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이 더불어삶 대표(livewithall@naver.com)]
지난 3월,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건설업계와 리츠협회, 임대인협회 등을 모아놓고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박 장관은 "전세제도를 대체할 수 있는 장기 민간임대주택 제도"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7월에 실버스테이, 8월 말에 기업형(신유형) 장기민간임대주택 정책을 발표했다. 기업형 장기민간임대주택이란 리츠 등의 법인이 대규모(단지별 100세대 이상)로 장기간(20년 이상) 운영하는 민간임대주택 서비스를 의미한다.
국토부 보도자료(신유형 장기임대주택 활성화 위해 금융업계 소통 강화, 2024.9.26)에 따르면 정부는 장기민간임대주택에 "임대료 상한 등 규제를 완화하고, 도시계획‧세제‧금융‧부지 등 지원"을 제공한다. 특히 기업형 장기민간임대주택의 3가지 유형 중 '자율형'은 임대료 규제를 "모두 폐지"하겠다고 한다. 임대료 규제를 아예 없앤다니, 지난 8.8부동산대책의 '비아파트 무제한 매입'만큼이나 과감한 발상이다. 더 신기한 것은 국토부가 다른 보도자료('서민‧중산층‧미래세대 주거안정을 위한 새로운 임대주택 공급방안' 발표, 2024.8.28.)에서 이 정책이 임차인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는 점이다.
국토부 보도자료의 논리를 따라가 보자. 현재 한국의 임대차시장에서는 "공공이 약 20%, 민간이 약 80%를 공급"하는데, 이중 민간임대시장은 비등록‧개인 다주택자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영세하다는 뜻이다. 법인이 들어와서 대규모로 장기임대를 운영해야 서민과 중산층과 미래세대의 주거가 안정된다. 그런데 "과도한 임대료 규제" 때문에 법인이 들어오지 못한다. 그러니 임대료 규제는 풀고, 세제는 완화하고, PF 보증을 해주고, 금융 지원도 해주고, 필요하다면 공공택지로 부지도 공급해 줘야 한다. 누구에게? 대규모로 민간임대주택 사업을 하려는 사기업에게.
박상우 장관은 임대차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이야기한다. 그 정도로 큰 변화가 예상되는 정책이라면 토론이 필요하다. 기업형 임대주택 정책을 설명하는 국토부 보도자료를 보면서 들었던 의문을 5가지로 간추려서 이야기해 보겠다.
의문 1. 민간임대시장이 "비등록‧개인 다주택자 중심"이어서 문제다?
ⓒ8월 28일자 국토교통부 보도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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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랄 일이다. 그동안 정부는 개인 다주택자를 두고 "임대주택 공급자"라며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제공하지 않았던가? 심지어 얼마 전 8.8부동산대책에서는 6년 주택임대사업자 유형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이와 관련된 ‘민간임대주택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통과됐다. 그런데 정부가 갑자기 개인 다주택자 중심의 시장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을 펼친다.
기존 임대차시장의 '비등록'을 문제 삼는 것도 의아하다. 과거 문재인 정부는 주택임대사업자 제도를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등록을 의무화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윤석열 정부는 임대차 3법의 전월세 신고 의무조차 계속 유예하고 있다. 지금의 임대차 시장이 불투명하다면 그런 시장을 만든 것이 바로 정부 정책이다.
정책들 사이의 모순은 그렇다 치자. 박상우 국토부 장관과 국토부 보도자료의 주장을 단순화하면 '전세제도가 문제를 많이 일으킨다고 하니 이제 월세로 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 다주택자들이 갭투자를 해서 전세를 놓으면 보증금 반환 문제가 발생하니 100호 이상을 임대하는 기업에 월세를 내고 살라는 것이다. 아무래도 정부가 현실을 모르는 것 같다. 서민과 청년, 은퇴한 노년층은 여전히 전세를 선호한다. 특히 수입이 적을수록 집을 구할 때 월세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한다. 요즘에는 '안전한 전세'를 찾는다는 것만 달라졌다.
기업형 임대주택이라고 보증금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건설사가 파산할 경우 임대보증금을 회수하지 못하게 되고, 보증보험에 가입된 경우라도 결국 공적자금이 투입되어야 한다. 얼마 전 복기왕 의원실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기업형 민간임대주택에서 보증사고가 3760건이나 발생했다. 그런데 분쟁이 발생할 경우 임차인 입장에서는 개인 집주인을 상대하는 것보다 기업을 상대하기가 더 어렵다. 힘의 불균형은 더 커진다.
