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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화된 뉴스는 이제 그만, 이슈의 맥락을 읽는 재미를 담았습니다.
트럼프의 지난 9월 10일 대통령 선거 후보 TV 토론을 전후해, 한 여성이 미국 언론들의 주목을 받았다. 트럼프 선거캠프의 직책을 맡고 있지는 않지만 트럼프가 유세를 다닐 때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목격되는 측근 중 한 사람이다. 이 여성은 TV 토론이 열리는 필라델피아에 전용기편으로 트럼프와 함께 도착하기도 했다. 토론 다음 날 9·11 테러 희생자 추모 행사장에서도 트럼프와 함께 목격됐다.
트럼프 전용기에서 내리는 로라 루머, 필라델피아. 사진 : AP,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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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토론에서 가장 큰 파장을 남긴 트럼프의 발언은 "불법 이민자들이 주민들의 개 고양이 잡아먹는다"는 발언이다. 아무 근거 없는 혐오 조장 유언비어로 이미 팩트체크가 끝난 사안인데, 공화당 주변에서는 '대체 누가 저런 극단적인 유언비어를 후보님 귀에 집어넣어서 전국 방송으로 나가게 만든 거냐'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중도파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트럼프 발언의 원천이 그녀로 드러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해리스 당선되면 백악관에 커리 냄새"
트럼프는 '해리스가 흑인인 줄 몰랐다, 인도 사람이라고 하더니 대선 후보가 되면서 흑인 행세를 하고 다닌다'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해리스의 아버지는 흑인이고 어머니가 인도인인데, 해리스 본인이 학생 시절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흑인으로 규정했다. 해리스는 흑인 학교를 다니고 흑인으로서 사회생활과 정치 커리어를 이어왔다. 그런 사람에게 '너는 흑인 아니고 인도인'이라는 건, 상대의 인종을 제멋대로 규정하는 백인 우월주의적 태도여서 트럼프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트럼프가 머릿속에 이런 생각을 담게 된 것도 로라 루머의 영향이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해리스는 인도계이지 흑인 아니지 않느냐"는 트럼프 발언은 7월 말이었는데, 그 얼마 전에 루머가 그런 주장을 담은 소셜미디어 포스팅을 올렸고, 트럼프가 그걸 봤다고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문제의 발언, 로라 루머 X 계정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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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많은 기업들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콜센터를 인도로 옮겼다. 영어가 아예 안 통하는 건 아니지만 심한 인도 억양 때문에 알아듣기도 어렵고 해결되는 일도 없어서 미국 소비자들은 인도 콜센터에 진절머리를 낸다. 루머는 그런 이미지를 해리스에게 덧씌우려 한 것이다. 악질적인 인종 차별적 발언이다.
장막 뒤에서나 존재해야 할 극우 커뮤니티의 각종 음모론과 인신공격 등을 트럼프의 귓속에 집어넣는 게 바로 로라 루머라는 얘기가 공화당 안팎에서 나온다. 지난 7월에는 해리스를 "약쟁이 매춘부(drug using prostitute)"라고 비난해서 물의를 빚은 적도 있다.
트럼프와 무슨 관계? 의심의 눈초리도...
대통령 선거가 석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 후보와 지근거리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모습이 사진으로 보도된다는 건 건 정치적으로 상당한 메시지를 지닌다. 그 사람이 '숨은 실세'라는 메시지를 주변 모두에게 줄 수 있다. 우리나라 정치에서만 봐도, 대선 후보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그야말로 치열한 권력 싸움이 벌어진다.
아래 사진은 수지 와일스(Susie Wiles), 크리스 라시비타(Chris LaCivita)와 로라 루머가 함께 찍힌 것인데, 특히 많은 것을 시사한다.
