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글방' 운영하는 김현아 작가
'글 스승'으로 숱한 작가 자체발광 도와
현 시대 여성작가 주목은 200년 결과물
남성 이야기와 고루 섞여야 시대성 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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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글에도 고유한 지문이 있다고 한다. 작가의 내면이 저마다의 색채를 띠고 세상을 향해 발광(發光)하기 때문이다. 재기발랄한 문체가 시선을 뺏을 수도 있고, 기발한 사고가 무릎을 ‘탁’ 치게 만들 수도 있다. 솔직한 글에는 그 사람이 담겨있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는 자기 존재를 세상에 증명하는 행위이며, 그런 글을 매만지는 건 글과 작가 존재의 발광 정도를 높이는 일이다.
김현아(어딘)는 숱한 작가들의 글 전압을 조절하고 스위치를 올려 자체 발광을 도운 글 스승이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시민단체와 노동조합 등에서 글 경험을 쌓은 그는 학교 안과 밖을 오가며 학생들이 글로 생각을 벼리도록 도왔고, 그들이 인생의 단독자로 바로 서도록 격려했다. 학생들에게 "글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란 곧 삶을 해석할 줄 아는 사람"이라 가르쳤다. 단순 글쓰기 기술이 아니라 삶을 관조하고 조율하도록 도왔다. 그 결과 저마다의 빛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작가들이 탄생했다. 그런 그를 향해 이슬아 작가는 "넘어야 할 산이자, 돌아오고 싶은 언덕"이라고 했고, 이길보라 영화감독은 "(어딘과의) 글쓰기를 통해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에 질문을 던지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스스로의 삶을 관장하고 주체적으로 사는 이들이 서로 기대고 의지하는 공간을 표방하는 ‘어딘글방’을 운영하는 김현아 작가를 최근 서울 종로구 동숭동 예술가의 집에서 마주했다.
파워 K우먼-어딘 작가가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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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황이 궁금하다.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글방을 운영하고 글 쓰는 루틴을 지키고 있다. 3년 전부터 글방을 다시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나’라는 질문에 "일주일에 한 편씩 한 번도 빠지지 않고 3년"이라고 답하곤 하는데 내년 3월이면 딱 3년이다. ‘토요글방’ ‘일요글방’ ‘어린이글방’ ‘청소년글방’ 등 거의 매일 글방을 하고 있다.
- 어딘글방에서 글공부했던 기억을 소중히 기억하는 작가가 많다. 어딘글방이 지닌 특별함 내지 고유함이 있었을 것 같은데.
▲우연한 기회에 최근 어딘글방에 몸담았다가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을 리스트업해 봤더니 수가 많더라. 이슬아, 이길보라, 안담, 이다울, 양다솔, 하미나 등. 이들이 보내주는 출간작만 책장 3칸에 달한다. 돌이켜보면 그들의 열정이 대단했다. 청춘의 시간을 아낌없이 글방에서 보냈다. 나중에 들어보니 안 좋은 피드백을 받은 날은 울면서 집에 가고 '두고 보자, 다음 주에는 반드시 좋은 글 들고 간다'며 이를 갈았다고 하더라. 사실 다른 글방을 가본 적이 없어 비교가 어렵지만 어딘글방에는 그런 치열함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계속 책을 내는 새로운 작가들이 나오고 있다.
- 어딘글방 출신 작가들은 한결같이 매서웠던 합평(합동평가)의 순간을 기억하더라.
▲그때는 몰랐다. 그런 줄 알았더라면 그렇게까지는 안 했을 텐데.(웃음) 예나 지금이나 글에 관해서라면 정직하게 이야기한다. 글이 좋을 땐 그 좋음의 어떠함을 정확하게 짚어냈고, 반대로 한계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꼬집었다. 그들의 웃기고 재미있는 글을 읽는 즐거움이 굉장했다.
- 지금도 합평의 매서움은 여전한가.
▲음...지금은 살짝 눈치를 본다.(웃음) 누군가가 옛날만큼 안 무섭다고 하더라.
파워 K우먼-어딘 작가가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 라운지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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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를 즐겼을 것 같은데, 언제부터 글과 동행하기 시작했나.
▲본격적으로 글을 쓴 건 대학 때 문학서클에서 동인 활동을 하면서부터다. 글쓰기에 대한 공통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글을 쓰고 합평을 했다. 동화작가 정승희, 시인 이한주 등이 당시 구성원이었다. 청계피복노동조합 문학반 강사를 하면서도 합평의 형식으로 운영했다. 그렇게 보자면 40여년 읽고 쓰고 합평하는 시간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 같다.
- 오랫동안 글방 운영을 지속하고 있는데, 지속 동력은 무엇인가.