의문 2. "적정수준의 주거비용으로 장기간 안정적으로 거주"한다?
ⓒ8월 28일자 국토부 보도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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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형 임대주택 사업이 성공하려면 기업의 수익성 확보를 위해 임대료를 높여야 한다. 적어도 정부와 언론과 기업들은 그렇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임대료가 너무 비싸면 사업은 실패할 가능성이 커진다. 기존의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도 임대료가 주변 시세보다 높은 경우 수요가 많지 않아서 미달 사태가 발생하곤 했다. 서민 주거안정이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임대료가 비싼 집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정부가 도입하겠다는 3가지 유형 중 '자율형'은 초기 임대료 규제가 없다. 임대료 증액 5% 상한도 없고, 계약갱신청구권은 2+2년만 적용하고, 의무임대 기간 중이라도 세입자가 바뀌면 시세대로 임대료 인상이 가능하다. '자율형'을 선택한 민간 기업들은 브랜드 가치 등을 내세워 임대료를 시세보다 비싸게 책정할 것이다. 관리비와 기업이 제공하는 각종 유료 서비스 비용을 더하면 임차인이 매달 지불하는 금액은 더 많아진다. 그러니까 임대료 규제를 다 풀어주면서 "적정수준의 주거비용" 운운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장기간 안정적으로 거주"가 가능하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임차인이 계약갱신청구권을 1회 사용해서 4년(2+2년) 동안 살고 나면 기업이 마음대로 임대료를 올릴 수 있다. 4년 후 집주인 기업이 임대료를 대폭 인상한다면? 임차인은 대항하기가 어려우므로 그냥 퇴거할 가능성이 높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20년이 아니라 4년짜리 임대주택인 셈이다.
정부가 서민과 중산층의 주거 안정을 원한다면 다른 길이 있다. 민간 전세계약의 보증금 비율을 낮추고 공공 영역에서 장기전세주택 공급을 늘리면 된다. 장기전세주택은 전세사기 위험이 없고 임대료도 저렴하다.
의문 3. 임차인에게 "새로운 주거선택권"을 제공한다?
ⓒ8월 28일자 국토부 보도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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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자금을 민간 기업에 지원해서 건설하는 기업형 임대주택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뉴스테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제도를 처음 도입했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 제도를 조금 변경해서 '공공지원 민간임대'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밖에 역세권 청년주택 같은 사업에도 국내 건설사들이 이미 참여하고 있다.
건설사가 아닌 대기업도 자회사를 설립해서 임대주택 사업을 한다. KT가 일본의 다이와리빙과 함께 설립한 KT리빙(KD리빙에서 변경)은 공공지원 민간임대 등 기업형 임대주택을 9000세대 넘게 운영하고 있다. SK디앤디는 '에피소드'라는 브랜드로 임대주택을 개발해서 자회사인 디앤디프라퍼티솔루션에 운영을 맡기고 있다. 코리빙 임대 사업에 뛰어든 스타트업들도 보인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이미 기업형 임대주택에 대한 선택권이 있다. 월세를 낼 돈만 있다면! SK디앤디의 '에피소드 수유 838'라는 단지를 보면 21㎡ 평형이 보증금 1000만 원에 월 임대료 98만 원이다. 이런 민간임대주택은 수요가 있으면 시장 원리에 따라 자연히 생겨날 것이고, 민간임대주택을 운영하는 기업은 수익성 확보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공공의 자금을 투입하고 공공택지까지 제공해 가며 육성해야 할 산업은 아니다. 오히려 국민 주거권과 직결된 사업이므로 적절한 규제와 통제가 필요하다.
의문 4. 일본이 "과도한 임차인 보호 폐지"를 했으니 우리도?
ⓒ8월 28일자 국토부 보도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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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보도자료(8월 28일자)는 일본과 미국의 민간임대주택시장이 '대규모 장기임대기업'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면서 사진까지 보여준다. 특히 일본이 2000년도에 "과도한 임차인 보호 폐지, J-Reits 도입, 임대주택에 대한 세제혜택 지원 등"으로 임대업 수익성을 제고하고 대형화 계기를 마련했다고 설명한다. 곧이어 우리도 "과도한 임대료 규제 및 법인 중과세제를 완화"하고 각종 지원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얼핏 보면 그런가 싶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의 주택시장 상황을 동일시할 수는 없다.
