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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이스라엘 “전쟁 새 단계” 선언···레바논선 ‘삐삐’ 이어 무전기도 연쇄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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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8일(현지시간) 레바논 전역에서 헤즈볼라 구성원 등이 사용하던 무전기가 연쇄적으로 폭발했다. 전날 무선 호출기(삐삐)가 연쇄 폭발을 일으킨 지 하루 만에 이번에는 무전기가 폭발하며 대규모 인명 피해가 이어졌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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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에서 휴대용 통신장비가 이틀 연속 폭발하며 중동 지역 전운이 짙어지고 있다.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통신 수단으로 이용하던 무선 호출기(삐삐)가 일제히 폭발하며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다음날인 18일(현지시간), 이번에는 무전기(워키토키)가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했다. 폭발 공격의 배후로 지목된 이스라엘은 전쟁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선언했다.

레바논 보건부 등에 따르면 이날 수도 베이루트를 비롯해 레바논 전역에서 휴대용 무전기가 동시에 폭발해 최소 20명이 숨지고 450여명이 다쳤다. 이는 지난해 10월 국경지대에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무력 충돌이 시작된 후 일일 사망자로 가장 많은 수치다.

이틀 연속 발생한 연쇄 폭발로 인한 사상자는 3200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전날에는 헤즈볼라 구성원 등이 소지한 무선 호출기가 연쇄적으로 폭발하며 어린이 등 최소 12명이 사망하고 2750여명이 다쳤다.

특히 전날 폭발 사고로 숨진 헤즈볼라 대원 등 4명의 장례식장에서도 무전기가 폭발하며 일대 혼란이 빚어졌다. 장례식 현장을 취재한 로이터통신 기자는 일부 무전기가 폭발을 일으키자 당황한 헤즈볼라 대원들이 소지한 무전기에서 다급하게 배터리를 꺼내 멀리 던져버렸다고 전했다. 미 뉴욕타임스는 장례식장에서 폭발이 발생하자 참가자들이 공황 상태에 빠졌으며, 일부는 휴대전화가 폭발할 수 있다는 공포에 휩싸였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댄 남부 지역에서도 폭발 사례가 다수 보고됐다. 무전기뿐만 아니라 주택의 태양광 에너지 시스템이 폭발을 일으키며 화재가 발생했다는 보고도 잇따랐다. 레바논 민방위대는 베이루트 남부 교외 지역과 동부 베카 밸리에서 최소 60채의 주택과 상점, 수십여대의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폭발로 인한 화재로 불탔다고 밝혔다. 두 지역 모두 헤즈볼라의 거점으로 알려진 곳이다.

폭발을 일으킨 무전기는 호출기와 마찬가지로 5개월 전 헤즈볼라가 레바논에 들여온 것으로, 일본 통신기기업체 아이콤(ICOM) 제품으로 알려졌다. 다만 아이콤 측은 해당 무전기가 10년 전 단종된 모델이며, 자사 제품이 아닌 가짜일 가능성이 있다며 사실관계를 파악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공격 역시 이스라엘의 공작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전선도 아닌 민간 지역에서 대규모 인명 피해를 초래하는 원격 공격을 벌인 것을 두고 ‘국제법 위반’이란 비판이 커지고 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2차 폭발까지 단행한 것이다.

이번 공격에 대해 공식적으로 책임을 인정도, 부정도 하고 있지 않은 이스라엘은 추가 공격을 암시하며 헤즈볼라를 압박했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은 이날 이스라엘 북부 공군기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전쟁의) 무게 중심이 북부로 이동하고 있으며 우리는 병력과 자원을 북쪽으로 돌리고 있다”면서 “나는 우리가 새로운 전쟁 단계의 시작점에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날 북부사령부를 방문한 헤르지 할레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도 “공격 수단이 더 남아 있다”며 추가 공격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날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지상 작전에 주력부대로 투입했던 98사단을 이스라엘 북부 레바논 국경지대로 이동 배치해, 헤즈볼라와의 전면전 가능성까지 대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이스라엘 안보 내각은 전날 레바논 국경지대에서 대피한 이스라엘 북부 주민들이 안전하게 귀환할 수 있도록 헤즈볼라의 공격을 중지시키는 것을 공식적인 ‘전쟁 목표’에 추가했다. 내각의 이런 결정이 나온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레바논에서 호출기가 연쇄적으로 폭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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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의 레바논 대사관 밖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서 한 아이가 전날 무선 호출기 폭발로 숨진 소녀의 사진 앞에 촛불을 밝히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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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전역을 혼란에 빠뜨리며 대규모 사상자를 낳은 이번 공격으로 이란이 주축이 된 반서방·반이스라엘 연대인 ‘저항의 축’과 이스라엘 간 갈등이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이란과 헤즈볼라, 하마스는 연이어 성명을 내고 이스라엘의 ‘테러’를 맹비난했다. 헤즈볼라는 대규모 보복도 예고했다. 카네기 중동센터의 연구 부소장인 모하나드 하게알리는 “헤즈볼라는 전면전을 피하고 싶어 한다”면서도 “(폭발 사건의) 규모를 고려하면 더 강력한 대응에 대한 압박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뜩이나 교착 상태에 놓여 있던 가자지구 휴전 협상의 타결 가능성도 낮아졌다. 미국의 거듭된 압박에도 강경 노선을 고수하며 휴전을 거부해온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번 공격으로 휴전 불씨를 꺼뜨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공격에 대한 개입을 거듭 부인한 미국 정부는 확전을 원치 않으며 외교적 노력을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CNN 등 미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공격 직전 미국에 레바논 작전을 사전 통보했으나, 상세한 내용까지 공유하진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사건 발생 후 언론 보도로 소식을 접한 미 당국자들이 적지 않게 놀랐다는 후문이다. 미 정부는 비공식 대화 채널을 통해 이란에 미국은 이번 공격과 무관하며, 이란이 긴장을 고조시켜선 안 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사회의 우려와 비판도 커지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민간용 물건을 무기화해선 안 된다며 “긴장 고조를 위해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폴커 튀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도 “폭발 사건은 충격적이며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20일 이번 사건과 관련해 긴급회의를 열 예정이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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