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9 (금)

이슈 인공지능 시대가 열린다

그들은 배운 게 아니었다…'AI 갖고노는' AI세대 충격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일터·일상 상식 뒤엎는 젊은 그들



■ 경제+

“우린 달에 착륙했다.” 2016년 3월 9일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이 세기의 대국을 치른 뒤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가 한 말이다. 달에서의 첫발을 전 세계 사람들이 기억하고 돌려보듯 사람들은 이 대국을 통해 인류가 인공지능(AI)이란 미지의 영토에 발을 내딛는 모습을 생생하게 확인했다. 당시 초·중·고교를 다니며 AI 혁명을 체감한 이들이 이젠 고등학생, 대학생이 됐다. 취업해 기업 현장에도 진출하기 시작했다. 2022년 등장한 생성 AI란 도구는 ‘AI 세대’ 약진의 촉매제가 됐다. AI를 일이 아닌 놀이로, 문화로 빠르게 체화한 AI 세대들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만들고 있다. AI 세대는 어떻게 AI를 활용할까.

중앙일보

그래픽=김호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학술적 기준은 없지만, AI세대는 초·중·고 시절 알파고의 등장을 맞은, 즉 아직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에 AI를 접한 세대다. 예전 인터넷·모바일 세대와 달리 디지털 기기를 처음 사용한 시점과 AI 서비스를 처음 접한 시점 사이의 시차가 없거나 매우 짧다. 특히 2022년 출시된 챗GPT를 학창시절 사용한 세대는 말과 글을 떼면서 디지털 기기를 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생성 AI도 쓰기 시작한 ‘AI 네이티브(원어민)’나 다름없다. 이들에겐 AI와 AI가 아닌 것 사이의 구분이 없다. ‘AI를 써보니 편해졌다’가 아니라 처음부터, 일상적으로 AI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우선 능력치부터 다르다. 서울디지텍고에서 게임그래픽을 가르치는 조영식 교사가 소개한 사례. “한번은 역사 수업에 자료로 쓰려고 설화 속 ‘머리가 없는 신’ 이미지를 생성 AI로 만들어 봤다. 그런데 아무리 명령어를 다르게 입력해도 제대로 안 나왔다. 근데 학생 중 한 명이 이렇게 저렇게 명령어를 입력하더니 딱 맞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더라.” 그는 일상 속에서 AI와 함께 자란 세대와 업무 등 목적으로 ‘AI를 배운 세대’ 간 차이를 체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중앙일보

지난 7월 인공지능(AI) 활용법 수업을 듣고 있는 서울디지텍고 학생 모습. [사진 서울디지텍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세대는 일상적으로 AI 서비스를 쓴다. 이전 세대가 매일 포털사이트에서 정보를 검색하고 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으로 소식을 전하는 것과 다름없다. 서울디지텍고 주한희(16)·김승찬(16)·신권호(15)군은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AI 서비스를 접했고, 최근 일주일 동안 하루도 AI 서비스를 안 쓴 날이 없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최근 ‘2023 인터넷 이용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6~19세의 AI 서비스 경험률은 66%로 대학생이나 직장인이 다수인 2030세대를 제치고 전 세대 중 1위를 차지했다. 더 중요한 차이는 놀이와 여가, 용돈벌이까지 모든 부문에서 AI를 광범위하게 활용한다는 점이다. ‘문서작업 보조’에 생성 AI를 활용하는 비율은 성인(42.5%)이 10대(28.9%)보다 훨씬 높다. 하지만 ‘창작 및 취미활동 보조’ 용도로 쓰는 비율은 오히려 10대(10.1%)가 성인(7.1%)보다 높았다.

중앙일보

정근영 디자이너


AI 세대가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면 일하는 방식부터 조직 구조까지 모든 면에서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이미 놀며, 공부하며 AI를 익힌 세대들이 업무 환경 변화를 이끄는 곳이 적지 않다. 광고회사에 근무하는 김주윤(28)씨는 “저연차 때는 비효율적인 업무를 많이 떠맡게 되는데 그런 걸 할 때 AI를 많이 쓰고, 외부 자료 요약, 메일 번역, 아이디어를 찾기 위한 브레인스토밍을 할 때도 자주 쓴다”며 “지시를 정교하게 하면 미묘한 영어 표현까지 다듬어 줄 수 있는 수준이라 똑똑한 조수를 둔 느낌”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입사 2년 차지만, 회사에서 AI 관련 태스크포스(TF)를 맡아 다양한 AI를 먼저 사용해 보고 사내 활용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동료들을 교육하고 있다.

