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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올해가 남은 인생중 가장 시원한 여름”…기후재앙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심윤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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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폭염에 가을 실종
기후 위기 이제 일상화
지구 더 뜨거워지기 전에
정부·국회가 뭐라도 해야


내 생애 이런 추석은 없었다. 대낮엔 35도를 넘나드는 찜통더위에 땀을 비오듯 쏟았고, 밤에는 열대야에 시달렸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폭염경보가 내려졌다. 유난스럽게 뜨거웠던 여름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가을이 실종됐다’는 말까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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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인 1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바닥분수대에서 한복을 입은 어린이들이 무더위를 피해 시원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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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6~8월)은 평균기온, 열대야 일수, 시간당 강수량, 해수면 온도 등이 역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게다가 폭염, 열대야, 극한호우가 조합되어 나타났다. 기후위기, 기후재앙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올해처럼 무섭게 체감한 적이 있었던가 싶다. “올해가 남은 인생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것”이라는 예측은 더 이상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섬뜩한 경고다.

기후위기는 전 지구적인 현상이다. 인도, 베트남 등은 4~5월 40~50도의 폭염으로 인명 피해뿐 아니라 농업·관광산업 등이 큰 타격을 입었다. 태풍의 위력이 강력해지면서 재난 규모도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최근 슈퍼태풍 ‘야기’가 휩쓸고 간 베트남에선 사망자 280여 명에, 2조원대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됐다. 태풍 ‘버빙카’가 상륙한 중국 상하이는 1만그루의 나무가 뽑히는 등 쑥대밭이 됐다. 기상이변은 이제 일상이 됐고, 삶을 위협하고 있다.

‘노동의 종말’을 쓴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도 기후위기에 경고장을 꺼내들었다. 신간 ‘플래닛 아쿠아’에서다. 그는 “인류가 6000년 동안 물의 힘으로 일군 수력문명이 기후변화에 직면해 붕괴되고 있고, 지구가 재야생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구 온도가 1도 오를 때마다 기상이변으로 인한 실향민이 10억명 발생하는 등 ‘신유목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의 전망이 과장된 것이기를 기대해보지만, 지금 같은 기후변화 추세대로라면 현실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지난달 헌법재판소가 기후소송에 대해 미래세대 권리를 옹호하는 전향적인 판단을 내놓은 것도 기후위기가 심각하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헌재는 탄소중립기본법에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는 목표가 적시돼 있지만, 2049년까지 구체적인 감축 목표를 적시하지 않은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해 헌법 불합치라고 판단했다. 산업계는 2030년까지 세운 감축 목표도 버거워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헌재 결정은 기후위기 대응은 국가의 책무라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지난 정부는 세계무대에서 거창한 목표를 제시했지만, 탈원전 정책과 태양광 비리로 성과가 미미했다. 현 정부의 기후 대응에서도 절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지난해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 순위는 세계 63개국 중 60위를 차지했다. 정부가 비현실적인 탈원전 정책을 폐기한 것은 다행이지만, 신재생에너지 발전은 크게 뒤처져 있다. 2023년 세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30%를 넘어섰지만 한국은 9%에 불과하다. 기업이 쓰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서약인 ‘RE100’이 새 무역장벽으로 부상하고 있는 만큼 재생에너지 확대를 미뤄선 안된다. 에너지 정책에는 이념이 있을 수 없다. 태양광 비리는 엄벌하되 태양광과 풍력을 키워 원전과 함께 에너지 두 축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국회도 속도를 내야 한다. 21대 국회는 기후위기특별위원회를 설치했으나 빈손으로 끝났고, 22대 국회는 아직 특위를 꾸리지도 못하고 있다.

개인들이 ‘기후위기 불감증’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다. 지난달 미셸 오바마는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지지연설을 하며 “가만히 앉아서 불평만 하지 말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Do something)”고 외쳤다. 기후재앙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 우리야말로 무엇이라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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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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