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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기고] 이시바 새 총리 시대, 한국이 준비할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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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미스터 쓴소리'라 불리는 이시바 시게루가 제102대 일본 총리에 취임했다. 선거에서 반전 드라마가 거의 없는 일본이지만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언더독이 역전승으로 이변을 낳았다. 한국에선 비둘기파인 이시바 총리가 기시다 후미오 외교를 계승해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기대는 이시바 총리와 현재 일본 정치 상황에 대한 적확한 인식을 토대로 해야 할 것이다.

이시바는 지나친 경쟁과 양극화를 지양하고 분배와 지방창생을 도모하는 '따뜻한 보수'다. 주변국과 관계도 중시하는 온건파는 맞지만 비둘기파는 아니다. 안보 면에선 헌법개정·방위력 증강을 주장하고 핵 공유·아시아판 나토를 언급해 매파에 가깝다. 이시바는 경제우선주의와 국제주의를 표방했던 보수본류 그리고 안보와 자주독립을 강조하는 보수방류의 두 노선을 아우르는 '첫 하이브리드형' 정치인으로 봐야 한다. 또한 원칙과 소신을 중시하고 지식과 내공이 있는 품격 있는 '실력자'이기도 하다. 결선투표를 앞둔 연설에서 자신을 어필하거나 표를 구걸하는 대신 지진·수해를 입은 국민을 향한 진정 어린 위로의 말이 큰 울림을 줬다. 당선 후 NHK '일요토론'에선 현안과 정책 전반에 관해 원고 없이 자신의 생각을 설득력 있게 피력했다. 오랜만에 일본 국민 눈높이에 맞는 리더가 탄생한 셈이다. 한국 입장에선 만만치 않은 상대다. 정상 간 개인적 친목도 중요하지만 정책과 전략 면에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시바의 사죄 발언 등 역사인식이 주목받지만 극우 성향 다카이치 사나에가 1차 투표에서 1위를 했듯이 강경파가 다수를 차지한 상황에서 전향적 조치는 쉽지 않다. 일본은 아베 신조 시대를 거쳐 한국에 대해 강경한 시각이 확립됐다. 한일합방은 합법이고 강제동원도 없었으며 한국과의 역사문제는 끝났다는 인식과 함께 한일 갈등의 원인은 한국의 반일좌파 세력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예전에는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일본인이 있었지만 근래엔 가장 친한적인 인사도 '독도는 한국 것,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 정설이 됐다. 이러한 '신일본'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초당적 토론이 필요하다.

수교 60주년을 맞아 이시바 정권은 한일안보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한일협력에는 이론이 없겠지만 안보만 앞서나가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자칫 한국이 신냉전 구도의 최전선이 되고 한미동맹이 미일동맹에 종속되며 한국이 일본 군사대국화의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떠안게 될지도 모른다. 안보협력을 위해선 상호 신뢰 구축이 선행돼야 하는데, 신일본을 생각하면 멀티트랙으로 반도체 동맹·한일 자유무역협정 등 경제협력과 함께 사회·문화 면에서 공공외교 증진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근래 한일관계 희망의 중심은 문화, 바로 K컬처다.

이시바 총리의 또 다른 전문 분야는 지방창생이다. 일본은 한국인의 가파른 일본 관광 증가에 주목하고 있는데, 지방소멸을 겪는 한국과 일본이 로컬 관점에서 협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시바 총리의 고향은 사구로 유명하고 스타벅스가 가장 나중에 들어온 소박한 돗토리현이다. 그곳에 한일우호교류공원 바람의 언덕이 있다. 독일과 프랑스가 화해와 협력을 약속한 엘리제 조약의 한일판은 먼 미래의 이야기지만 지방·젠더·세대가 중심이 되는 문화협력을 골자로 한 한일문화 독트린 정도는 체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권용석 일본 히토쓰바시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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