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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4 (화)

‘빅컷’ 시대 산업 기상도···자동차·반도체 ‘모처럼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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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보험, 금융 잔치는 주춤


매경이코노미

자동차 산업과 가전 산업은 미국 금리 인하 대표 수혜주로 꼽힌다. 미국 시장 경기가 살아나면 매출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서다. 사진 위 평택항에서 수출을 준비 중인 자동차 모습, 아래는 LG전자의 맨해튼 광고판. (매경DB, LG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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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이 4년 만에 금리 인하 조치를 단행하고, 추가 인하까지 예고하면서 산업 현장 분위기가 달라졌다. 자동차·반도체·유통업·건설업 등 대다수 산업은 숨통을 틜 것으로 보인다. 반면, 고금리에 힘입어 역대급 실적을 기록하던 은행·보험업 등은 기세가 한풀 꺾일 전망이다.

수혜 예상되는 韓 산업

자동차, 반도체, 유통 ‘맑음’

미국 연준의 금리 인하 결정에 대다수 한국 산업은 수혜가 기대된다. 금리 인하가 주는 이점이 부작용보다 훨씬 많다.

금리 인하는 2가지 측면에서 기업에 이득이 된다.

첫째, 비용 감소다. 금리는 쉽게 말하면 자금 조달 비용이다. 금리가 내렸다는 것은 곧 기업이 ‘유동성’을 확보하는 데 드는 부담이 작아진다는 의미다. 한국은행은 대체적으로 미국 연준과 금리 흐름을 비슷하게 가져간다. 한국은행이 미 연준을 따라 금리를 인하하면 국내 기업의 현금 확보가 수월해진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금리 부담이 커지면서 기업들은 허리띠를 졸라맸다. 2022년 9월 조사에서 고금리 대응책을 마련했다는 기업은 20.2%에 불과했지만, 2023년에서는 고금리로 인한 비상 긴축 경영 조치를 시행한 기업이 71%에 달했다. 금리가 떨어지지 않은 현재도 다수의 기업이 긴축 경영을 시행하는 형국이다. 금리가 내려가면, 유동성에 숨통을 틘 기업을 중심으로 좋은 흐름을 이어갈 확률이 높다.

둘째, 매출이 증가한다. 금리가 높아지면 대출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는다. 자연스레 소비는 감소한다. 비용은 늘고 매출은 줄어든다. 기업들이 고금리 장기화를 부담스러워하는 이유다. 반대로 금리가 낮아지면 시중에 돈이 풀리고, 경기가 활력을 얻는다. 자연스레 소비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곧 기업 매출 상승과 연결된다.

산업별로 살펴보면 전망이 가장 밝은 종목은 ‘내구소비재’다. 특히 미국 수출 물량이 많은 가전과 자동차 산업은 ‘청신호’가 켜졌다.

미국 금리가 내리면 미국 소비자의 지출 여력이 커진다. 고가 내구재인 전자제품·기술 제품에 대한 수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주요 가전 제조업체는 미국 시장에서 판매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

자동차 산업은 금리 인하 최고 수혜주다. 자동차는 고가 물건이라 소비자 대다수가 대출을 끼고 산다. 금리가 떨어지면 자동차 대출 금리가 하락한다. 고객들이 자동차를 구매할 때 이자 부담을 덜게 만들어 자동차 수요를 증가시킨다. 현대자동차, 기아 등 미국 시장 비중이 높은 기업에 긍정적인 요소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내구재 성격을 띠는 자동차·가전 산업은 미국 금리 인하로 미국 수출이나 내수 면에서 혜택이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기술·IT·바이오 산업은 금리 인하로 투자 여력이 커지는 효과를 얻는다. 해당 산업은 중장기적으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금리가 인하되면 자본 조달 비용이 감소하면서 투자자들이 더 쉽게 투자할 수 있다. 부담 감소로 기업이 자체적으로 투자하는 금액도 커진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첨단 기술을 필요로 하는 바이오, 제약 산업은 금리 인하로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 산업 성장에 큰 도움이 되는 요소”라고 분석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금리 인하에 따라 투자가 많이 필요한 네이버, 카카오 등 IT 서비스 기업들이 성장하게 될 것”이라며 “반도체와 AI에 대한 투자 역시 확대된다”고 전망했다.