▲동력은 너무나 분명하다. 글방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다. 아직 작가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 써내는 근사한 글이 주는 매력이 있다. 보통 합평 전 미리 마감하는데, 어떨 때는 읽은 글이 너무 좋아 빨리 내일이 오길 기다린다. 당신의 글이 얼마나 멋진가를 빨리 말해주고 싶어서다. 모두가 책을 내고 작가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그런 사람은 작가가 되더라. 이슬아 작가의 ‘가녀장의 시대’가 최근 대만 베스트셀러 7위에 올랐다더라. 한 작가의 성공도 매우 축하할 일이지만 그의 글로 인해 많은 한국 여성 작가가 알려지는 계기가 될 거라 생각한다. 프론티어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 글방 운영이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이었나. 아니라면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이었나.
▲글방은 도전이라기보다는 즐거운 일이었다. 사실 도전의 시기에는 그것이 도전인 줄 모르고 그냥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이 일을 돌파하지’라는 생각을 하지 ‘아 이게 내 인생의 도전이구나’ 그런 생각은 안 한다. 돌이켜보면 도전의 순간들이 있었다.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취재를 위해 베트남을 다니고 한국 사회에 그 사실을 공유하고 책으로 내는 일들이 지금 생각해 보면 도전이었던 것도 같다. 여행학교 ‘로드스꼴라’ 학생들과 함께했던 안나푸르나 등정도 도전이라면 도전이었겠지만 그 순간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 개인적으로 글쓰기를 통해 어떤 유익을 얻었나.
▲첫 책이 ‘전쟁의기억 기억의전쟁’(2002)이다. ‘나와우리’ 라는 시민단체에서 일하면서 쓰게 됐는데, 팩트체크하면서 너무 많은 공부를 하게 됐다. 당시 신문, 잡지, 논문 자료 등을 다 확인하는 과정에서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모든 글쓰기가 그렇다. 예를 들어 나는 논개가 왜 죽었을까 궁금했는데 논개가 의기라 칭해지기까지 200여년에 가까운 이야기가 있다는 걸 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다.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깊이 알게 되었다. 그렇게 공부를 하고 나면 어렴풋이 왜 논개가 적장을 안고 남강 푸른 물로 뛰어들었는지 알 거 같기도 하다. 하와이 사탕수수 이민사와 사진신부, 고려인 이야기를 들여다보면서 사고 확장 경험을 많이 하게 됐다. 글은 쓰면 쓸수록 즐거운 의식의 진화를 일으킨다.
파워 K우먼-어딘 작가가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 라운지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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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방을 운영하면서 학생의 삶이 글쓰기를 통해 변화하는 과정을 마주했을 것 같은데, 유독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는지.
▲2년여 글방에서 함께 글을 쓰다 최근에 ‘속 깊은 무관심’이란 책을 낸 김수현 작가의 경우도 기억에 남는다. 김 작가는 엄마, 아빠 없이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어버이날이 되면 학교에서 엄마, 아빠께 감사 편지를 쓰는 시간이 있었는데 1, 2학년 때는 꼭 엄마, 아빠한테 써야 하는 줄 알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연필을 물고 다른 친구들이 쓰는 편지를 구경하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그때 저도 ‘아!’ 했다. 어버이날 같은 때 엄마, 아빠에게 편지를 쓰는 게 아니라 키워주신 분께 편지를 쓰라고 해야 하는구나, 이 글이 교육청에 전해져 이런 지침이 전국의 학교에 전달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속 깊은 무관심’은 엄마 없이 사는 삶을 대하는 우리 사회에 대한 빛나는 통찰이 담겨있다.
- 최근 출판계에서 여성 작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이 땅에서 여성이 글로 자기 이야기를 빚어낸 역사는 200년도 채 되지 않는다. 조선 시대만 해도 글을 다루는 여성은 기생 아니면 사대부 집안의 일부 여성이었다. 200년의 결과물이 이제야 나타나는 것 같다. 문자를 다룬 4000여년 역사 속 대다수 작가는 남성이었다. 할리우드 영화의 영웅 서사도 계속 보면 지루한 법이다. 문자 저장 측면에서 이미 90% 정도가 남성 데이터인데, 그 안에 여성 이야기가 골고루 섞여들어야 시대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글과 동행하는, 혹은 동행할 예정인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
▲글쓰기는 알고 보면 육체노동이다. 만만치 않은 일이다. 종종 우아한 독자로 남으라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하곤 했지만 최근에는 조금 다르게 이야기한다. 디즈니, 넷플릭스가 당신의 이야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정진해보라고. ‘파친코’가 준 힌트가 크다. 사피엔스는 이야기를 기반하는 종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 종은 스토리버스(storyverse) 속에서 울고 웃고 꿈꾸고 사랑하고 진화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야기는 이어질 것이다. 지속적으로 쓰는 훈련은 함께할 때 힘이 난다. 다양한 글쓰기 공간이 열려있으니 잘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글쓰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문장이다. 훈련이 필요하다.
김현아 작가는,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고, 1993년 전태일 문학상을 받았다. 시민단체 ‘나와우리’를 설립해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문제를 풀기 위한 활동을 했고 청계피복 노동조합의 문화학교 일을 하기도 했다. 대안학교 ‘로드스꼴라’와 글쓰기 모임 ‘어딘글방’ 등을 운영했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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