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익명 게시판 블라인드가 내부 고발과 정보 공유의 순기능이 있지만 명예훼손과 거짓 소문 확산 같은 부작용을 낳자, 대체품을 찾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회사에 건의할 수 있는 익명게시판을 사내 망에 신설하거나, 기존 게시판에 유사한 기능을 추가하는 것이다. ‘블라인드 가지 말고 여기서, 건설적인 얘기를 나누자’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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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게시판 특허 내고, ‘매너 온도’도
사진 삼성SD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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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DS는 지난 2018년부터 사내 익명게시판 ‘TALK’을 운영하고 있다. 하루 평균 60여 건의 익명 의견이 올라오고, 회사가 공식 답변한 사안만 4800건이 넘는다. 하지만 초반에는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않았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대다수인 회사답게, 직원들이 ‘누가 썼는지 회사는 알 거다’라며 익명성을 믿지 않아서다.
LG이노텍은 지난해 6월 익명게시판 ‘이노 보이스’를 새로 만들었다. “회사 제도나 업무 환경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소통 창구가 있으면 좋겠다”라는 주니어 직원들의 의견을 수용했다. 제안 글을 익명으로 올리면 내용에 따라 담당 부서로 이관돼, 해당 부서 팀장이 직접 답변 글을 올리는 방식이다. 회사에 따르면 지금까지 1800여 건의 익명 제안이 올라왔고, 이중 현재 검토 중인 100건을 제외한 모든 제안의 답변이 완료됐다.
사진 LG이노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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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가 지난 2022년부터 운영하는 사내 익명게시판 ‘컴온(CommON)’에는 ‘매너 온도’가 있다. 중고장터 당근마켓에서처럼, 익명 글을 올린 이의 매너를 직원끼리 평가하고 볼 수 있는 제도다. 그 덕에 사실과 다른 왜곡된 글이 올라오면 구성원들의 자정이 이뤄진다고. 컴온에는 월평균 500건의 익명 제안이 올라오는데, 특히 구내식당 메뉴에 대한 의견이 많다고 한다. 이를 반영해 식사 대용 간편식 종류를 확대해 호응을 얻기도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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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게시판 부작용…폐지 또는 속앓이
그러나 ‘익게’는 여전한 기업의 고민거리다. 좋은 취지로 운영됐다가도, 익명성에 기대 변질될 위험이 있기 때문.
엔씨소프트는 지난 5월 1일 자로 사내 익명 게시판을 실명 운영으로 전환했다. 이 게시판은 원래 게임 개발 같은 전문 업무 지식에 대한 질문과 답변을 익명으로 주고받는 지식 공유 공간이었으나, 사내 게시판 중 유일하게 익명으로 글을 쓸 수 있다 보니 회사를 성토하는 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결국 회사는 “본래 취지와 다른 방향으로 활용되고 사례가 늘어났다”라며 실명으로만 글을 올릴 수 있게 했다.
사내 익명게시판 ‘나우톡’을 운영하는 삼성전자는 이와 별개로 회사에 대한 건의 사항을 국민 청원 방식으로 올리는 익명 게시판을 지난 2021년 열었다가 2023년 닫았다. 명목상의 이유는 ‘코로나 기간 부족했던 소통을 늘리려 열었다가 팬데믹이 끝나 닫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성 없는 의견을 적은 글이 공감을 받기도 하는 등 부작용이 많아 접은 것으로 알려진다.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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