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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훈훈한 로마네스크,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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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성공회는 스스로 “개혁된 가톨릭” 또는 “가톨릭 전통의 개신교”인 포용과 통합의 기독교라고 설명한다. 1890년 잉글랜드 성공회 소속 사제들이 입국해 조선 선교를 시작했고 2년 뒤 덕수궁 옆 현 위치에 ‘장림성당’을 세웠다. 이곳은 이미 영국대사관과 관저가 들어선 한양 안의 작은 영국이었다.

1911년 조선교구의 3대 주교 마크 트롤로프(한국명 조마가)는 새로운 대성당 건축을 계획했다. 건축가와 협의 끝에 서울주교좌성당은 초기 교회 형식인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결정했다. 이미 가톨릭의 명동성당이 위용을 드러낸 후, 한양의 교회와 성당은 거의 모두 고딕양식을 따르던 터였다. 수직적이고 화려한 고딕보다 수평적이고 소박한 로마네스크가 한옥으로 가득한 덕수궁과 한양에 더 어울린다는 판단이었다. 트롤로프는 1900년 강화도에 한옥 성당을 건설할 정도로 한국 문화와 전통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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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축성한 대성당은 공사비 부족으로 부분 완공에 그쳤다. 건축가 아더 딕슨은 교회 건축 전문가로 완벽한 십자가 모양의 성당을 설계했으나, 날개부(部)인 트란셉트를 생략하고 예배석도 7칸 중 4칸만 완공해 짤막한 일(一)자형 성당이 되었다. 제단부만 계획대로 건설해 입체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딕슨은 ‘예술과 공예운동’의 본산인 옥스퍼드 출신으로 건물 외벽의 아치 장식이나 내부의 모자이크 벽화를 뛰어난 공예적 솜씨로 처리했다. 스테인드글라스의 격자형 창살이나 저층부 지붕의 한식 기와 등 한국적 전통도 일부 첨가했다.

1994년 대성당 완성을 위한 증축설계를 당대의 건축가 김원에게 의뢰했다. 그는 수소문 끝에 딕슨의 설계도를 영국 지방의 한 도서관에서 찾아냈고, 고심 끝에 자신의 계획안을 포기하고 원래의 설계를 충실하게 재현했다. 트란셉트를 복원하고 예배석도 7칸으로 늘렸다. 시대를 뛰어넘은 두 건축가의 노력으로 유일한 로마네스크 건축을 완성해 국제도시 서울 중심부에 풍성하고 다양한 경관을 선물했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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