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 쏙 취파] 귀에 쏙! 귀로 듣는 취재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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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는 자욱한데 직접 증거 없는 '김 여사 딜레마'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연루 의혹과 관련한 서울중앙지검의 결단 시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건 '본류'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두 번이나 내려졌고, 검찰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조사는 거의 다 했다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처분을 앞둔 시점에, 김 여사의 주가 조작 연루 의혹과 관련한 여러 보도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은 보도의 근거가 되는 자료 상당수가 이전 정부 수사팀 때 확보된 것이고, 재판 과정에서도 다뤄진 것이라 '새로울 것이 없다'라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4년 넘는 수사 과정과 숱한 정치 이벤트를 거치며 이제는 '여론 재판'처럼 된 이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들 마음속에는 의혹의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번 취재파일에서는 김 여사나 검찰에 유리한 것이든 불리한 것이든, 현재까지 취재된 사건의 민감한 포인트들을 최대한 상세히 전달해 보고자 합니다. 범람하는 뉴스 속, 조금은 덜 뜨겁게 상황을 보고 싶은 독자들을 위한 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글의 말미에선 전·현 정부를 거치며 진행된 이 사건 수사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없는지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SBS는 지난주 김 여사가 현 검찰 수사팀의 대면 조사에서 자신의 주가 조작 연루 정황에 대해 뭐라고 해명했는지를 취재해 보도했습니다. 도이치모터스 사건 1, 2심 재판부는 모두 김 여사 명의의 대신증권 계좌가 지난 2010년 11월 주가 조작에 연루됐다고 판단했습니다. 주가 조작 세력들 간 사전에 미리 짜고 정해진 가격에 매매를 하는 '통정매매'가 실행될 때 김 여사 계좌에서 나온 물량이 동원됐다는 겁니다.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 주가 조작의 이른바 '주포' 김 모 씨와 '선수' 민 모 씨가 통정매매를 모의하는 물증인 문자메시지를 실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 대화에 등장하는 도이치모터스 주식 '8만 주'의 매도 주문은 다름 아닌 김 여사의 대신증권 계좌에서 나왔습니다. '주포' 김 씨의 매도 지시 메시지 7초 후에 말입니다.
드러난 현상만을 놓고 본다면, '주포' 김 씨가 '선수' 민 씨에게 내린 매도 지시가 누군가를 통해 김 여사에게 전달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이 거래에 대해 김 여사는 전 정부 수사팀 때의 서면 조사에서는 물론, 지난 7월 이뤄진 현 수사팀의 대면 조사에서도 '누구와의 상의 없이 자신의 독자적인 판단으로 직접 매도 주문을 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걸로 파악됩니다.
문자를 주고받으며 통정매매를 실행하던 '주포'와 '선수'는 물론,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과 같은 제3자를 통한 의사 전달도 없었다는 겁니다. '주포'와 '선수' 사이 문자에서 오간 내용의 매도 주문이 자신의 계좌에서 그대로 실행된 건 순전히 '오비이락'일 뿐이라는 논리입니다.
당초 검찰 수사팀은, 이 거래 당시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을 통해 김 여사에게 연락이 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나 설령 권 회장 등 제3자를 통해 김 여사에게 매도 권유 등의 연락이 갔다고 하더라도, 김 여사가 '주포'와 '선수'의 주가 조작 실행 상황을 몰랐다면 법리상 <공범>이 되기는 어렵다고도 봤던 걸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김 여사는, 검찰 조사에서 주가 조작 피고인들과의 연루 가능성 일체를 차단하는 구조의 진술을 남긴 겁니다. 이런 김 여사 설명은 많은 사람들의 통념과도 반할 뿐더러, 실제 일어났다고 하기에는 확률적으로도 매우 어려워 보입니다. 또한, 해당 거래가 '통정매매'였다는 법원 판단과 양립하기에도 상당히 부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김 여사 본인의 무결성을 주장하기 위한 형식 논리적 측면에서 봤을 때는 완전한 '철벽'을 친 셈이기도 합니다. 주가 조작의 '주포'나 '선수', 누구와의 연락도 상의도 없이 김 여사가 직접 가격과 물량을 정해서 낸 매도 주문이, 하필이면 주가 조작 세력의 모의 내용과 우연히 맞아떨어져서, 결과적으로 '주포'와 '선수' 사이의 통정매매가 성립했다는 겁니다.
오랜 수사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김 여사가 친 '철벽'을 깨기 위한 결정적 증거를 찾지는 못한 상태입니다. 전 정부 수사팀은 물론 현 정부 수사팀도 '주포' 또는 '선수'의 휴대폰을 압수수색해 김 여사와 연락한 내역을 뒤졌지만,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김 여사에게 매도 권유를 했을 수 있는 권 회장 등 제3자의 휴대전화 통신 기록에서도 통정매매 실행 당시 김 여사와 연락이 오간 '물증'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1, 2심에서 모두 유죄가 선고된 세력들은 긴 검찰 수사 과정에서도 '통정매매 당시 김 여사의 연루가 있었다' 거나 '연루된 걸로 알았다'라는 진술을 남기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됩니다.