9·11 기념일을 맞아 뉴욕의 소방관들을 만나는 트럼프를 기다리는 로라 루머(왼쪽에서 두 번째, 손에 휴대폰을 든 여성. 맨 왼쪽 은발 여성이 수지 와일스, 로라 루머 오른쪽의 폰 들여다보는 남성이 크리스 라시비타). 사진 : AP,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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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 와일스와 크리스 라시비타는 트럼프 재선 선거캠프의 투톱이다. 선거운동의 메시지와 비용 집행, 조직 등 모든 실무를 총괄한다. 트럼프가 많은 실수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민주당에 위협적인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는 건 이 두 사람이 영리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선거운동 실무를 지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모들을 갑자기 내치거나 참모끼리 싸움 붙이는 걸 즐기는 트럼프지만, 이들과는 잡음을 빚은 적도 없다. 그만큼 신임이 두텁다고 알려져 있다.
로라 루머가 트럼프 유세 행사를 앞두고 이 두 사람과 함께 있다는 건, 그만큼 로라의 입지가 강하다는 뜻이다. 트럼프의 연설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트럼프가 총애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캠프 조직이나 경호원들이 다 잘 알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LIV골프 대회에서 함께 한 트럼프와 로라 루머, 지난해 8월. 사진 : 로라 루머 X 계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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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트럼프와 로라 루머 두 사람이 '로맨틱한 관계'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트럼프 당선 시 영부인이 될 멜라니아는 같이 다니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여러 매체의 칼럼이 이 문제를 지적했다. 트럼프는 1990년대 초, 첫 부인 이바나와 이혼하고 무명 배우였던 말라 메이플스를 두 번째 부인으로 들일 때도 보란 듯이 이런 행실을 보인 적이 있다.
트럼프와 로라 둘 다 그런 개인적 관계는 없고 정치적으로 뜻을 같이하는 관계일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미디어의 시선이 쏠리는 건 사실이다. <피플> 등 대중지들이 로라 루머와 트럼프에 관해 기사를 실었다.
"나는 자랑스러운 이슬람혐오주의자"
로라 루머는 대학생 시절부터 보수 이념 신봉자였으며, 대학 언론과 각종 군소 매체들에서 함정취재와 탐사보도를 하며 경력을 쌓았다. 그러다가 우익 정치 인플루언서의 길로 나섰다.
유대계인 루머는 무슬림에 대한 적개심이 강하다. 스스로를 '친 백인 국수주의자'로 규정하며, '이슬람혐오주의자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밝힌 바 있다. 2017년 트위터에선, 지중해를 건너다 익사한 난민이 그 해에만 2천 명을 넘었다는 글을 공유하면서 "좋아! (박수 이모티콘) 2천 명 더 가자!"라고 쓰기도 했다.
로라 루머 트위터(현 X)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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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머는 제도권 정치 진입도 시도했다. 2020년 선거 때는 연방 하원의원 선거 본선에 나갔다. 트럼프의 마러라고 리조트를 포함한 플로리다의 지역구에서 "이슬람은 인간성에 대한 암이다" 등 혐오 구호를 내걸어 당내 경선에서 승리했는데, 본선에서 민주당 후보에 패배했다. 2020년은 트럼프가 바이든에게 백악관을 내주던 선거였다. 루머는 2022년에도 하원의원 선거에 도전했지만 공화당 당내 경선을 뚫지 못했다.
CNN은 로라 루머가 지난 2022년 한 행사장에서 유명한 극우 백인우월주의자 닉 푸엔테스와 건배하던 영상을 보도했다. 여기서 루머는 "공화당의 적대적 M&A를 위하여!!"라는 건배사를 한다.
CNN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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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공화당은 여전히 레이건-부시 스타일의 보수주의 정당이었다. 극우 인종주의와 풀뿌리 민주주의를 가장한 포퓰리즘에는 선을 긋고 있었다. 그런 공화당을 '적대적 M&A' 하겠다는 건, 의회 입성을 통해 극우 이념을 실제 제도권 정치로 끌고 들어가겠다는 야심으로 보인다.
