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2 (금)

이슈 종교계 이모저모

프란치스코 교황은 진보적인가…여성·낙태 발언 '여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여성이 남성 역할 하려는 것 추해", "낙태 의사는 살인청부업자"

연합뉴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벨기에 루뱅대에서 발언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바티칸=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프란치스코 교황이 최근 룩셈부르크·벨기에 순방 중 내비친 여성의 역할과 낙태 문제에 드러낸 보수적 입장을 놓고 여진이 계속된다.

역대 교황 중 가장 진보·개혁적으로 평가받는 프란치스코가 여성과 낙태에 대해서만큼은 변화한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전통주의적 태도를 고수한다는 것이다.

교황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가톨릭대학인 벨기에 루뱅대 설립 6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방문한 자리에서 여성이 전통적인 성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해석될 만한 발언을 했다.

루뱅대 재학생과 교수들은 사전에 교황에게 전달한 서한에서 '교회 역사를 통틀어 여성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됐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여성에게는 어떤 자리가 있을까요'고 질문했다.

교황은 이에 대해 교회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chiesa'가 여성 명사라는 점을 언급하며 "교회는 여성"이라고 답했다.

그는 "하느님의 백성 안에서 여성은 딸이자 자매이자 어머니다. 여성성은 출산을 받아들이는 것, 양육, 생명을 주는 헌신을 가리킨다"며 "여성이 남성의 역할을 하려는 것은 추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여성의 특징, 여성적인 것은 합의나 이데올로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그것은 종이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육체에 기록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루뱅대는 이례적으로 강한 어조의 비판 성명을 냈다. 이들은 "루뱅대는 교회와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해 교황이 밝힌 결정론적이고 환원적인 입장을 개탄한다"고 반발했다.

루뱅대의 기후학자인 장 파스칼 반 이페르셀레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기회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회가 여성이라는 대답은 교회 내에서의 여성에 대한 존중, 제도와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질문의 요점을 놓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연합뉴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순방 귀국길에 취재진 질문 답하는 교황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교황은 루뱅대 방문 전날에는 재위 중 낙태법 승인을 거부했던 벨기에 5대 국왕인 보두앵 1세(1930년 9월∼1993년 7월)의 묘를 예고 없이 방문했다.

교황은 그곳에서 낙태법을 '살인적인 법'이라고 규정하고 보두앵 국왕이 용기 있는 행동을 했다며 그를 '성자'라고 칭송했다.

1951년 즉위해 사망할 때까지 벨기에를 통치한 보두앵 1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1990년 연방정부 의회에서 낙태 합법화 법안이 가결되자 법안 공포를 위한 서명을 거부했다.

이에 당시 연방정부가 법안 공포를 위해 국왕의 권한을 36시간 동안 일시적으로 중지하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교황은 지난달 29일 순방을 마치고 이탈리아 로마로 돌아오는 전용기에서 교황청 출입 기자단이 낙태에 대한 견해를 묻자 "낙태 수술을 수행하는 의사는 살인청부업자"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 사실에 대해 당신은 논쟁할 수 없다. 당신은 사람의 생명을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

교황의 발언은 소셜미디어(SNS)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낙태 찬성론자들은 엑스(X·옛 트위터)에 "보두앵 국왕은 겁쟁이"라며 "낙태법 금지가 생명을 구한 적은 결코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낙태 금지론자들은 보두앵 국왕에 대해 "(신의) 전사였다"고 옹호했다.

교황은 3주 전에도 낙태 문제에 대해 보수적인 견해를 밝힌 바 있다.

교황은 "미국 유권자가 이민자를 추방하려는 대통령 후보(도널드 트럼프)와 낙태권을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카멀라 해리스) 중 덜 악한 쪽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동성애자에게 교회의 문을 연 프란치스코 교황은 진보적 개혁의 상징으로 여겨왔지만 여성과 낙태에 대해서는 전통주의적 태도를 보이며 북유럽의 진보적 가톨릭 신자들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고 해설했다.

changyong@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