최근 수년간 고속 성장하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침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배터리 산업은 이번 금리 인하가 어떤 업종보다 반갑다. 고금리 기조에서 이차전지 투자와 전기차 소비가 모두 위축된 상황이다. 이번 금리 인하로 새로운 모멘텀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진다. 전기차 판매까지 반등할 경우, 핵심 부품인 배터리와 원소재 등이 모두 금리 인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부동산·건설업은 금리 인하로 시장이 살아나는 효과를 얻는다. 공급(건설사, 시행사)과 수요(주택, 빌딩 구매자) 모두 이자 부담이 줄어드는 덕분이다. 현재 국내 건설 사업장 대부분이 자금 조달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에 이어 한국 기준금리가 내려가면, 국내 부동산 시행사, 건설사의 자금 운용에 숨통이 틘다. 동시에 가계대출이 활발해지면서 시장에 수요자가 대거 유입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다만, 한국 가계부채가 높은 상황이라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준금리 인하로 주택담보대출이 증가할 경우 부동산 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업계 역시 미국 금리가 낮아지면 자금 조달 비용이 감소해 선박 발주에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배 1척을 건조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드는 탓에, 선박을 건조할 때는 상당한 금융 지원이 필요하다. 금리가 줄어들면 건조 비용 조달에 필요한 이자가 감소한다. 자금 조달이 쉬워지는 만큼, 주요 고객사인 해운사가 선박 건조 발주를 늘릴 가능성이 높다. 다만 미국 경제 불확실성이 크다는 측면도 있어 선박 발주가 감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이 같은 발주 물량 감소는 조선사들의 가격 인하 경쟁을 촉발해 중장기적으로 업황에 부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

또 선박 건조 계약이 달러로 이뤄지는 만큼 금리 인하로 달러화 약세가 지속 되면 매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항공·여행 산업은 미국 금리 하락과 원화 가치 강세의 수혜가 모두 기대되는 산업이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내리면 시장에 달러가 많이 풀린다. 이는 자연스레 달러 약세, 원화 강세 현상을 일으킨다. 항공사는 항공기 대여, 구입과 항공유 수입 시 달러로 결제하는 만큼 대금 결제 시점의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면 비용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안도현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원·달러가 내리면서 올 하반기 항공사 연료비는 기존 예상치 대비 2% 감소할 전망”이라며 “대한항공 연료비의 경우, 기존 전망보다 800억원이 줄어들 것”이라고 추산했다.

석유화학업계도 이번 금리 인하 파장을 주시한다. 통상 미국 금리 인하는 국제유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유가가 상승하면 정제마진이 상승한다. 정제마진이 이익으로 직결되는 정유업계에는 호재다. 단 석유화학업계 입장에선 원재료 가격인 유가 부담이 커져 다소 악재라는 평이다.

철강업계는 글로벌 경기 회복 기대감으로 미국 금리 인하를 반기는 모습이 더 짙다. 미국 금리 인하로 중장기적으로 달러 약세 기조가 나타날 경우, 철강 원재료 구매 가격이 낮아지며 원가 부담이 줄어든다. 이는 곧 수익성 향상으로 이어진다. 또 금리 인하는 철강을 많이 사용하는 자동차, 건설업의 호황을 가져온다. 철강사 입장에서는 절호의 호재다.

매경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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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 잔치 종료 은행·보험

인하폭 적어 큰 타격은 없을 듯

금리 인하가 반갑지 않은 산업도 있다. 은행업과 보험업이다. 대출상품을 취급하는 두 업종은 대표적인 고금리 수혜주로 여겨진다. 대출 금리가 오르면 예대마진(예금과 대출의 이자 차이에서 발생하는 이익)이 상승하면서 매출과 이익이 커지기 때문이다.

2022년 기준금리가 올라간 시점부터 국내은행 이자이익은 매년 최고치를 경신했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4년 상반기 국내은행 영업실적’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은행이 거둔 이자이익은 29조8000억원을 기록해 30조원에 육박했다.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던 전년 동기(29조4000억원) 대비 4000억원가량 증가했다. 고금리로 예대마진이 치솟은 결과다.

