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폰 투약·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법정에서 조서에 적힌 내용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
대법원 "형사소송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 영향 미쳤다"며 2심 판결 파기
대법원이 공범이 수사기관에서 범행을 자백했더라도 이를 피고인이 부인하면 유죄 증거로 쓸 수 없다는 기존 법리를 재확인했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마약류관리법 위반(향정)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지난달 29일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지난해 3~4월 김씨는 대구 모처에서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와 2022년 12월 공범 A씨에게 필로폰을 판매한 혐의로 체포돼 검찰에 기소됐다. 담당 검사는 '김씨한테서 필로폰을 샀다'는 A씨의 수사기관 자백 내용(피의자신문조서)과 마약 검사 결과 등을 근거로 김씨를 기소해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김씨는 법정에서 A씨의 피의자신문조서에 적힌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해 A씨 자백은 효력을 잃었다.
2022년 개정된 형사소송법 312조와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경찰·검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는 피의자 본인이 법정에서 그 내용이 사실이라고 인정할 때만 증거로 쓸 수 있고, 그 범위에는 피의자 본인 조서뿐 아니라 공범의 조서까지 포함된다. 이에 따라 피의자가 재판에 넘겨진 뒤 공범의 수사기관 진술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면 이를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
검찰은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A씨를 법정에 증인으로 세웠으나 A씨는 "필로폰을 매수한 사실이 없다"며 진술을 번복했다. 결국 1심 법원은 김씨의 필로폰 매도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필로폰 투약 혐의는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이에 검찰은 김씨가 교도소에 수감된 상태로 지인들을 통해 A씨의 진술 번복을 압박한 정황을 확보해 재판부에 제출한 뒤 증거능력을 인정해 달라고 주장했다. 결국 2심 법원은 검찰 측 주장을 받아들여 A씨의 피의자신문조서를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고 필로폰 매도 혐의까지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2심은 "기존 대법원 법리를 유지한다면 권력형 범죄, 조직적 범죄 등 공범의 진술이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사안에서 회복 불가능한 처벌 공백이 생긴다"며 판례 변경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는 형사소송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2심 판결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피고인과 변호인이 피의자신문조서에 관해 내용을 부인하는 취지로 '증거로 사용함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밝혔다"며 "이 사건 피의자신문조서는 형사소송법에 따라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시했다.
옛 형사소송법은 법원의 형사재판 심리 부담 등을 고려해 수사기관에서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몇 가지 조건 아래 인정했다. 그러나 법원과 검찰의 편의를 위해 피고인에게 불리한 제도를 유지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2020년 국회에서 개정됐다.
아주경제=권규홍 기자 spikekwon@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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