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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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재야’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항년 78세의 나이로 22일 별세했다.
유족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시 35분께 입원 중이던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숨을 거뒀다. 고인은 담낭암 투병 중이었으면 입원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진다.
1945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마산공고를 졸업하고 1966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 후 전태일의 분신자살을 접하면서 학생운동과 노동 운동에 투신했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와는 한동안 도봉구 쌍문동 같은 동네에 살며 노동운동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 민청학련사건, 청계피복노조 사건, 민중당 사건 등으로 9년간 수감 생활을 했고 12년간 수배 생활을 했다.
숱한 수감·도망 생활에도 민주화 운동에 따른 보상금을 일절 수령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19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국민 된 도리, 지식인의 도리로 안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재야운동의 한계를 느끼고 1989년 민중당 창당에 앞장서면서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해 개혁신당, 한국사회민주당, 녹색사민당, 새정치연대 등을 창당했다.
세 차례의 대통령 선거도 출마를 선언했으나 뜻을 이루진 못했다. 한 평생 노동·시민운동에 헌신했지만 제도권 정계로는 진출하지 못해 ‘영원한 재야’라는 별명을 얻었다.
최근에는 '신문명정책연구원'을 만들어 저술과 국회의원 특권 폐지 운동 등에 집중했다.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로도 활동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무하 씨와 딸 2명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차려질 예정이다.
[이투데이/김은재 기자 (silverash@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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