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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이슈 '오징어 게임' 전세계 돌풍

"미식? 그들에겐 죽고 사는 문제...흑백요리사는 오징어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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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예능 ‘흑백요리사’는 넷플릭스 코리아의 첫 요리 서바이벌로, 지난 17일 공개하자마자 국내는 물론 해외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사진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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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요리사’)을 보면서 외국 주방에서 일하던 십수 년 전 기억이 되살아났다. 주방에선 선후배가 없다. 실력이 있으면 올라가고 없으면 밀려났다. 실력은 하루만 같이 일해도 알 수 있다. 재료와 음식에 대한 지식, 재료 다루는 방법, 스트레스 상황에서의 태도, 뒷정리와 청소하는 모습만 봐도 실력을 가늠한다.

‘흑백요리사’는 과거 요리 프로그램과 다르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처럼 셀럽 셰프의 장기자랑도 아니고, 명인에 대한 존경을 우선시한 올리브 ‘한식대첩’과도 결이 다르다. 거대한 세트장에서 계급장 떼고 음식 하나로 대결하는 셰프들 모습은 ‘오징어 게임’의 요리 버전을 보는 듯하다. 시청자는 요리의 세계에 몰입하고, 프로 요리사의 진지함에 열광한다. 지난 17일 첫 공개 이후 넷플릭스 비영어 부문 TV시리즈 글로벌 1위에 올랐고, 화제성도 압도적이다.

‘흑백요리사’ 속 요리 대다수는 가정의 주방에서는 불가능한 종류다. 만화책에나 나오는 요리 또는 파인 다이닝에서나 보는 음식이다. 주방의 대가들은 물결무늬 다마스커스 칼을 쓰고, 커다란 오리를 400도 넘는 숯불 위에서 손으로 직접 굽고, 1000만원짜리 스위스제 티타늄 고속 믹서기로 아이스크림을 만든다. 셰프들이 엔지니어처럼 보인다. 진지한 프로 요리사 프로그램이 나오고 이에 열광하는 건 그만큼 요리하는 사람들이 줄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야구를 하진 않아도 JTBC ‘최강야구’를 즐기는 것처럼 말이다.

중앙일보

정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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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을 먹으며 조리 의도를 묻지 않는다. 중요한 건 맛과 가성비다. 그런데 안성재 심사위원(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모수’ 셰프)은 참가자에게 조리 의도를 묻는다. 그건 맛에서 더 나아간 것이다. 작가의 의도를 중시하는 현대 미술과 궤를 같이하는 파인 다이닝의 문법이다. 무엇보다 음식의 간(염도)을 강조한다. 대체로 식당 음식은 집밥보다 간이 세 더 맛있게 느껴진다. 또 대중에게 간은 건강이나 취향 등 주관적 영역이다. 그러나 프로의 주방에서 간은 측정·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 지표다. 간을 잘 보려면 반복 훈련이 필요하다. 주방에서 나가는 모든 음식에 같은 수준의 간을 적용하려면 집요하고 강박적이어야 한다. 이런 지적은 식당 음식과 집밥이 전혀 다른 영역으로 들어섰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미식이란 취미는 어른의 반찬 투정일 수도, 동시에 죽고 사는 문제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음식과 식재료에 대한 존중, 또는 경건한 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 경우 미식은 그 어떤 취미보다 속물적으로 느껴진다. ‘흑백요리사’는 의도와 간뿐만 아니라, 재료에 대한 존중도 강조한다. 맛있는 요리는 그저 감각의 영역이 아니라, 농·어부 등 생산자부터 식재료 유통업자까지 수많은 사람의 시간과 노동에 대한 존중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에 요리는 요리사 개인의 자아 표현을 넘어 그 땅과 시대,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을 반영하는 총체적 예술이 될 수 있다.

침체한 요식업에 활력을 주기 위해서라는 프로그램 기획 의도가 통한 걸까. 모든 출연자의 식당 예약이 다 찼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방송에서 인상적이었던 셰프의 식당을 경험하는 것도 좋지만, 이를 위해 갖춰야 할 태도가 있다. 손님이 와인 한 잔 없이 음식 하나로만 테이블을 차지하는 건 식당에 손해다. 안성재 심사위원의 레스토랑이 휴업 중인 이유도 마땅한 스폰서를 찾지 못해서다. 파인 다이닝은 구조적으로 이익을 내기 어렵다. 방송에서 보듯 수많은 요리사가 달려들어 한 접시를 완성한다. 인건비와 재료비, 수도·광열비는 손님한테 아무리 비싸게 받아도 감당하기 어렵다.

방송에서 백종원·안성재 심사위원은 심사하면서 그 음식을 대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요리사 의도에 맞춰 비빔밥을 먹는 것(백종원), 급식대가의 상차림에 눈을 반짝였던 것(안성재)이 그 예다. 심사하면서도 상대를 동업자 관점에서 존중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음식의 간이나 의도를 파악하는 것만이 아닐 것이다. 좋은 식당일수록 오래 갈 수 있도록 동업자적 관점으로 찾아야 한다. 집밥이 사라진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식사의 기술’일 지도 모른다.

정동현 푸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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