가씨 지수와 '쉰둥이'를 보며 재혼하기까지 그에게 체면은 내다버린 지 오래다.
반대로 재규에게 체면은 꽤나 중요하다. 존경받는 의사로서 소임을 다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내 연경과 간병인에게 맡긴 채 알츠하이머 증세가 심해지는 노모를 집에서 부양해야 한다고 고집한다. 학교 폭력 피해를 당했던 아들을 내심 한심해 하면서도 안타까워 하며 상처를 딛고 정정당당하게 살기를 바란다. 연경은 해외 아동이 사연에 눈물을 보일 정도로 몰입하지만 수험생인 조카 혜윤에게 봉사활동 확인서를 '미리' 내줄 정도로 이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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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가족'은 재완, 재규 형제 가족들에게 자리잡은 부도덕과 위선을 여상하고 평범한 가족들의 이야기로 묘사한다. 숨쉬듯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범죄에 대한 옹호, 체면치레를 위한 위선적인 언행들 사이 도덕적 관념이 자리잡을 틈은 없다. 이들 가족, 정확히 이들 부모는 스스로의 문제를 모른 채 그저 흘러가는 시간에 맡긴 채 자라나는 아이들을 마주한다. 아이들에게 알아서 용돈을 뱉어내는 'ATM'이라고 자조하지만, 올바른 가치관이나 가정교육 없이 경제적 역할에만 충실한 존경을 잃은 부모일 뿐이다.
문제는 그런 부모들 아래 착실한 줄로만 알았던 자녀들의 일탈이 벌어지면서 수면 위로 드러난다. 치기로 넘어가기엔 감당할 수 없는 아이들의 일탈 행각을 CCTV로 확인한 부모가 당황하는 사이, 아이들은 반성 없이 사건의 '처리'에만 집중한다. 사실 교통사고로 사람을 죽이고도 죄의식 없는 피의자를 변호한 재완도, 자수를 종용하고도 끝내 실천하지 못한 재규에게는 그 어떤 훈계의 자격도 없다. 본인들이 갖지 못한 도덕성을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할 일이 없다"며 방관하는 지수나, 그를 향해 "친엄마면 그런 소리 하겠냐고!"라 울부짖으며 극성스럽게 보호하기 바쁜 연경도 마찬가지. 지은 죄만큼 벌을 받겠다는 생각은 이들과 거리가 먼 이야기다. 이 가운데 이들 가족이 그저 평범한 '보통의 가족'으로 묘사됐다는 점에서 영화는 우리 사회 깊숙하게 자리 잡은 부도덕을 꼬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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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가족'에서는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가족에서조차 제대로 된 처벌은 이뤄지지 않는다. 훈육은 커녕 가족 구성원 사이 일말의 공감도 찾아보기 어렵다. 밥 한 끼 같이 먹는 밥상머리에서도 교감하기는 커녕 각자 핸드폰을 바라보며 수저질하기 바쁘다. 최소한 '식구'로서의 개념도 사라진 가정, 파편화된 현대 사회에서 지극히 '보통의 가족'인 이들에게 지극히 일상적인 순간이다. 교감이 없으니 이해도 없고 한층 나아간 훈육과 교육은 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참담하지만 극도의 현실적인 풍경이다.
재완, 재규, 연경, 지수 네 사람의 각기 다른 부모의 모습 또한 기시감을 선사한다. 말 안 해도 용돈 주는 ATM을 자처하는 아빠 재완, "정정당당해야 한다"라고 말은 하지만 먼저 나서 지키지는 못하는 아빠 재규, 입시를 위해 이사온 학교에서 아들이 학교폭력 피해까지 입었지만 현실적인 고민을 포기 못하는 연경, '새엄마'를 밀어내는 혜윤을 감당하기 벅차 방관하는 지수. 네 명의 캐릭터로 분리됐지만 이들은 사실상 한 가정에서 모두 찾아볼 수 있는 부모의 모습이기도 하다. 자녀가 자라나며 맞닥뜨리는 성장의 고민이 달라지는 만큼 그에 대응하는 부모의 모습 역시 계속해서 변화하기 때문.
가정 역시 작은 사회라고 볼 때, 계속해서 발전하고 변화하는 가치관에 우리는 점점 정확한 시기와 대응방법을 잃어가고 있다. 이를 버티게 해준 도덕적 신념과 선한 가치마저 퇴색될 정도로. '보통의 가족'은 2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 내내 보통이라는 이름으로 만연해진 부실해진 공동체 의식을 통렬하게 지적한다. 영화를 보는 누구라도 자녀가 죄를 지었을 때 부모의 선택에 대한 '정답'은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만연해진 '보통의 가족' 분위기상 마냥 정답을 실천하기 어렵다는 것도 인지하게 된다. 혹은 고민을 거듭하며 돌고 돌아 지수, 연경, 재완, 재규를 넘나드는 선택을 하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반드시 질문과 사유를 곱씹게 하는 '보통의 가족'이다.
/ monamie@osen.co.kr
[사진]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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