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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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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신변보호 요청하니 "순찰차 없어서"... 올해만 범죄피해자 2명 경찰 보호 중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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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박정현 의원, 신변보호 통계 입수]
범죄피해자 전담 경찰관 전국 259명뿐
"안전조치 어려운 점 인지" 동의받기도
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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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피해자가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한 건수가 연간 3만 건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신변보호 요청은 급증하는데 경찰력이 뒤따르지 못해, 올해만 벌써 두 명의 범죄 피해자가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중 사망했다. 신변보호를 받으려면 '경찰이 조치하지 못할 수 있다'는 면피성 조항에 동의해야 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22일 본보가 박정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경찰의 '범죄피해자 안전조치(신변보호) 신청 건수'를 보면, 지난해에만 총 3만927건의 신변보호 신청이 접수됐다. 2020년 1만4,825건에 비해 3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는 3분의 2 시점인 지난달까지 벌써 2만604건이 들어와, 연말까지 가면 지난해 수준을 크게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범죄피해자 안전조치는 범죄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는 경우 피해자의 신변을 보호하는 조치다. 신변보호 신청 증가는 2021년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수요가 늘어나고, 제도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경찰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제도가 널리 알려졌고, 경찰 역시 수사 중에 피해자들에게 신변보호를 권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이를 감당할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 전국의 범죄 피해자 전담경찰관은 지난해와 올해 259명이다. 2020년 145명, 2021년 185명, 2022년 189명으로 늘고는 있지만, 수요에 비해 부족하다. 경찰 관계자는 "인력이 적은 것은 사실이나, 보복범죄를 막기 위해 민간 경호사업을 확대하고 전담경찰관 외 수사관들도 신변보호에 힘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변보호 조치 중 피해자가 다치거나 사망한 경우도 끊이지 않는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신변보호 조치 실시 중 발생한 사망(범죄 관련) 사고는 2건, 부상은 10건에 달했다. 사망 중 1건은 살인, 1건은 방화치사로 범죄가 인정됐다. 신변보호 사망자 수는 통계가 작성된 2021년부터 3건, 2022년 5건, 지난해 3건으로 매년 나오고 있다. 2022년 서울 구로구에서 데이트 폭력 범죄로 수사받던 가해자가 피해자를 찾아가 살해했고,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도 신변보호를 받은 적이 있었다.
한국일보

대학생·청년단체 회원들이 2022년 9월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앞에서 스토킹 살해 사건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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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변보호를 받으려는 피해자들은 신청 과정에서부터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신청서에 '안전조치가 어렵다'는 조항에 동의하라는 항목이 있다는 것이다. '범죄피해자 안전조치 112시스템 등록 동의서'에는 '준수사항 동의, 안전조치 대상자와 가해자가 같은 주거지 혹은 같은 일터에서 생활하는 경우 실질적인 피해자 안전조치가 어렵다는 것을 고지하니 이 점을 충분히 인지해 주시기 바란다'는 문구와 함께 체크하라는 빈칸이 있다.

실제 인천 강화경찰서에 신변보호를 신청한 적 있다는 A씨는 경찰로부터 "인구 약 1만 명에 순찰차가 한 대뿐이라 신고해도 늦게 갈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는 "신변보호 대상자가 되어도 보호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하는 것은 경찰의 책임 회피"라고 강조했다. 동의서 작성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신변보호 취지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로, 피해자가 가해자를 절대 만나지 않도록 한번 더 주지하는 차원에서 동의를 받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피해자 신변보호 제도가 겉돌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박정현 의원은 "피해자를 보호하는 경찰력이 부족하면 범죄 피해자는 동일한 가해자에게 보복범죄로 다시 피해받을 우려가 크다"면서 "피해자를 효과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인력을 더욱 늘리는 등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평가했다.

서현정 기자 hyu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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