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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매경춘추] 인생은 결국 정반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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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홀수 달 두 번째 화요일에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했던 일로 각자를 소개하자면 한 명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이고, 또 다른 한 명은 브랜드 디자이너, 나는 서비스 기획자로 분류할 수 있겠다. 세 명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이미 성과와 명성을 쌓은 터라 맡은 직책들은 꽤나 무거웠다.

지난겨울, 한 커뮤니티 스타트업이 연말 모임을 열었다. 이 모임은 각자 자신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해당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낸 사람들이 초대된 자리였다. 그날 우리 셋은 벽 근처에 기대어 있었다. 모퉁이에 서서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공간 한가운데에서 어울릴 타이밍을 재는 것보다 더 편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시선을 서로에게 돌려 잔잔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한 명이 디자인을 기반으로 다양한 사업을 모색하는 회사에 기술책임자로 합류했다고 소개했고, 우리는 유명한 창업가가 수조 원대 회사를 매각한 후 재창업한 그 회사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언젠가 회사에 초대할게요"라고 그가 말했고, 그 약속은 곧 실현됐다.

그렇게 다시 셋이 모였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만난 자리였다. 세 명 다 서로에게 크게 얽혀 있지 않아서 오히려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대화는 느슨하게 이어졌고, 겹치는 지인은 굳이 묻지 않으며, 서로의 사적·공적 공간을 존중했다. 업에 대한 교집합은 있지만 관계에 대한 교집합이 없어서인지 내가 먼저 사업을 시작한 목적과 현재 겪고 있는 갈등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사업의 목적은 선명했으나 목표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들이 쌓였고, 한때 가까웠던 사람들의 배신과 돌변한 태도는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있음을 고해성사하듯 말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 셋 모두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일의 목적에 회의감을 느꼈던 순간들, 누군가의 배신과 갈등까지 더해져 무기력해졌던 시간들. 동일한 인물을 겪은 것은 아니지만 동일한 경험이 겹쳐 있었다. 15년 이상 일을 하다 보면 그 일 자체의 내용보다 결국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의미가 남는다. 뜻이 맞았던 사람들과 함께 성과를 이뤘을 때의 벅찬 감정은 한없이 따뜻하게 기억되지만 그와 반대로 갈등을 빚고 누군가 이탈하는 것은 성과를 무색하게 만든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데 있어 그 경험은 큰 원동력이 되거나 두려움으로 동작하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사람은 사람으로, 일은 일로 계속 덮어씌워져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나의 성공도, 실패도 하나의 경험으로 치부하는 담담함이 필요하다.

삶은 비눗방울처럼 반짝이다가도 금방 터져버린다. 그러나 그 짧은 반짝임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전부일 수 있다. 원 없이 반짝이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모이고 즐거웠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수 있다. 비눗방울 같은 한때를 겪었기에 또 다른 경험을 시작할 수도 있겠다.

우연히 만난 세 명이 나눈 지난 경험은 의외로 내게 다시 새로운 일을 할 동력을 주었다. 레너드 코언의 노래 중 이런 가사가 있다. "There is a crack, a crack in everything, That's how the light gets in." 인생은 결국 정반합으로 이루어진다.

[장서정 자란다 창업 및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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