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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일본 신임 총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넘보는 '펀쿨섹좌'… 중독성 강한 '고이즈미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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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전 총리 차남 신지로 전 장관
"기후 변화, 즐겁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
순환논법·동문서답으로 온라인서 화제
인지도 높이려는 전략으로 해석되지만
"낮은 지적 수준 걱정된다" 반감도 상당
한국일보

고이즈미 신지로 전 일본 환경장관이 지난 6일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27일 열리는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도쿄=AFP·지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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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일본 총리가 결정되는 자민당 총재 선거(27일)에서 최대 화두는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장관의 당락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인 그는 43세의 젊은 나이에 준수한 외모 덕분에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지난 6일 출마 기자회견에선 "지적 수준이 낮아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망신당하지 않겠냐"는 지적을 들었다. 너무 엉뚱하거나 앞뒤가 안 맞아 화제가 됐던 그의 과거 발언이 이런 질문이 나온 배경이다.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고이즈미 전 장관의 황당 어록을 살펴 봤다.

'신지로 구문'을 탄생시킨 엉뚱한 화법


고이즈미 전 장관의 화법은 정치인의 수사치곤 엉뚱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9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정상회의 당시 기자회견 발언이다. 고이즈미 전 장관에게 기자가 "기후 변화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라고 묻자, 고이즈미 전 장관은 영어로 "즐겁고(Fun), '쿨(Cool)'하고, 섹시(Sexy)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에 기자가 "어떤 의미인가"라고 되물었지만, 고이즈미 전 장관은 "그걸 설명하는 것 자체가 섹시하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엄중한 국제회의 석상에서 나온 발언치곤 코미디 같았다. 당시 기자회견 내용은 국내 언론을 통해서도 널리 소개됐다. 이때부터 고이즈미 전 장관은 국내에서 '펀쿨섹좌'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됐다. 그의 기자회견 답변 앞글자에다 스스로를 칭하는 의미의 단어 '본좌'를 결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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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환경장관이 2019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기후 변화 대응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의 엉뚱한 대답 때문에 '펀쿨섹좌'란 별명이 붙었다. JTBC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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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어록도 만만찮다. 2019년 환경장관으로 취임한 직후 일본 후쿠시마 원전 피해 지역을 방문한 자리에서 취재진으로부터 "30년 내로 오염물 처리 시설을 후쿠시마현 바깥에 마련한다는 정부의 공약을 어떻게 이행할 것인가"라는 취지의 질문을 받자, 고이즈미 전 장관은 "30년 뒤면 나는 몇 살일까. 지진 직후부터 생각해 왔다"라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설명하는 대신, 비장한 표정으로 "하겠습니다. 그것이 약속이니까"라고도 했다. 온라인에서 널리 유행한 그의 '밈(Meme)' 중 하나다.

이 밖에 지구온난화 대책과 관련해 "지금처럼이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지금처럼이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2019년)"라고 하거나, "정치에 무관심인 것은 정치에 무관심인 채로 있을 수 있다(2020년)" 등 발언도 유명하다. 동어 반복 또는 순환 논법일 뿐 전혀 내용이 없는 발언이다. 4년 전에는 일본 정부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3년보다 46%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한 것과 관련해, 46%라는 목표치를 정한 이유를 두고 "46이라는 숫자가 어렴풋이 떠올랐다"고 설명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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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환경장관이 2019년 장관으로 취임한 직후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받고 있다. 이 사진은 그를 주제로 제작된 온라인 '밈'의 배경으로 종종 사용된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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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전 장관 화법의 핵심은 같은 말을 반복하는 순환논법과 동문서답이다. 워낙 잦은 구설로 일본 내에선 '고이즈미 구문(構文)'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고 한다. 일부는 그의 발언들을 일종의 '시(詩)'로 취급하기도 한다.

인지도와 달리 정책·철학 홍보에는 한계


고이즈미 전 장관의 돌출 발언에 대해, 인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목적으로 추정하는 견해도 있다. 한동섭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그의 발언들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들으면 젊은 감각에서 나온 위트처럼 인식되기 때문에 대중에 친근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선거 때 유권자가 정치인의 정책보다 이미지에 표심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은 만큼 높은 인지도는 큰 강점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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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한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장관. 배계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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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돌출 화법은 "낮은 지적 수준"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부정적 요소도 강하다. 일본 정치 전문가인 이헌모 주오가쿠인대 교수는 "고이즈미 전 장관은 명문가 출신치곤 학벌 등 '스펙'도 부족하다"며 "일본 식자층의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인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정치적 철학이나 정책 방향성이 제대로 알려진 게 없다는 점도 한계로 지목된다.

최근 일본의 복수 언론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민당 총재 선거는 3파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고이즈미 전 장관과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장관이 접전을 벌이고 있다. 27일 선거에선 자민당 국회의원과 당원·당우(후원단체 회원)가 각각 367표를 행사한다. 개표 결과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 2위 득표자가 결선투표를 치르는 구조다. 이 교수는 "지금 자민당이 쇄신을 도모하는 만큼 고이즈미 전 장관은 40대 총리의 탄생을 바라는 여론에 힘입어 당선을 노려볼 만하다"고 전망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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