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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나를 찌른 ‘칼’의 폭력 맞서, 나는 예술로 답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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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나이프’ 펴낸 살만 루슈디

2022년 흉기 테러 트라우마 다뤄

“글쓰며 단순한 피해자 되길 거부

표현의 자유, 강력히 보호받아야”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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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해자)가 이야기의 일부가 되어야 하는 게 분명하고, 그를 나의 등장인물로 만드는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인도계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77·사진)는 2년 전 이슬람 극단주의자로부터 당한 테러를 회고한 ‘나이프’(문학동네)에서 가해자와의 만남을 상상으로 그려낸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루슈디는 이 회고록에 “글을 쓴다는 것은 일어난 일을 내 것으로 만들어 단순한 피해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나는 폭력에 예술로 답하기로 했다”고 썼다. 루슈디는 ‘나이프’ 국내 발간을 맞아 서면 인터뷰에 응했다.

루슈디는 1981년 출간한 소설 ‘한밤의 아이들’로 부커상 3관왕(1981년 부커상, 1993년 부커 오브 부커스, 2008년 베스트 오브 더 부커)에 오른 세계적 작가다. 1988년 펴낸 소설 ‘악마의 시’가 신성모독 논란에 휩싸이며 이듬해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영국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하지만 ‘예술의 자유’에 대한 그의 시련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2022년 8월 미국 뉴욕에서 강연 도중 레바논계 이슬람 극단주의자에게 칼로 10여 차례 찔려 오른쪽 눈을 잃은 것.

루슈디는 신간에 흉기 피습 트라우마를 방치하지 않고,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과정을 담았다. 그는 “‘나이프’는 처음에는 괴로웠지만 쓸수록 쉬워졌다. 이 책을 씀으로써 나는 이 서사에 대한 소유권을 다시 얻었다”고 말했다. 책에서 루슈디는 범행 당시 24세이던 테러범에게 “왜 그렇게 기꺼이 인생을 망쳐버린 것이냐, 내 인생이 아닌 네 인생을”이라고 묻는다. 그는 “A(테러범)가 내 책을 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성찰과 반성을 하며 살게 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이젠 그가 ‘내 것’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범인은 테러 전 루슈디의 글을 2쪽도 채 읽지 않았고, 그에 관한 유튜브 영상 2편만 봤을 뿐이었다. 루슈디는 “정보에 너무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 우리는 오히려 전보다 적은 정보를 알게 되었고 더 무지해졌다”며 “이런 상황을 단번에 바꿀 ‘마법의 지팡이’ 같은 건 내게 없다. 그저 내 일을 할 뿐”이라고 했다.

폭력에 저항하는 루슈디의 방패는 사고 전이나 후나 ‘글쓰기’다. 그는 “글쓰기는 지금도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에 참여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다른 모든 자유도 함께 죽는다. 표현의 자유는 우익과 좌익 양측으로부터 강력히 보호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이프’의 주제의식은 무겁지만 문체는 그렇지 않다. 아내이자 시인인 일라이자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며, 작가 특유의 위트가 곳곳에 묻어 있다. 루슈디는 “범죄에 대한 진술만이 아니라 문학적 텍스트로서 즐길 수 있는 풍부하고 다층적인 글을 쓰고 싶었다”며 “독자로서 나는 유머와 재치가 없는 책을 좋아하지 않고 그런 책은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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