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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서승욱의 시시각각] 차라리 내각제가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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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서승욱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일본 정치는 전 세계적으로 사례가 적은 ‘1개 정당 우위 체제’다. 1955년 창당된 자민당이 정권을 내려놓은 건 1993~94년 비(非)자민·비(非)공산 연립정권 때와 2009~2012년 민주당 정권 시절뿐이다. 대신 당 내부적으로 여러 파벌이 대립하고 경쟁하며 정권을 교대로 담당해 왔다. 기시다 정권 때 터진 정치자금 스캔들로 이제 대부분의 파벌은 와해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헤게모니 견제와 당내 정권 교체 효과 등 파벌의 순기능도 솔직히 없지 않았다.



일본 자민당 장기 집권의 배경엔

경쟁과 포용 통한 당 내 정권교체

위기의 한국 정치, 변화 모색해야

자민당이 지향해 온 ‘타원의 정치’ 철학도 주목할 만하다. ‘원은 중심이 하나, 타원은 중심이 두 개, 즉 두 중심이 서로 경쟁하고 다른 의견도 포용하며 균형을 잡는 정치’를 추구한다는 의미다. 원래는 자민당 내 리버럴계 명문 파벌 고치카이(宏池會)를 지탱해 온 원칙이었는데 자민당 전체로 전파됐다. 패권보다는 밸런스와 균형을, 독선과 독단보다는 집단 지성을 앞세워야 한다는 취지다. 내각제 특성상 권좌에서 언제 끌어내려질지 모르니 민심과 여론의 동향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울트라 보수인 아베 정권의 독주가 장기화하면서 의미가 많이 퇴색하긴 했지만, 유례가 없는 자민당의 장기 집권엔 이런 유연한 사고 틀이 큰 역할을 했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새 총리는 서슬 퍼렇던 아베 정권 당시 비주류로 대척점에 섰다. 그의 자민당 총재 선출은 당 내부 정권 교체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 두 차례 6년에 걸쳐 주일특파원으로 일본 정치를 지켜봤는데 솔직히 이시바가 총리 자리를 거머쥘지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늘 일반 국민들 사이에 지지가 높았지만 자민당 의원들에겐 인기가 없었다. 평생 비주류에 머물 것 같던 그가 이번엔 스가·기시다 전 총리의 전폭적 지원 속에 결선투표에서 대역전의 드라마를 썼다. 여기에도 자민당 내부의 자기방어 기제가 작동했다. ‘여자 아베’로 불리며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제집처럼 드나들었던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경제안보담당상이 총리가 될 경우 역사인식의 문제로 한·미·일 협력이 뒷걸음칠 수 있다는 우려가 의원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당내 큰손인 스가와 기시다를 비롯해 자민당 온건파들이 힘을 합쳐 ‘극우 정당’으로의 일탈과 역주행을 막은 셈이다. “다카이치가 당선되면 이민이라도 가려 했는데, 일본의 양심이 살아 있어 다행”이란 일본인 지인의 소감 역시 같은 맥락이다.

유례없이 치열했던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자 면면을 지켜보며 그들의 경력에 저절로 눈이 자주 갔다. 후보들 대부분이 외상이나 관방장관 등 내각의 요직이나 당내 주요 포스트를 거쳤다. 경험으로 따지면 누가 총리가 되든 자기 몫을 해낼 진용이었다. 일본 정치가 리더를 키우는 방식이기도 하다.

자, 이제부터는 한국 정치 이야기다. 특파원 시절 “국민들이 지도자를 자기 손으로 뽑고, 리더가 소신 있게 국정을 펴는 한국의 제도가 부럽다”는 말을 일본인들에게 자주 들었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한국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은 실제로 일본 총리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국민들이 부여하는 민주적 정당성이 중요한 가치임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 민주적 정당성이 경험 미숙을 가리거나, 독주와 오만을 합리화하거나, 비판에 귀를 닫는 수단으로 변질되는 모습을 우리는 너무 생생하게 목격해 왔다. 반대로 그 절대적 권력을 뺏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극단적인 야당의 행태도 비일비재했다. 중도 확장보다 진영 결집이 우선시되는 풍토도 우리의 대통령제와 무관치 않다.

이쯤 되면 우리도 새로운 실험이나 대안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매일 싸움만 하는 토양에 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가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반론도 물론 있다. 그러나 요즘 한국 정치를 보면 어떤 제도든 지금보다 더 바닥일까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여러분들 견해는 어떠신가.

서승욱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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