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사견(思見)]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파리올림픽이 열렸던 프랑스 파리와 구글 캠프가 열렸던 이탈리아 시칠리섬을 방문한 후 지난 8월 9일 오후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를 통해 입국하며 밝게 웃으며 기자의 질문에 답한 모습(사진 왼쪽)과 지난 30일 오후 삼성물산 합병 2심 재판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면서 취재진의 질문에 함구한 채 들어가는 모습(사진 오른쪽)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왼쪽 사진=이기범 기자, /오른쪽 사진제공= 임한별(머니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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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여만에 다시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지난 8월 올림픽 공식후원사로서 파리올림픽에 참가하고 구글 캠프에 참석해 글로벌 기업 리더들과 만난 후 김포공항으로 귀국하던 그날, 이 회장의 얼굴에는 오랜만의 해외 일정에서 얻은 성취감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엿보였다. 실적으로 보여주겠다던 그 자신감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9월 30일,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에서 마주한 그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굳게 입을 다문 표정에선 재판의 중압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기자와의 짧은 인사에서도 긴장감이 묻어났다. 새로운 항소심이 시작됐고, 재판부는 내년 1월 선고를 목표로 일정표를 제시했지만 그 길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점은 명확했다. 검찰이 2100여 개의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고 공소장까지 변경하며 긴 싸움의 서막이 예고됐기 때문이다.
지난 1심 재판만 해도 3년 5개월이 걸렸다. 그 기간 동안 이 회장은 매주 재판에 출석해 100회 가량을 채웠고 그로 인해 회사의 미래를 위한 많은 시간을 잃었다. 이번 사건은 2017년 국정농단 사건에서 시작해 7년의 세월을 넘기고 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재판은 재판이고, 일은 일"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 60대에 검찰 조사를 받고 법정에 섰던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전 실차장은 어느새 70대에 접어들었다. 이 회장 역시 50대 초반에 시작된 사법 리스크가 상고심까지 이어진다면 환갑을 넘겨서야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다. 재판이 주는 정신적 부담은 생각보다 크다. 일상의 무게에 더해진 법정 출두의 압박은 경영 판단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현재 삼성은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수많은 경쟁사들이 삼성이 차지하던 시장을 빼앗고 있다. 반도체 불황과 급변하는 기술 트렌드는 삼성전자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지금은 초일류 기업의 명성을 되찾고 미래를 선도할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 시기다. 그 선봉이 바로 이 회장이다. 그러나 그는 또다시 법정에 서야 하는 상황이다. 2주에 한 번씩 피고인으로 재판에 출석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1심 재판부는 자본시장법 위반 등 19개 혐의 모든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예측할 수 없다. 두번의 수형생활을 한 이 회장에게는 이번 재판이 또 다른 부담이다. 회사의 미래를 그려나가며 경영 전략을 짜야 할 시기에 자신의 운명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의 집중력이 분산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기업인에게 시간은 금보다도 귀한 자원이다. 그러나 지금의 이 회장은 끝이 보이지 않는 재판의 뫼비우스 띠 위에 갇혀 있다. 최근에는 국민연금까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 회장을 피고로 하는 끝없이 돌아가는 챗바퀴 소송이 하나 더 늘어 다시 발목을 잡는다.
많은 외국인 투자자들은 삼성전자의 미래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 때에 이제는 이 회장의 그 족쇄를 풀어줘야 할 때다. 수십 년간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하던 장기 투자자들은 "이 회사 주식을 계속 보유할 가치가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재판에 발목 잡힌 이 회장이 주춤하는 사이 불확실해진 삼성전자의 미래 비전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고민은 이미 행동으로 나타났다. 한 달여 전부터 외국인 투자자들은 삼성전자 주식을 끊임없이 매도하고 있다. 지금의 상황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투자자들의 이탈은 가속화될 것이다. 이는 삼성의 미래에 심각한 타격이 될 수 있다. 삼성의 위기는 곧 국가 경제의 위기로 직결될 수 있다. 이 상황에 대한 답변은 누군가는 해야 한다.
그 답은 법정이 아니라 공항으로, 글로벌 생산현장으로 향하는 이 회장의 모습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삼성의 미래를 밝힐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다. 이 회장이 구글 캠프를 찾았듯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큰 그림을 그려나가면서 삼성의 초격차 경쟁력을 다시 강화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눈 앞의 장애물에 두려워 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때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hunt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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