그녀는 트럼프를 어떻게 만나게 됐을까
로라 루머가 트럼프의 눈에 들게 된 건 트럼프가 대통령이던 시절인 2017년으로 알려졌다. 2017년 여름 뉴욕 센트럴파크 셰익스피어 연극제에서 <줄리어스 시저>가 상연됐다. 연출진은 트럼프 비판을 연극에 담아, 암살당하는 시저(카이사르) 역의 의상과 분장을 트럼프처럼 했다. 이때 공연을 보던 한 여성이 "이건 트럼프에 대한 정치적 폭력이다! 우익에 대한 정치적 폭력 정당화 중단하라!" 소리치며 공연을 중단시켜 유명해졌는데, 그게 바로 로라 루머였다.
2017년 문제의 <줄리어스 시저> 리허설 장면. 왼쪽에서 두 번째가 트럼프처럼 분장한 시저(카이사르) 역의 배우. 사진 : A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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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 트럼프의 마러라고 리조트를 포함한 지역구에서 루머가 하원의원 선거에 나섰을 때, 트럼프는 트위터 게시물로 루머를 응원했다. 루머는 2021년 이후만 따져도 9번 이상 마러라고 리조트로 트럼프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에는 대선 재도전에 나서면서 트럼프가 루머를 온라인 담당 참모로 선거캠프에 정식 채용하려 했으나 다른 측근들이 겨우 뜯어말렸다고 한다.
그 후에도 트럼프는 계속 루머를 가까이에 두었다. 루머는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드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를 물어뜯는 등 트럼프의 '온라인 사냥개' 역할을 자임했다. 트럼프는 그런 그녀를 "용기 있는 여인",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람", "자기 생각이 뚜렷한, 자유로운 영혼" 등으로 두둔했다. 때로는 유세 집회에 모인 대중 앞에서 그녀를 칭찬했다.
지난 9월 15일 트럼프에 대한 또 한 차례의 암살 시도가 드러난 직후, 문제의 플로리다 골프장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는 로라 루머. 사진 : AP,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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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TV 토론 직후 그녀를 내치라는 후원자와 지지자들의 요구가 이어지자 트럼프는 '루머는 선대본부 일원이 아니고 자신은 그녀와 생각이 다르다'면서도 그녀를 내치지는 않겠다는 뜻을 담은 글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렸다. 루머는 "나를 지지하는 수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나를 공격하고 음해하는 급진좌파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신물이 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이다.
마가(MAGA) 내부 권력 투쟁? 여여 갈등?
공화당은 트럼프가 루머를 가까이 두는 게 여러 가지로 선거에 도움이 안 된다며 전전긍긍한다. 중도 표를 끌어와야 선거를 이길 수 있는데, 루머의 영향으로 트럼프가 극우적인 발언을 하거나 인터넷상의 음모론을 언급할 때마다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급기야, 하원 공화당의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 의원들 중에서도 가장 강경한 축으로 손꼽히는 마저리 테일러 그린 의원(줄여서 MTG)이 로라 루머를 비판하고 나섰다.
남부 경합주인 조지아에서 지원 연설하는 마저리 테일러 그린 의원. 사진 : 게티이미지,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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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머가 말하는 것들은 도가 지나쳤고 끔찍할 정도로 인종 차별적이며, 트럼프의 선거에 도움이 안 되고 마가(MAGA)와 관계가 없다고 선을 긋고 나선 것이다. 마저리 테일러 그린은 의회에서 가장 막무가내 강경파 트럼프주의자로 악명이 자자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어쨌든 다양한 유권자들로 구성된 선거구에서 선거를 치르고 입법의 성과를 내야 하는 제도권 정치인이다. "심지어" 마저리 테일러 그린마저도 루머를 비판한다는 게 미국 정가에서 상당한 화제가 되었다.
상원 공화당에서 트럼프의 강력한 지지자이자 후원자를 자처해 온 린지 그레이엄 의원도 로라 루머는 "매우 독성이 강하다"며 비판에 나섰다. 평소 마저리 테일러 그린과 결이 맞지 않던 그는 "이번만은 내가 마저리와 동의해야겠다"며 루머 비판에 가세했다.
이에 대한 루머의 응수가 재미있다.
"당신들은 트럼프 전용기 못 타는데 나는 타니까 부러워서 질투하는 거지?"라고 X(옛 트위터)에 글을 올린 것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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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식 D콘텐츠 제작위원 hyunsi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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