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19 (목)

尹도 "솔직히 뭔지 몰라"…정치권 뒤흔든 '뉴라이트' 뭐길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한덕수 국무총리가 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총리님은 ‘뉴라이트’를 아십니까?”(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레프트'도 있나요? 제발 색깔 칠하지 마세요.” (한덕수 국무총리)

2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 총리와 신 의원이 주고받은 설전이다. 3일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혹시 뉴라이트인가요?" (서미화 민주당 의원) "뉴라이트 사관이 뭔가요?"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 같은 공방이 이어졌다.

이른바 ‘뉴라이트’ 논란이 9월 정치권을 삼켰다. 야권은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 등 최근 윤석열 정부의 주요 인사와 한·일 관계, 독도 조형물 철거, 역사 교과서 논란 등을 앞세워 ‘뉴라이트’ 총공세를 펼쳤다. 여권은 “이념 주의로 몰아치지 말라”로 맞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정브리핑에서 “솔직히 뉴라이트가 뭔지 잘 모른다”는 말까지 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80~90년대 ‘색깔론’ 공방을 연상케 한다”며 “달라진 건 보수와 진보 측의 공수가 뒤바뀐 것”이라고 말했다.

①2004년 보수 위기에 등장, MB 전성기-朴 시들

뉴라이트는 1990년대 후반 태동한 보수 운동이다. 소련 붕괴와 북한의 실상에 충격을 받은 안병직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 등 좌파를 옹호했던 인사들의 반성적 운동에서 출발했다. 2000년대 이후 이영훈 서울대 명예교수 등 낙성대연구소를 중심으로 하는 ‘식민지 근대화론’ 그룹이 더해졌다.

중앙일보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전민규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들은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대패한 뒤 급부상했다. 열린우리당에 단독 과반(152석)을 내주며 위기에 빠진 보수 정치권은 ‘반공’ 등 기존 우파와 차별화를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뉴라이트를 내세웠다. 특히 2007년 대선 때 뉴라이트전국연합, 시대정신, 바른사회시민회의 등 뉴라이트 그룹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지원하면서 영향력이 커졌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는 ‘뉴라이트=친이계’라는 낙인 탓에 힘을 쓰지 못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뉴라이트는 시장적 보수 정부라는 점에서 이전 보수 정부와 구분된다”며 “이명박 정부는 시장적 보수라면 박근혜 정부는 안보적 보수로의 회귀”라고 말했다.

②윤석열 정부에서 재조명

윤석열 정부에서 뉴라이트가 재조명받은 것은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김영호 통일부 장관, 한오섭 전 정무수석 등 과거 뉴라이트 운동에 관여한 인사들이 등용되면서다. 민주당은 이들의 영향으로 윤석열 정부가 "친일 정책 편다"고 주장한다. 이한주 민주연구원장은 “뉴라이트의 대표적 특징은 친일적 태도”라며 “강제징용 노동자에 대한 제3자 변제 방식이나 독도 조형물 철거 논란 등 친일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다”고 말했다.

여권 인사들은 친일 성향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뉴라이트 운동을 주도했던 한 정치권 인사는 “뉴라이트의 핵심은 보수 진영의 이데올로기를 반공에서 자유주의로 바꾸자는 것”이라며 “식민지근대화론은 본류가 아닌데, ‘뉴라이트=친일’로 매도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중앙일보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8월 2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의 인사들은 식민지근대화론에는 거리를 둔 채, 이승만 전 대통령과 단독정부 수립을 재평가하는데 방점을 두고 있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영화 ‘건국 전쟁’을 관람한 것이 대표적이다.

③과도한 이념논쟁에 “현대판 예송논쟁, 학계에 맡겨야”

전문가들은 민주당의 친일 공세가 “지나친 면이 있다”는 입장이지만 “정부가 자초했다”고 지적도 나온다. 박동원 폴리컴 대표는 “솔직히 독도 포기라는 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얼마나 있겠냐”면서도 “윤 대통령이 홍범도 동상 철거 논란 같은 것을 불필요하게 부각시키며 빌미를 준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

1946년 8월 15일 열린 광복 1주년 기념식에서 함께한 우남 이승만(왼쪽)과 백범 김구. [중앙포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별개로 뉴라이트 공방이 우리 사회를 퇴행적 이념전으로 끌고 간다는 우려가 크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학과 교수는 “건국 시점이나 임시정부에 대한 평가는 학계에서도 논쟁이 치열한 영역”이라며 “정치인들이 이를 정파적 이익을 위해 과도하게 끌어들이며 소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정치학과 교수는 “의견이 다르면 '뉴라이트'라고 낙인 찍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또 다른 ‘매카시즘’이 될 수 있다”며 “학계에서도 이승만 관련 논문 심사가 이유 없이 보류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들은 “논란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며 익명을 요구했다.

홍석률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는 “윤석열 정부에 참여한 인사들이 ‘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처럼 별다른 활동이 없던 인사가 ‘건국절’ 발언 하나로 같은 부류로 묶이는 것은 애매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박동원 폴리컴 대표는 “죽은 왕의 정통성을 논하며 ‘상복을 3년 입을까, 6년 입을까’를 놓고 싸운 거랑 뭐가 다르냐”며 “AI, 기후변화, 의료대란 등 다뤄야 할 의제가 산더미인데, 정치권이 국민을 끝없는 과거의 늪으로 끌고 들어간다”고 비판했다.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