대출상품을 취급하는 보험업계 역시 금리 상승효과 덕을 톡톡히 봤다. 올해 상반기 보험사 당기순이익은 9조366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36억원(2.8%) 증가했다.

전 세계 금리의 기준이 되는 미국 기준금리가 인하로 방향을 틀면서, 은행·보험의 실적 상승세는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자이익을 주된 수입으로 하는 은행의 경우 순이자이익 감소로 실적 상승세가 꺾일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큰 타격까지는 이어지지 않는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인하폭이 크지 않고, 비용에 해당하는 조달 금리 인하 효과가 나타나는 덕분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은행·보험업은 예대마진 감소로 수익이 하락할 수 있지만, 당장 금리 인하폭이 크지 않아, 크게 타격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자산운용업도 금리 인하가 무작정 반가운 것은 아니다. 기금이나 자산운용사들은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상당한 비중을 채권에 투자한다. 금리가 하락하면 채권값은 오르지만 수익률은 함께 떨어진다. 때문에 장기적으로 연기금이나 펀드의 투자 수익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금리가 내려가면 투자자들이 안정적인 채권 대신 더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기 위해 위험자산으로 몰려간다. 이는 자산운용사들로 하여금 더 높은 리스크를 감수하도록 몰아가 회사에 부담을 가중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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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업종은 투자 여력이 확대되며 금리 인하의 혜택을 볼 전망이다. 사진은 판교 바이오밸리 일대 전경(위). 건설업은 공급과 수요자 모두 자금 조달 부담을 덜면서 시장 활성화 기대를 모은다. 사진은 서울 일대 공사장 전경(아래). (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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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인하가 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석유화학은 유가 상승으로 인한 원재료 부담 압박에 시달린다(위). 금융업은 고금리로 인한 매출 증대 효과가 끝나 실적 상승세가 끝날 확률이 높다(아래). (에쓰오일 제공, 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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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인하 ‘긍정적 신호’ 보기 힘들어

산업 전반 침체 우려…대응 나서야

전문가들은 이번 금리 인하를 두고 산업계와 우리 정부가 긍정적인 해석만 내놓지 말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에 맞춰 금리 인하를 진행하는 동시에, 근본적인 산업 구조 개혁을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가계부채 등 이슈로 인해 미국에 맞춰 금리 인하가 어렵다는 의견도 일부 있지만, 기업 생존을 위해서는 한국 역시 금리 인하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고금리로 인한 기업대출 연체율은 최근 2년간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한계기업 연체율이 크게 늘어나면서 부채 부실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 2020년 1분기 기준 한계기업 연체율은 2.4%에서 11.3%까지 급등했다. 이를 반영하듯 올해 상반기 파산신청 기업 수는 987건으로 팬데믹 기간이었던 2021년 상반기 428건과 비교해도 2배 이상 급등했다. 고금리로 빚을 감당하지 못한 가계와 기업이 늘어나면서 연체율이 급격히 증가했다.

기업 연체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미국처럼 금리 인하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한경연은 금리 변화가 민간부채 이자 부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향후 1년 동안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세 번 인하할 경우, 기업대출 이자 부담이 4.42조원, 가계부채의 이자 부담은 4.53조원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승석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위험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민간부채 리스크의 신속한 해소가 필요하다”며 “한국 경제의 리스크 완화를 위해서는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고금리 유지의 적절성을 합리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단순히 금리 인하에만 그치면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현재 한국 산업계가 가진 문제의 원인이 ‘금리’ 하나만은 아니다. 노동 경직성, 일자리 미스매치, 각종 규제 등 다른 문제도 산적하다. 근본적인 개혁 없이 금리 인하에만 기댔다가는 산업 경쟁력 회복을 장담할 수 없다. 조동근 명지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금리 인하 효과에만 기대면 안 된다. 전반적인 산업 구조 개혁과 규제 완화 등 정책 검토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7호 (2024.09.25~2024.10.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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