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후 천변을 걸으며 하루 마감
스치듯 만나는 사람들의 일상들
주위의 의미없는 소음은 잊은채
잊고 있던 세상의 소중함과 조우
중랑천 둔치 곳곳에서는 생활체육교실이 열리고 있다. 신나는 댄스곡이 흘러나오고 단상 위에는 에어로빅 강사가 큰 동작으로 움직이고 있다. 연령대의 구분 없이 종횡을 이루고 열심히 따라 한다. 꽤 오래 연마한 듯 동작이 정연하다. 남학생들은 농구 골대 앞을 훌쩍 뛰어오르며 볼을 던지고 있고, 여학생들은 배드민턴을 치면서 연신 깔깔 웃고 있다.
천수호 시인 |
갓 핀 갈대꽃을 지나고, 환삼덩굴 위에 흩뿌려진 노란 새삼을 지나고, 강아지만 한 수크령 무더기를 지나고, 시원한 강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천변을 달린다. 왜가리 한 마리가 목을 쭈욱 빼고 물고기 사냥을 할 동안에도 물은 계속 잘박거리며 흐르고 있다. 축구공 하나가 급물살을 타고 둥둥 떠내려가고, 건너편 아파트 불빛은 물결에 잔뜩 우그러져서 칸칸이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뭉개고 있다.
전동 휠체어 한 대가 곁을 스쳐 지나간다. 도란도란 말소리가 들린다. 휠체어 뒤편 난간에 아내로 보이는 여성이 올라타 있다. 좀 천천히 달리라고 얘기하는 것 같다. 청년 연인 한 쌍이 발맞춰 조깅한다. 셔츠 뒷등이 흠뻑 젖어있다. 자전거 전용도로에는 초등학생 아들이 앞서 달려가고 그 뒤를 아버지가 호위하듯이 열심히 페달을 밟는다. 모두 보호하고 배려하는 모습들이다. 하루가 참 싱싱하고 무사했노라는 인사다.
천변에서는 또 폐경춘선 철로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있다. 폐철로 또한 구민 휴식처다. 아파트가 언뜻 보이긴 해도 숲이 많아 여유롭다. 무엇보다 이 길에서는 키 큰 미루나무숲의 웅장함에 압도당한다. 촘촘한 소나무 숲도 있어서 지친 몸을 숨어들 수 있게도 한다. 이곳을 걷는 사람에게는 ‘가지 않는 길’이 따로 없는 것이다. 유쾌한 날에는 철로 위를 종종 걷고, 사색이 깊은 날에는 소나무 숲길을, 또 뭔가 일이 풀리지 않을 때는 확 틘 미루나무 길을 걸을 수 있다.
천변의 여유로움 너머로 아직 귀갓길의 정체된 차량 행렬이 보인다. 차 소리가 좀 뜸한 곳으로 오면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이 소리가 올해만큼 반가운 적이 있었던가. 뜀박질을 멈추고 그 소리에 귀 기울인다. 컴컴한 풀 속에는 또 저들만의 세상이 있는 것이다. 풀벌레들은 다 함께 노래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혼자 걷는 것을 즐긴다. 하루 동안 너무 많은 말을 낭비해 온 피로감 때문일까. 우리가 종일 한 말이 천변 밖의 소음처럼 의미 없는 잡음은 아니었을까.
“소년이 제 목소리를 찾고 있었다./(귀뚜라미들의 왕이 그걸 갖고 있었다)/물방울 속에서/소년은 제 목소리를 찾고 있었다.//말하려고 그걸 원하는 게 아니에요:/나는 그걸로 반지를 만들 거예요/그래서 그가 자기 작은 손가락에/내 침묵을 끼도록 하려고요.“(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 ‘벙어리 소년’ 부분) 벙어리 소년은 물방울 속에서 제 목소리를 찾는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말하려고 목소리를 찾는 게 아니란다. 벙어리 소년이 사람의 목소리를 원하지 않는다니…. 내 침묵을 끼도록 하려 한다니…. 조금 전에 들은 귀뚜라미 소리가 소년이 찾던 그 소리라고 생각하니 나의 언어가 새삼 무용해진다. 천변은 그런 곳이다. 내일의 제 목소리를 찾기 위해 오늘의 목을 쉬게 하는 침묵의 물방울을 공급받는 곳이다. 걷는 사람들 머리 위로 작은 물방울을 하나씩 덧씌워 본다. 일과를 잊고 침묵과 다정하게 걷고 있는 그들의 고요함이 참 아름답다.
천수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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