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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지자체 간판 개발사업 무색… 주민 반발에 번번이 ‘좌초’ [심층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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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곳곳 사업무산·변경 속출

부산 구덕운동장 주상복합시설 조성

아파트 포함 알려지자 거센 논란 일어

지역 정치권까지 가세해 결국 백지화

서울 ‘신통기획 1호’ 여의도 시범APT

노인요양시설 건립 놓고 첨예한 대립

광주선 자원회수시설 부지 선정 파행

#1. 부산 최초의 공설운동장인 ‘구덕운동장’을 축구전용 경기장과 주민체육복합시설 및 아파트 등으로 재개발하는 내용의 ‘도시재생혁신지구 사업’이 논란 끝에 무산됐다. 1928년 건립된 구덕운동장은 100년 가까이 부산을 대표하는 시설로 상징성을 가졌으나, 노후화에 따른 안전 문제 등으로 재개발 필요성이 제기됐다. 부산시는 구덕운동장을 축구전용 경기장을 포함한 체육·문화시설과 업무·상업시설 및 주상복합시설로 재개발을 추진했다. 그러나 해당 지역에 아파트 건립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자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들이 아파트 건립이 포함된 재개발 추진에 반대하면서 끝내 사업이 무산됐다.

#2.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표적인 주택 공급·정비사업 정책인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도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신통기획은 서울시가 사업계획 수립 단계부터 신속한 사업추진을 지원하고 공공성·사업성의 균형을 맞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재정비사업 정책이다. 기존 8∼10년 걸리던 재개발·재건축사업 절차를 2∼3년으로 단축할 수 있도록 각종 행정 인센티브를 주는 대신, 공공기여·기부채납을 통해 필요한 공적 시설 등을 확보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그러나 해당 사업지역 주민들은 공익보다 사익을 내세워 무리한 요구조건을 내걸면서 갈등을 빚거나 사업 자체가 무산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추진 중인 각종 사업들이 주민 및 시민단체 반발로 사업추진 계획이 변경되거나 무산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단체장 치적사업의 하나로 각종 개발 사업을 추진하려는 지자체와 주민 편익을 내세워 개발 사업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힘겨루기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선출직 단체장에 대한 ‘주민소환제’까지 언급되면서 단체장의 추진 의지가 한풀 꺾이는 모양새다.

지자체 시책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선 주민과의 갈등 해소가 선결과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무원들의 유연한 사고와 함께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단체장들 인식 변화가 긴요하다는 조언이다. 아울러 주민들도 눈앞의 사적 이익보다 공익 차원의 넓은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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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행복상주만들기범시민연합 관계자들이 상주시청 통합신청사 건립 추진을 반대하며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 행복상주만들기범시민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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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구덕운동장 재개발 결국 무산돼

부산시는 구덕운동장 일대 7만1577㎡ 부지에 7990억원을 투입해 1만5000석 규모의 축구전용 경기장을 포함한 체육·문화시설과 업무·상업시설 및 주상복합시설 건립을 추진했다. 하지만 해당 지역에 800세대 규모의 아파트 건립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자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들이 아파트 건립 반대 주민협의회를 결성해 재개발 추진에 반대하고 나섰다.

시민 반발이 거세지자 지역정치계도 동참했다. 부산시의회는 시민 의견 수렴 절차가 미흡했다며 충분한 검토와 숙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제동을 걸었고, 서구를 지역구로 둔 곽규택 국회의원까지 나서 구덕운동장 재개발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부산시가 아파트 건립 규모를 축소하고 주민 편의시설을 늘리는 방향으로 사업계획을 변경하기로 했으나, 주민 반발은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았다. 주민협의회는 재개발사업에 찬성한 공한수 부산 서구청장에 대한 ‘주민소환제’ 투표를 청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공 구청장은 “구덕운동장 재개발 구역 내 공동주택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한다”며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부산시도 마찬가지다. 구덕운동장 재개발사업에 대한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결과에 따르겠다며 한 발짝 더 물러섰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8월 말 발표한 도시재생혁신지구 사업 대상지역에서 구덕운동장을 제외했다.

서울시 역시 오세훈 시장의 주택 공급·정비사업 정책인 신통기획을 추진하고 있지만, 사업 추진이 순탄치 않다. 신통기획 1호 대상지인 영등포구 여의도동 시범아파트는 데이케어센터(주간 노인요양시설) 공공기여 방안을 놓고 시와 갈등을 빚고 있다. 서울시는 용적률 최대 400%, 최고 층수 65층의 혜택을 주고 데이케어센터 설치를 요구했으나, 주민들은 데이케어센터가 아닌 문화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아울러 재개발을 추진 중인 동작구 상도15구역에선 시가 기부채납으로 119안전센터를 설립하는 방안을 제안했으나, 주민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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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광주·상주 등서도 주민들과 갈등

경북 상주시는 2001년 통합청사 건립을 위해 매년 기금을 적립하고, 3차례에 걸쳐 통합 신청사 건립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상주시 입장에선 현재 청사가 건립 35년이 지나 낡고 건물이 좁은 데다 지진 등에 취약하다며 2022년 말 신청사 건립에 나섰다.

