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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고의 없다’며 무죄, 보이스피싱 중계기 관리책… 대법 “유죄 취지로 다시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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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통신사업법 위반 등 혐의

1·2심 무죄

대법 “무죄 판단은 잘못, 유죄 취지 다시 재판”

헤럴드경제

대법원.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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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던 보이스피싱 중계기 관리책에게 대법원이 “무죄 판단은 잘못”이라며 판결을 깼다. 대법원은 “유죄 취지로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돌려보냈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권영준)는 사기,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를 받았으나 1·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A(55)씨에 대해 이같이 판시했다. 대법원은 “원심(2심)엔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대구지법에 돌려보냈다.

A씨는 2023년 2월부터 4월까지 ‘보이스피싱 중계기 관리책’ 역할을 맡았다. 빈 고시원에 중계기·유무선 공유기를 설치한 뒤 조직원의 지시에 따라 유심을 중계기 특정 번호에 꽂았다가 빼는 작업을 반복했다.

A씨의 행동으로 인해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변작된 번호로 다수의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낼 수 있었다. 그 대가로 A씨는 110여만원을 받았다.

수사기관은 A씨를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이 법은 “누구든지 전기통신역무를 이요해 타인의 통신을 매개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1심과 2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A씨가 본인이 설치한 유심 등이 범죄에 이용된다는 사실에 대해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였다.

1심을 맡은 대구지법 형사8단독 이영숙 판사는 지난해 7월, 이같이 판시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A씨)이 원룸에 설치한 통신중계기엔 유심을 꽂는 포터가 16개나 있고, A씨는 체포될 당시 51개의 유심을 소지하고 있었다”며 “피고인 스스로도 유심을 교체해주는 심부름을 하는 것이 적법한 것인가 의심해 자신의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고 밝혔다.

다만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려면 적어도 피고인이 설치한 유심 등이 범죄를 위해 사용된다는 사실을 미필적으로라도 인식했다고 볼 수 있어야 한다”며 “대가로 수령한 액수가 부당하게 과다하다고 보이지 않고, 통신중계기의 명칭도 정확히 알지 못했으며, 그저 시키는 대로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검사가 항소했지만 2심의 판단도 같았다. 2심을 맡은 대구지법 2-3형사부(부장 남근욱)도 지난 4월,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1심 판단이 정당해 수긍이 간다”고 설명했다.

반면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한 원심(2심) 판결은 잘못”이라고 판시했다. 전기통신사업법에서 말하는 ‘고의’란 타인 간 통신을 연결해 준 것에 대한 인식을 요구할 뿐 그 통신을 범죄에 이용한다는 것까지 인식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조직원과 공모해 유심을 이용해 보이스피싱 피해자들과 전화를 하거나, 문자메시지를 전송할 수 있도록 매개함으로써 고의로 타인 통신 매개행위를 했다고 인정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럼에도 이 부분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2심)은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무죄 판결을 깨고, 사건을 대구지법에 돌려보냈다.

notstr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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