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막 앞둔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인터뷰
'개막작이 왜 OTT냐'는 비판에
"시대 변했는데 같은 포맷에 의문"
"허례허식 빼고 개막작부터 혁신"
"다른 국제영화제도 대중화 흐름"
작품편성 향한 호평도 비판도 수용
"영화제, 늘 저항·문제제기 있어야"
박광수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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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젊은이들이 영화제를 거부하면 영화제의 비전은 사라집니다. 영화제를 살리려면 그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를 내놔야죠.”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이하 부국제)가 열린 지난 4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비프힐에서 만난 박광수 부산국제영화제 신임 이사장은 “다른 국제 영화제들도 대중화의 흐름을 수용하려는 게 전반적 추세”라며 위와 같이 힘주어 말했다.
“20년간 똑같은 관행, 낡은 건 과감히 없애”
지난 2일 개막해 11일 폐막을 앞둔 제29회 부국제는 막강해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입지와 함께 대중성에 초점을 맞춘 초청작과 프로그램들로 화제와 논란을 동시에 부추겼다. 부국제 역사상 최초의 OTT 영화로 개막작에 선정돼 갑론을박을 낳은 넷플릭스 ‘전,란’(감독 김상만)이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K팝 다큐멘터리 최초 오픈 시네마(야외상영) 부문 초청작이 된 방탄소년단 RM의 다큐 영화 ‘알엠: 라이트 피플 롱 플레이스’ 등 콘텐츠 트렌드를 반영한 대중성 있는 작품들이 주요 부문에 포진해 눈길을 끌었다. 일각에선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신진 영화감독들의 등용문으로 군림했던 부국제가 정체성을 포기한 게 아니냐는 우려도 이어졌다.
모험은 지난해 인사 내홍 및 직장 내 성희롱 의혹으로 실추된 명예와 멀어진 대중의 관심을 회복해 ‘관객친화적 행사’로 거듭나겠다는 다짐에서 비롯됐다. 올해 영화제의 새 수장이 된 박광수 이사장의 결단이다.
박 이사장은 영화 ‘칠수와 만수’(1988), ‘그들도 우리처럼’(1990) 등을 연출한 감독 출신이다. 1996년 제1회 부국제를 시작으로 김동호 초대 집행위원장과 함께 3년간 부위원장을 지내며 합을 맞췄다. 부산프로모션플랜(현 아시아프로젝트마켓)과 아시아필름마켓(현 아시아 콘텐츠&필름마켓)을 발족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사장 선임 전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20여 년 만에 부국제에 돌아온 그가 느낀 가장 큰 문제점은 ‘전통’이란 명분으로 방치된 허례허식과 낡은 규정들이었다. 박 이사장은 “시대가 변했는데 영화제의 포맷은 그대로더라. ‘왜 똑같지?’ 물으니 전통이라 그대로 해왔다고 하더라”며 “개막식부터 바꿔나갔다. 무대에 심사위원들을 세우는 관행부터 축하공연 초청 등 없어도 될 군더더기를 과감히 쳐내는 것부터 시작했다”고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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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작 비판 존중…영화제도 시대 흐름 타야”
개막작 ‘전,란’의 선정 과정 및 논란에 대한 견해도 밝혔다. 박 이사장은 “초청작 선정 과정에서 프로그래머들에게 영향 끼친 부분은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부국제 개막작은 늘 재미가 없다’는 의견 정도만 밝혔다”며 “영화제들이 갖는 근본적 문제점이기도 한데 개막일 개막작 보는 관객들보다 연예인 보러 개막식에 참석하는 관객들이 더욱 많다. 여기에 무거운 분위기의 영화를 개막작으로 뽑아 부담을 주면 영화를 보지 않는 그런 분위기가 더 짙어지지 않겠냐”라고 소신을 밝혔다. ‘전,란’을 접한 업계 및 관객들의 반응에 대해선 “몇몇 일반 관객들로부터 올해 개막작이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만족감을 표현했다. 다만 그는 “(개막작이) 왜 하필 넷플릭스 영화냐는 반응들은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좋다 나쁘다를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영화제에는 늘 저항과 문제 제기가 있어야 하는 법”이라고 부연했다.
영화제의 방향성을 ‘대중성’으로 결정한 취지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박 이사장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영화제를 향한 정부 지원이 줄어드는 추세”라며 “나날이 열악해지는 환경에서 영화제가 명맥을 유지하려면 ‘대중이 보고 싶어하는 영화’를 더 많이 올려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최근까지 교수로 일했던 그는 젊은 학생들과 소통하며 영화계의 대중성 확보에 대한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고도 털어놨다. 박 이사장은 “시대가 바뀌면 사람들도 달라진다”며 “학교에서 학생들과 지내면서 느꼈고 이사장으로 해외 영화제 출장을 다니며 더욱 확신했다. 영화제도 시대에 맞춰 흐를 수 있게 열어놓으면 된다. 지난해 내홍으로 명예가 많이 실추됐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부국제를 향한 해외 영화계의 반응은 여전히 호의적이다. 희망은 있다”고 밝혔다.
또 “한국 영화는 할리우드에서 지대한 영감을 받아왔고 그걸 향유하는 우리 대중도 미국의 문화와 정서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런데 국내 영화제들 대부분은 유럽 영화제들의 형식과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는 현실”이라며 “미국의 정신에 더 가까운 관객들에게 유럽식 영화를 계속 봐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도 난센스다. 우리 영화제는 미국과 유럽 어느 쪽으로 나아가야 하나, 영화제에 올릴 영화들을 선택하는 단계에서부터 방향성을 고민해봐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내년은 부국제가 30주년을 맞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박 이사장은 “영화제가 초반만 화제성을 갖고 후반으로 갈수록 참여도가 떨어지는 고질적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마련 중”이라며 “내년은 30주년인 만큼 분위기를 바꿀 특별한 이벤트들을 기획하려 한다”고 귀띔했다.
현재까지 공석인 집행위원장 인선을 내년 2월 안에 마무리하겠다는 목표도 덧붙였다. 박 이사장은 “시간 끌지 않고 최대한 빨리 선임할 것”이라며 “좋은 조건의 집행위원장을 채용하기에 급여문제 등 환경상 제약들이 많더라. 집행위원장을 뽑을 때도 필요없는 규정, 조건은 과감히 뜯어고칠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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