일본이 2000년에 "과도한 임차인 보호"를 폐지했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주택 부족이 심각했던 일본은 강력한 임차인 보호의 전통을 가진 나라가 되었다. 1991년 제정된 차지차가법(借地借家法) 하에서는 임차인이 임대차계약을 무기한 연장할 수 있고, 1개월 전에 통보만 하면 계약 종료도 가능했다. 반면 임대인이 계약을 종료하거나 갱신을 거절하기는 극도로 어려웠다. 계약 기간이 종료되었거나 임차인이 과실을 범했더라도 갱신 거절을 위해서는 임대인이 직접 소송을 걸어서 이겨야 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기업들이 임대주택산업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일본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길어지자 2000년부터 '양질의 임대주택 공급 촉진'을 위한 특별 조치로서 정기차지차가법(定期借地借家法)이 시행된다. 정기차지차가법에서는 임대인과 임차인이 합의한 계약 기간이 끝나면 계약이 종료되도록 했다. 현재는 차지차가법과 정기차지차가법 중 하나를 선택해서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즉 일본의 제도 개편은 임대주택 사업이 불가능할 정도의 강력한 임차인 보호를 일정 정도 완화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장기간의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주택 매매 수요가 줄어든 상황에서 제도가 개편되고 장기임대주택 사업자들이 출현했다. 최근까지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 상승을 거듭한 한국과는 사정이 다르다.
의문 5. 미국 - "신산업 일자리 창출"인가, 주거대란인가?
ⓒ8월 28일자 국토부 보도자료 |
국토부는 "민간임대산업 대형화를 통해" 신산업 일자리가 창출된다면서 미국 실버스타인의 예를 들었다. 1957년 설립된 실버스타인은 미국의 유명한 부동산 거물인 래리 실버스타인이 소유한 회사로서, 오래된 오피스 건물을 사들여 주거용으로 개발하는 사업을 주로 한다. 실버스타인이 직접 운영하는 임대주택은 대부분 고급주택이다. 국토부도 실버스타인의 임대주택이 "수영장‧헬스장, 루프탑 라운지, 셔틀버스, 애완동물 돌봄, 세탁, 노인‧보육 등 주거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이것은 서민과 중산층의 주거 안정과 거리가 멀다. 국토부 장관이 이야기하는 '전세제도의 대안'이 되기도 어려워 보인다.
미국의 민간임대주택 시장에는 건설사들만이 아니라 자산운용사와 헤지펀드 등 월가 금융자본이 대거 진출해 있다. 그래서 미국인들의 주거 사정은 좋아졌을까? 아니다. 미국의 '주거대란(Housing Crisis)'을 검색하면 기사가 줄줄이 나온다. 미국의 임대주택에 사는 가구들이 수입의 3분의 1을 임대료로 지출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월가의 투자회사들은 원래 공동주택이나 기숙사를 사들여 리모델링 후 임대하는 사업으로 돈을 벌어들이다가, 2022년부터는 수십억 달러를 들여 단독주택을 집중적으로 매입했다. 집을 사려는 개인들은 이제 현금 동원 능력을 가진 헤지펀드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주택가격과 임대료는 계속 상승했다. 최근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어카운터블(Accountable)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1분기에 6개 아파트 업체들의 영업이익이 3억 달러 가까이 증가했는데, 이 영업이익 증가의 원천은 대부분 임대료 인상이었다. 부동산 기업들이 돈을 버는 동안 미국 국민의 주거비용은 끊임없이 상승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기업들의 주택 사재기를 금지하는 법안들도 발의되었다. 대표적으로 '헤지펀드의 주택독점 금지법(End Hedge Fund Control of American Home Act)'이라는 법안이 미 의회에 제출되어 있다. 10년 내로 헤지펀드가 보유한 단독주택 물량 전체를 일반 주택 구입자에게 매각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미국의 여러 주 의회에도 민간 기업의 주택 보유를 제한하거나 세금을 부과하는 법안이 올라왔다. 국토부 보도자료가 언급하지 않는 사실들이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라는 것을 잊지 말자. 공공의 영역에 민간 기업을 끌어들이는 방법으로는 주거 안정을 달성할 수 없다. 정책은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을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다음번에는 국토부가 취약계층과 서민, 청년의 임대료 부담을 낮추는 정책을 내놓기를 바란다.
[안진이 더불어삶 대표(livewitha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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