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만에 6쇄…인터넷서점 에세이 1위
70대 노년 여성의 일상·생각을 가감 없이
이옥선 작가가 중쇄 행렬인 에세이집 '즐거운 어른'에 저자 사인을 하고 있다. 이야기장수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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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로 이런 할머니를 기다려왔다. 세상을 날카롭게 파악하고 맵싸한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할머니.'
출간 보름 만에 6쇄를 찍은 이옥선(76) 작가의 에세이집 '즐거운 어른'에 실린 추천사의 한 대목이다. 추천사를 쓴 건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당신과 나의 아이디어' 등의 베스트셀러를 낸 김하나(48) 작가. 이 작가는 김 작가의 엄마다.
'즐거운 어른'은 중등 교사로 일한 3년을 빼고 평생 전업주부로 산 늦깎이 에세이스트 이 작가의 데뷔작. 70대 노년 여성의 일상과 생각을 가감 없이 부려놓았다. '자애로운 할머니'나 '귀여운 할머니'가 아닌 '속 시원히 할 말 다 하는 할머니'의 화법이 인기의 비결이다.
기다려왔던 70대 여자 어른의 말
18일 현재 '즐거운 어른'은 인터넷서점 알라딘의 에세이 부문 주간 베스트셀러 1위다. 지난달 26일 출간된 책은 연일 중쇄 행렬이다. 유튜브 채널 '밀라논나'의 장명숙(72)과 채널 제작자인 이경신(42)의 대담집 '오롯이 내 인생이잖아요'도 비슷한 시기에 나와 '할매 에세이' 돌풍에 힘을 보탰다. 힘 빼고 말하는 70대 여성이 화자라는 게 공통점이다.
즐거운 어른·이옥선 지음·이야기장수 발행·248쪽·1만6,800원 |
'즐거운 어른'의 편집자인 이연실 이야기장수 대표는 "아등바등 사는 게 아니라 지금의 즐거움과 충만함을 누리는 어른이 필요하지 않나. 그게 지금 우리한테 중요한 얘기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하나씨를 키우며 5년간 쓴 육아일기 '빅토리 노트'를 2년 전 펴냈다. 당시 이 작가는 "다시는 나무를 잘라서 책을 낼 일은 없을 것"이라 했지만 마음을 바꾸었다. "주부 노릇을 오랫동안 해온 나같이 나이 많은 사람도 뭔가 할 말이 쌓여 있더라"고 했다.
호탕한 일갈·칼칼한 유머로 인기몰이
"일주일에 한 편씩 저절로 써졌다"는 글 22편이 책에 담겼다. '야, 이노무 자슥들아'라는 제목의 글에선 사생활이 난잡했던 장 자크 루소, 레프 톨스토이,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에게 호통을 친다. 여성의 큰 가슴에 집착하는 남성과 브래지어를 입느라 고생하는 여성을 대비시킨 글의 제목은 '젖가슴이 큰 게 그리 좋은가?'이다. 이 대표는 "베테랑 작가들과 일하면서도 (글의) 제목을 많이 바꾸는데, 이 작가님이 보낸 제목들이 워낙 재밌고 위트 있어서 고치지 않고 썼다"고 귀띔했다.
이 작가의 호방한 글은 나이가 드니 어쩐지 두둑해진 배짱과 유연한 사고 덕분이다. 그는 2021년 세상을 떠난 남편의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가족들에게 추석 명절에도 모이지 말자고 했다. 그는 "전통이니, 가풍이니 하는 것들이 남의 집 딸들 데려다가 자기네 조상 섬기는 것밖에 안 된다는 걸 실감 나게 느꼈기 때문"이라며 "70년 넘게 살면서 보고 느낀 게 있어서 과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옥선 작가는 '즐거운 어른'에서 애면글면 애쓰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야기장수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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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이옥선 작가. 이야기장수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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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인생 황금기에서 "애면글면 애쓰지 마라"
남편 장례를 치른 후 인생의 숙제를 모두 마쳤다는 이 작가는 요즘 "세상 홀가분하고 자유롭게, 최고의 인생 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만다꼬('뭐 하려고'의 경상도 사투리)" "애면글면 애쓰지 마라"는 책의 메시지는 '즐거운 어른'이 나눠주는 인생 지혜다.
이 작가는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게 사는 비결로 '부지런 금지'를 꼽았다. 그러면서도 "너무 열심히는 하지 않더라도 무언가를 꾸준히 지속적으로 하는 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23년째 요가를 하고, 일주일에 한 번 등산을 간다. 새로운 취미는 인터넷서점에서 신간을 검색하는 것이다. 책 소개를 훑으면서 "요즘 이런 책, 이런 작가가 뜨고 있구나 살피고, 시대 흐름도 짐작"해본다.
"정년퇴직하고도 명함에 수십 개 직함을 새기고 다니는 하고재비(뭐든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양손에 떡을 쥐고 정신없이 사는 사람들 보면 왜 저러고 살지 싶거든요. 남들 하게 두면 되는데 너무 부지런하게 살 필요 없어요."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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