AI를 통해 단순 노동시간을 줄이면 자신의 의지대로 쓸 수 있는 ‘가용 인생’이 이전과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늘어날 수 있다. 신권호군은 “사회 수업 시간에 인구 감소를 주제로 한 신문 만들기 과제가 있었다. AI를 사용하니 10초 만에 그럴듯하게 초안을 만들었다. 직접 검색해 자료를 찾고 디자인하면 2시간은 더 걸릴 과제였는데,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기존 세대가 당연하게 여긴 돈·시간 투자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김승찬군은 “영어 공부할 때 원어민과 대화하고 발음 교정을 받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일 텐데, AI 앱을 사용하면 학원에 가지 않아도 이런 걸 다 할 수 있다. 학원비나 학원 왕복 시간이 다 낭비 같다”고 말했다. 기존 교육 방식이나 소비 관행도 바뀌어야 하고, 기업 입장에선 마케팅과 서비스 방식 모두를 재편할 수밖에 없다.

중앙일보

정근영 디자이너


AI 세대와 기존 인터넷(I) 세대의 차이는 필연적으로 혼란과 충돌을 낳는다. 특히 학교와 기업의 고민이 깊다.

학교와 교사의 가장 큰 고민은 AI 세대의 기술 활용 능력을 어느 수준까지 개인 능력으로 인정해야 할지, 기존에 성적을 평가하던 기준을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등이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독서 감상문이나 체험활동 소감문 같은 과제는 AI로 만들어 제출하는 아이가 너무 많은데 티가 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떨 땐 구분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며 “단순 감상문이 아니라 코딩, 프로그래밍 같은 과제는 사실 AI를 잘 활용하면 그것도 실력인 건데 제대로 인정해 줘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한 스타트업에 입사한 이모(30)씨는 “챗GPT를 활용하는 게 결과물도 더 좋고 시간도 훨씬 적게 든다. 하지만 평소에 ‘먼저 업무에 익숙해진 뒤에 AI를 쓰든 효율을 따지든 해야 한다’는 식의 말을 자주해 AI를 써보잔 말을 꺼낼 수도 없고 답답하다”고 했다. 반면에 국내 한 대기업 김모(40) 차장은 “일 시켰다 하면 보고서고 업무 연락이고 다 AI로 만들어 오는 게 티가 난다”며 “업무 이해도는 떨어지는데 AI만 잘 쓰면 이걸 실력이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꾀를 부린다고 해야 할지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국내 대기업 계열사에 근무하는 염모(33)씨는 “얼마 전 입사 2년 차 직원이 사내에서 아무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AI에 물어본 뒤 답을 구해온 일이 있었다”며 “기존 직원들은 처음 보는 광경이고, 그 답이 맞는지도 검증하기 어려워서 다들 쩔쩔맸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AI 세대가 직장 내에서 무조건 우위를 점하진 않을 거란 의견도 적지 않다.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검증·평가·감시하는 데 있어선 기존 I세대가 경험을 통해 쌓아온 전문성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AI 세대의 사회 유입이 빨라졌을 때 AI 활용 능력이 새로운 형태의 사회경제적 계층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결국 두 세대 간 충돌을 잘 조율하고, 긍정적 경쟁으로 이끌어가는 게 AI 시대의 가장 큰 과제가 될 수 있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는 “요즘 기업에선 직원들이 AI 활용 방법을 자기만의 노하우로 여겨 공유를 안 하는 사례도 많다고 한다”며 “사내 경진대회를 열거나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 등으로 AI 활용 기술을 공유하게 하고 직원 역량을 다 같이 끌어올리는 게 경영진의 과제”라고 했다.

■ 혁신의 최전선에서 비즈니스의 미래를 봅니다. 첨단 산업의 '미래검증 보고서' 더중플에서 더 빨리 확인하세요.

중앙일보

직장 동료 모르게 1억 번다, 얼굴 없는 유튜버 되는 법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8588

“김민재 볼경합 1위” 1초만에 집계…축구판 뒤집은 중계 천재 정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7234

“서울대 변호사 15분에 2만원” 최고 변호사 찾아준 공짜앱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6628

인터넷 안 터져도 번역된다…미국여행 ‘최강 통역기’ 정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1972

윤정민·정용환·권유진 기자 yunjm@joongang.co.kr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