주가 조작이 실행되던 시기에 김 여사가 범행 세력과 직접 공모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들 사이의 인적 연관성을 암시하는 정황과 증거들이 길어진 재판 과정과 언론 보도를 통해 나오고 있습니다.
그간의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김 여사는 코스닥 시장에서 한때 이름을 날린 '서 회장'을 통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피고인인 이종호 전 블랙펄 인베스트먼트 대표를 만난 것으로 파악됩니다. 김 여사 측은 '어머니인 최은순 여사가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을 알고 지냈고, 이런 경위로 도이치모터스에 투자하게 된 것'이라는 취지로 해명해왔는데, 이것 외에도 주가 조작 피고인들과 추가적인 인적 관계가 있었던 겁니다.
김 여사가 누군가와 알고 지냈다는 건 주가 조작 혐의 성립과는 "법리적으로는" 무관하지만, 수사와 재판이 늘어져 사건이 장편 드라마처럼 소비되는 상황이 되면서, 이러한 정보의 조각들은 대중들의 머릿속에 부정적인 서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도이치모터스 검찰 수사가 시작된 직후인 2020년 9월부터 한 달 정도 기간 동안, 김 여사 명의 휴대폰과 이종호 전 블랙펄 인베스트먼트 대표 사이에 수십 차례에 이르는 통신기록이 있었다는 사실도 드라마의 불을 지피는 땔감이 되고 있습니다. 이종호 전 대표는 '채 상병 사건'이 일어난 뒤 김 여사와의 인연을 이용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구명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에도 등장했었는데, "김 여사가 결혼한 이후엔 연락을 한 적이 없다"라고 강변해왔기 때문입니다.
이종호 전 대표는 SBS에 "김건희 여사 번호로 전화가 오긴 했지만, 김 여사 회사 직원과 통화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또 "검찰 진술 조서에 통화 상대방이 김 여사로 기재된 건, 조사 과정에서 해당 번호를 '김 여사'로 통칭하자고 했기 때문"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김 여사 측은 비교적 최근인 2020년의 통화의 당사자가 누구였는지, 내용은 무엇이었는지 등에 대해 수사 과정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도이치 주가 조작 '주포'인 김 모 씨와 김 여사 계좌를 주가 조작에 이용한 블랙펄 인베스트먼트 임원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에 김 여사가 언급된 사실 등도 언론에 알려졌습니다. 사실 이러한 자료들은 대부분 전 정부 수사팀 때 확보된 것들이고, 당시 수사팀 내에서도 갑론을박이 오갔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김 여사의 짙은 연루 정황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기도 하지만, 주가 조작 공범들이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당시 검찰총장의 부인을 언급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박탈한 환경에서도 당시 수사팀은 이 자료들만으로는 김 여사를 기소하긴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또 2년 넘는 시간이 흐르며, 검찰이 '죽은 재료'라 판단했던 사실들이 되살아나 복잡한 상황을 만들고 있습니다.
서울중앙지검은 여전히 '김 여사를 기소하기 쉽지 않다'라는 기류가 우세한 걸로 파악됩니다. '증거와 법리가 세세하게 드러나지 않았던 수사 초창기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라는 겁니다. 고발 이후 4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건 관계인들의 연루 여부를 판단할 여러 증거가 드러나 저울 위에 올라가 있고, 1·2심 재판부의 법리까지 확립된 상황이라 '기소의 허들이 높아졌다'는 게 현재 서울중앙지검의 주된 시각입니다.
수사에 관여하지 않은 검찰 구성원들은 복잡한 마음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지금의 정치 환경에서, 이 사건 처분의 여파는 이 사건 하나만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시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무혐의 처분 뒤 여론의 역풍이 예상보다 커진다면, 한동훈 당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 갈등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 내에서도 정치적 지형이 바뀔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됩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검찰 간부들의 입에서는 '이럴 거였으면 차라리 빨리 처분하는 게 나았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수도권의 한 검사장은 "차라리 전 정부 수사팀에서 기소 처분을 내렸다면 지금쯤 법원에서 결론이 나왔을 거고, 사회적 갈등도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고, 지방의 다른 검사장도 "완벽하게 처분하려다 보니 정권을 넘기고 2심 결과까지 기다리게 된 것 같은데, 너무 무리한 꿈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라고 말했습니다.
퇴직한 한 검찰 간부는 "정권이 바뀐 뒤 이원석 검찰총장이 일찍 수사지휘권 복원을 요청해 임기 중에 사건을 정리하고 갔어야 한다"며 "책임을 미루다 여러 면에서 실기한 것 같다"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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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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