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티람브로 재해석한 작품 41점 전시
신화·고전 기반 생명력 넘치는 회화전
원색 사용하는 등 과감한 시도 돋보여
대전 헤레디움서 내년 2월 28일까지
작품은 마르쿠스 뤼페르츠 '에우로파와 배' 헤레디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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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대전=유선준 기자】 "작품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단순히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저와 캔버스 간의 관계, 그리고 '회화'라는 거대한 과거와 역사에 관한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의 재해석을 통해 근원적 질문에 도달하고, 신화·고전 기반의 자유로운 생명력 넘치는 회화전이 대전에서 열린다. 대전 헤레디움은 독일 현대 미술계의 중심적인 작가로 평가받는 마르쿠스 뤼페르츠(Markus Lupertz)의 개인전 '죄와 신화, 그리고 다른 질문들'전(展)을 내년 2월 28일까지 개최한다. 그의 국내 미술관 개인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뤼페르츠는 회화의 참된 본질 탐구를 통해 '회화의 힘'을 갱신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추상미술과 개념미술이 거센 흐름을 만들던 1980년대 '회화를 위한 회화, 열광적인 회화'라는 슬로건을 앞세운 그는 회화의 내용적 측면보다 색과 형태의 상호작용 등 '회화'라는 매체 자체에 집중하며 '디티람브'(Dithyramb)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었다.
고대 그리스의 주신(酒神) 디오니소스에게 바치는 찬가를 지칭하는 '디티람브'는 '추상적이면서 동시에 구상적인 것'을 의미하는 모순적인 용어다. 특정 이미지가 무엇을 의미하기보다는 추상적이고 회화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번 전시는 1980년대 후기작부터 최신작까지 뤼페르츠의 모든 예술관을 관통하는 '디티람브' 개념에 기반한 33개의 회화와 8개의 조각을 선보인다.
다프네(Daphne), 님프(Nymph), 헤라클레스(Hercules) 등 우리에게 익숙한 고대 그리스 신화 속 다양한 인물들은 전통적인 기준을 거부하는 동시에 암시적이고 추상적인 형상으로 재탄생했다. 17세기 프랑스 회화의 시조 니콜라스 푸생(Nicolas Poussin)의 작업을 기반으로 한 시리즈도 만나볼 수 있다.
인간의 숭고한 선과 윤리적 행위의 중요성을 성경, 신화, 철학을 통해 풀어내는 푸생의 기존 작업 방식에서 벗어나 내용으로부터 자유로운 형상들을 적극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1981년 조각가로 예술 활동을 넓힌 뤼페르츠는 브론즈 조각 위 선명한 원색을 입히는 등의 과감한 시도를 통해 신화를 재해석하며 미술계에서 논란과 경외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 신화를 재해석한 주요 작품 가운데 '에우로파와 배(2020)'는 마네의 '올랭피아'와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를 연상케 하는 작품이다.
그림 속 주인공인 에우로파는 '유럽의 기원'이라 불리는 여신으로, 요염하기 보다는 암시적인 인물로 다가온다. 통상적으로 에우로파와 비너스는 바다와 함께 묘사되지만 뤼페르츠는 배경에 호수를 그려 넣고, 낡은 조각배를 추가했다.
이는 그의 작업실 주변 풍경을 작품에 대입한 것으로 보인다. 여인 앞에는 죽은 소의 두개골을 커다랗게 그려 넣어 인간의 등짝에 달라붙어 있는 죽음을 배치해 삶과 죽음의 연관성을 내비쳤다.
뤼페르츠의 연작 회화인 '다프네(2020)'도 그의 끈질긴 고전 재해석을 보여주는 시리즈다.
붉은 천을 걸친 사람은 도망치는 듯 절박하게 어딘가를 응시하고, 뻗은 팔에서 나뭇가지가 솟아나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이 작품은 그리스 신화 속 '다프네의 비극'을 모티프로 한다.
다프네라는 요정이 아르테미스를 흠모하는 상황에서 에로스의 장난으로 다프네에게 반해버린 궁술의 신 아폴론이 그에게 열렬히 구애했다.
이에 아폴론을 피해 도망치던 다프네는 아버지인 페네이오스에게 '나를 다른 존재로 변하게 해달라'고 간청했고, 아버지는 다프네를 월계수 나무로 변하게 했다. 아폴론은 나무로 변한 다프네를 발견하고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월계관을 만든다.
뤼페르츠는 이들의 '엇갈린 사랑'에 초점을 맞춘 대다수 작가와 달리, 다프네가 나무로 변하는 순간 만을 작품에 그려 넣었다. 신화 속 절세미인인 다프네를 울퉁불퉁 뒤틀린 덩어리로 표현해 남다른 미적 관점을 구현한 것이다.
이밖에 '숲 속의 기도(2017)'는 형태와 색채, 구도 간의 조화로움을 특징으로 하는 작품이다. 제목을 통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숲 속에 모여 기도하고 있는 모습이 화폭에 그려졌음을 짐작할 수 있으나 뤼페르츠는 이 주제 의식과 무관한 세계를 우리 눈앞에 펼치고자 했다.
즉, '사람들이 모여 기도한다'는 내용이나 인체의 재현 보다 숲 속의 인물들이 배열된 구도와 이때 발생하는 조화에 중점을 두고자 한 것이다. 결국, 그에게 있어 숲 속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라는 그림의 모티프는 그저 '형상'일 뿐, 어떤 실제적인 대상을 현실감 있게 표현한 게 아니라고 헤레디움 측은 설명했다.
뤼페르츠는 "저에게 한국은 비밀스러운 느낌을 주고, 역사도 깊은 나라라서 관심이 많았는데, 한국 관람객들이 제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단순히 보이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들이 어떤 주제에 대해 어떤 도전 과제를 가지고 바라봐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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