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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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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서 때론 태만도 필요…"쉬어야 생산성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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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조지타운대 컴공과 교수가 쓴 신간 '슬로우 워크'

"업무량 줄이고 일의 퀄리티에 초점 맞춰야"

연합뉴스

과로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1995년 어느 금요일 오후 3시30분. 미국 방송국 CBS 본사 사무실을 둘러보던 사장 레슬리 문베스는 4분의 3이 빈자리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문베스 사장은 즉시 직원들에게 메모를 보냈다.

"우리 방송사 시청률은 3위입니다. 금요일 3시 30분이면 ABC, NBC 직원들은 아직 일하고 있을 시간입니다. 향후 이런 근무 태만은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직원들은 사장 말을 따랐다. 일의 양도 많아졌다. 하지만 시청률이 높아지진 않았다. 일을 많이 한다고 생산성이 향상된 건 아니었다.

CBS의 시청률 상승을 이끈 건 5년 후 앤서니 자이커라는 방송작가가 한 드라마를 선보이면서다. 그는 매일 사무실에 출근하지도 않았고, 끝없이 이어지는 회의에 참여하면서 자기 존재를 알리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는 묵묵히 자기만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가 쓴 'CSI'는 구렁텅이에 빠진 CBS를 구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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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I 시리즈
[LG유플러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칼 뉴포트 조지타운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신간 '슬로우 워크'(웅진지식하우스)에서 "쉬지 말고 온종일 뛰어다니며 서두르며 많은 업무를 해치우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이런 행동들이 '윗분들'의 기대와는 달리 생산성 향상과는 거리가 먼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유사 생산성"이라고 규정한다.

저자에 따르면 유사 생산성 사례는 회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상사가 근처에 있을 땐 '바쁜 척'하고, 좀 더 쉽게 해치울 수 있는 가벼운 업무를 진행한다. 머리를 싸매고 대담한 신규 전략을 짜기보다는 이메일 답장을 쓰고 전화를 빨리 받는다. 이는 회사 생활을 하는 안전한 전략이지만, 회사의 생산성 향상과는 거리가 먼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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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 지시(연출)
[연합뉴스 자료사진]


컴퓨터와 네트워크 발달은 이런 유사 생산성과 결합하면서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직원들의 '번아웃'이다. 근무 시간은 평일 저녁으로, 주말로 이어지기 일쑤다. 인스턴트 메시지는 시간을 가리지 않는다. 직원들은 깔끔하게 끝나지 않는 근로 탓에 결국 번아웃 상태에 빠지고 만다.

저자는 "컴퓨터와 네트워크는 여러모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지만, 유사 생산성과 결합해 과부하와 주의 산만에 시달리는 감각을 지나치게 자극한 결과, 우리를 괴로운 소진 증후군 위기와 정면충돌하는 경로로 내몰았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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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만과 편견'
[UIP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저자는 덜 일 함으로써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가령, 영국 소설가 제인 오스틴은 식사 준비, 세탁, 청소, 침대 정돈 같은 집안일이 크게 줄어들자 경이로운 생산성을 발휘했다. 그는 1811년부터 1815년까지 4년간 '이성과 감성' '오만과 편견' '맨스필드 파크' '에마' 등 대표작을 줄기차게 써냈다. 그 이전 10년 동안 여러 소설을 썼지만, 제대로 된 작품을 생산하진 못했다. 모두 집안일이 바쁘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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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저자는 책에서 덜 일 함으로써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슬로우 워크'의 세 가지 원칙을 제안한다. ▲ 업무량을 줄이고 ▲ 자연스러운 속도로 일하며 ▲ 퀄리티에 집착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수행 활동이 아니라 높은 퀄리티에 초점을 맞추는 태도가 모든 일의 기반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슬로우 생산성은 무엇보다도 매일 같이 반복하는 바쁜 활동에서 한 발짝 물러서자는 탄원이다. 슬로우 생산성은 실현 가능한 철학일 뿐 아니라 오늘날 수많은 이들의 직업 생활을 좌우하는 임시변통의 유사 생산성보다 더 나은 기준이다."

이은경 옮김. 284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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