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명태균씨와의 친분을 부인하자 명씨가 9월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를 잊으셨나요″라며 직접 올린 사진. 페이스북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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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 지역에서 ‘화백(畵伯)’으로 불리던 이가 있다. ‘여론조사 수치를 잘 그린다’는 의미의 별명이다. 김건희 여사의 ‘경남 창원의창 선거 공천개입 의혹’에 등장하는 핵심 인물 명태균씨를 일컫는 호칭 중 하나다. 경남도의원을 지낸 인사는 8일 중앙일보 통화에서 “명씨는 여론조사 1등을 만들어주겠다는 식으로 유력 정치인에 접근하는 것으로 유명했다”며 “평소에도 인맥을 과시하는 경향이 짙어 그를 경계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말했다.
‘명태균 리스크’가 여권을 덮치고 있다. 지역 정가의 유명인사였던 명씨의 호칭은 화백 말고도 다양했다. 누군가는 그를 “정치 컨설턴트”라 불렀고, 또 다른 누군가는 “브로커” 내지 “사기꾼”이라고 했다. 명씨가 전국적 인지도를 누리게 된 건 지난달 19일부터 시작된 인터넷매체 뉴스토마토의 집중 보도를 통해서다. 뉴스토마토는 명씨가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친분을 바탕으로 김영선 전 의원의 2022년 6월 보궐선거 공천과, 지난 4ㆍ10총선 지역구 이동에 개입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국민의힘에선 윤 대통령 부부와의 친분을 내세우는 명씨의 말에 “정치 브로커의 허황한 주장”(당 관계자)이라며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명씨의 과거 이력도 도마 위에 올랐다. 그는 사기 및 변호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2019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창원시 공무원에게 로비를 통해 승진시켜주겠다며 수천만 원의 금품을 받아 챙긴 혐의였다. 이외에도 무자격 상태로 여론조사를 실시 및 보도한 혐의, 불법 선거운동 등의 혐의로 수차례 유죄 판결을 받았다.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법무부, 대한법률구조공단,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정부법무공단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김건희 여사 4.10 총선 공천 개입 의혹 핵심 인물인 명태균 씨와 김 여사의 대화를 주장하는 언론 보도가 나오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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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보도된 명씨의 언론 인터뷰에 여권이 술렁이고 있다. 그는 7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지난 대선 당시 윤 대통령의 서울 서초동 자택에 대여섯번 방문해 국무총리 인사 추천 등 여러 정치적 조언을 했다고 말했다. 또 대선 당시 윤 대통령과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과정에도 관여했다고 주장했다.
명씨는 6일 진행된 JTBC와의 인터뷰에선 “(언론엔) 내가 했던 일의 20분의 1도 나오지 않았다. 입 열면 진짜 뒤집힌다”며 “내가 (감옥에) 들어가면 한 달 만에 이 정권이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7일 밤 보도된 채널A 인터뷰에서 검찰 조사를 받게 되면 “잡아넣을 건지 말 건지, 한 달이면 하야하고 탄핵일 텐데 감당되겠나”라고 검사에게 묻겠다고 했다. 논란이 커지자 명씨는 7일 밤 인터뷰를 진행한 기자에게 연락해 “(하야, 탄핵 발언은) 농담 삼아 한 이야기”라며 기사 삭제를 요구했다고 한다.
이에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통령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인 2021년 7월 초, 자택을 찾아온 국민의힘 고위당직자가 명씨를 데리고 와 처음으로 보게됐다. 얼마 후 역시 자택을 방문한 국민의힘 정치인이 명씨를 데려와 두 번째 만남을 가지게 된 것”이라며 “대통령이 당시 두 정치인을 각각 자택에서 만난 것은 그들이 보안을 요구했기 때문이며, 명씨가 대통령과 별도의 친분이 있어 자택에 오게 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경선 막바지쯤 명씨가 대통령의 지역 유세장에 찾아온 것을 본 국민의힘 정치인이 명씨와 거리를 두도록 조언했고, 이후 대통령은 명 씨와 문자를 주고받거나 통화한 사실이 없다고 기억한다”며 “당시 대통령은 정치 경험이 많은 분들로부터 대선 관련 조언을 듣고 있었고,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분의 조언을 들을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명씨가 최근 언론 접촉 빈도를 늘리며 공개 발언을 늘어놓는 데 대해 국민의힘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명씨의 “일종의 벼랑 끝 전술”(신지호 부총장)이란 반응이 일반적이다. 2022년 6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김 전 의원은 이후 명씨에게 매달 자신의 세비(歲費ㆍ의원 보수) 절반을 건네는 방식으로 9000여만원을 건넸는데, 검찰은 이를 김 전 의원이 명씨에게 지급한 ‘공천 대가’로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명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2022년 김 전 의원의 보궐선거를 위해 빌려준 돈을 돌려받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 전 의원은 휴대전화를 꺼놔 연락이 닿지 않았다.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과 명태균씨 간 금전 거래 의혹 등을 수사 중인 검찰 관계자들이 9월 30일 경남 창원시 명씨 자택을 압수수색한 뒤 차량에 올라타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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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각에선 명씨가 입을 열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것이란 경고도 나온다. 여론조사 업체를 운영한 그는 2021년부터 김 전 의원 소개로 윤 대통령 부부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이준석 의원 등 보수 진영 유력 정치인과 연을 맺었다고 한다. 경남의 한 국민의힘 의원은 “명씨는 우리가 못 보는 그림을 잘 보면서 전략에도 밝아 사람을 혹하게 하는 기질이 있다”며 “여권은 물론이고 야당의 현역 의원 일부도 명씨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야당은 명씨를 ‘비선 실세’로 규정하며 맹공을 퍼부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8일 당 회의에서 “명씨는 김 여사로부터 윤석열 정부 인수위원회 참여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주장하는 등 위세를 과시하고 있다”며 “사실이라면 천공을 능가하는 비선 실세가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는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명태균씨 또는 제2의 명태균, 제3의 명태균이 김건희씨를 통하거나 윤석열 대통령에게 바로 인사 개입, 인사 농단을 했다거나 정책 관련 개입을 했다면 이게 바로 제2의 최순실”이라며 “이 문제에 초점을 두고 이를 밝히기 위해서 저희 당은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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