그러나 주민들은 여론조사 없는 졸속 추진이라며 집단 반발하며 맞서고 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시청사를 300m 옮기는데 13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것은 상주시 재정을 고려하면 시기상조”라고 주장한다. 일부 주민은 강영석 상주시장에 대한 주민소환을 청구하면서 지역민 간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상주시는 통합 신청사 부지를 현 청사 인근인 낙양동 옛 잠사곤충사업장 일대로 확정해 내년 하반기 착공을 목표로 신청사 건립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충북에서는 김영환 도지사가 저출생 대책으로 내놓은 이른바 ‘반값 아파트 사업’이 주민 반발로 시작부터 흔들리고 있다. 김 지사가 올해 4월 충북형 저출생 대책 중 하나로 충북형 반값 아파트로 불리는 해당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자 청주시 청원구 주중동 한 아파트 주민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도는 공공이 토지를 소유하고 건축물은 분양해 개인이 취득하는 토지임대부 분양주택형으로, 주변 시세보다 30∼40% 저렴한 임대아파트를 공급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인근 아파트 주민 40대 박모씨는 “해당 용지 진출입로가 3차 우회도로와 인접해 교통 혼잡과 이로 인한 교통사고 발생 우려가 크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주민 50대 장모씨는 “장소 협소로 실효성 문제와 건축 과정에서 소음과 분진 발생 및 조망권 침해 등이 우려된다”고 걱정했다.

광주에서는 자원회수시설(쓰레기 소각장) 후보지를 놓고 시 당국과 시민들이 대립하고 있다. 광주시는 2030년부터 시행되는 생활쓰레기 직매립 금지 조치로 올해 안에 쓰레기 소각장 후보지를 결정해 2029년 완공과 함께 시험가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시는 2022년부터 쓰레기 소각장 후보지 공모에 나섰으나, 주민들 반대로 아직 부지 선정도 못하고 있다. 광주시는 두 차례에 걸친 부지 공모가 주민 반발로 무산되자 지난 7월 ‘자치구 선 신청, 광주시 후 결정’으로 부지 선정 방법을 바꾸고 주민들을 상대로 의견 수렴에 나섰으나, 주민들이 단체행동에 나서면서 파행을 빚고 있다.

◆주기재 부산대 교수 제언 “주민과 합의 중요한데 그런 과정 생략돼 갈등”

민선 8기 들어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추진 중인 역점사업들이 지역주민과 시민단체 반발에 부딪쳐 잇달아 무산되거나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부산의 경우 건립된 지 100년 가까이 된 부산 최초의 공설운동장인 ‘구덕운동장’을 둘러싼 논란이 첨예하다. 2일 부산시에 따르면 부산 지역 축구전용 경기장과 주민체육복합시설 및 아파트 등으로 재개발하는 내용의 ‘도시재생혁신지구 사업’이 논란 끝에 무산됐다.

서울에서는 오세훈 시장의 대표적인 주택 공급·정비사업인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 충북에서는 김영환 도지사가 저출생 대책으로 내놓은 이른바 ‘반값 아파트 사업’이 주민 반발로 시작부터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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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지자체 개발사업이 시작부터 주민 반대에 부딪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활발한 시민운동을 전개하는 주기재(사진) 부산대 교수(생명과학)는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정치인의 시각과 시민들의 시각차에서 오는 괴리현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현상을 놓고 시각차가 존재하는 것은 행정의 시발점에서 비롯된다는 조언이다.

예컨대 10년 전에 논의가 시작된 (개발)사업에 대한 승인을 받아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경우 단체장들은 그간 변화한 주민들의 열망이나 요구사항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예전 사고방식대로 단체장 시책사업을 밀어붙인다는 지적이다. 주거환경 등 변화된 생활여건에 대한 고찰 없이 사업을 추진하면서 빚어진 예견된 결과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주 교수는 자치단체와 지역주민이 갈등을 벌이는 주된 이유로 ‘주민 의견 수렴’과 ‘합의 도출을 위한 노력 부족’을 꼽았다. 주 교수는 “주민 의견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사업 대상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시늉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지자체가 사업을 추진하다 잘못된 점이 발견되면 주민과 간극을 줄이기 위한 합의 도출을 시도를 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모두 생략되면서 갈등으로 번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국민 소득이 3만달러를 넘어선 상황에서 과거 개발독재정부시절 사고방식이 먹혀들 리가 없다”면서 “주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빨리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고, 주민들의 기본적인 욕구를 읽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오성택 기자,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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