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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화된 뉴스는 이제 그만, 이슈의 맥락을 읽는 재미를 담았습니다.
앞선 글에서, 이번 TV 토론에서 트럼프가 범했던 실수들을 짚어봤다. 여론조사로 보나 전문가들의 평가로 보나 이번 TV 토론은 트럼프의 패배로 남게 됐다.
[1편 읽기] 트럼프는 뭘 못해서 TV 토론을 망쳤나
그렇다면, 해리스는 이제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선거의 승리가 보장되는 걸까?
그렇지 않다. 토론 직후 해리스 본인 명의로 후원자들에게 발송된 선거자금 모금 이메일에서도 "토론이 선거를 이겨주지는 않는다"고 했다.
TV 토론의 승리가 본 선거의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례는 미국 정치에도, 국내 정치에도 많다. 미국의 경우, 대표적으로 2012년 대통령 선거를 들 수 있다. 당시 재선에 도전하는 대통령인 오바마는 공화당 후보 밋 롬니를 상대로 토론에 임했고, 여론은 '롬니의 토론 승리'로 판정했다.
당시에도 TV 토론 시청자들을 상대로 즉석 여론조사가 실시됐다. 롬니는 오바마보다 35%P 앞섰다. (이번 토론 직후 해리스는 트럼프를 26%P 앞섰다.) 하지만 오바마는 재선에 성공했다.
TV 토론이 선거 승리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특히 이번 선거에서 그럴 이유는 무엇일까. 해리스가 11월 5일 본선 승리를 위해 해결해야 할 남은 과제는 무엇일까.
TV 토론 시청자들 중엔 민주당 성향인 사람이 더 많다
왜 그럴까. 일단, TV 토론 시청자-특히 끝까지 시청하는 사람들 중엔 민주당 성향인 사람이 더 많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여론조사 및 선거 분석 전문가인 네이트 실버는 자신의 사이트 '실버 불레틴'에서 이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TV 토론 시청자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는 늘 '착시효과'의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대선의 경우, 트럼프 지지자와 해리스 지지자 간에는 '교육 격차'를 보인다. 4년제 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 해리스 지지인 경우가 많고, 그 미만 학력의 소지자인 경우 트럼프 지지자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늦은 밤 TV 토론을 끝까지 보고 여론조사에까지 응답했다면, 민주당-해리스 지지자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강한 정치적 양극화... 결국 다시 47대 48 싸움으로
여전히 백악관에서 대통령 업무를 수행 중인 바이든이 재선 도전을 접어야 했던 계기는 지난 6월 말의 TV 토론 참패였다. 그런데, 당시 전국 지지도 조사는 상당 기간 동안 '트럼프-바이든 접전'으로 변함이 없었다. '도저히 당신으로는 선거가 안 되겠으니 비켜달라'는 아우성이 민주당 내에서 들끓었지만, 바이든은 '여론조사 지지도에 별 변화가 없는데 왜?'라며 한 달을 버텼다.
당시 여론조사에선 왜 바이든 지지도가 떨어지지 않았을까? 미국 사회가 이미 철저히 양 진영으로 분리된 가운데, 민주당 지지자들이 '흔들리는 모습을 적들에게 보일 수 없다'면서 '바이든 지지'라고 계속 답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의회 관계자들과 참모들은 선거전이 속으로 망가지고 있다는 다른 복잡한 지표들을 들고 바이든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
CNN이 주관했던 바이든 vs 트럼프 TV 토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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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TV 토론의 여파는 시일이 지남에 따라 가라앉을 것이다. 잔잔한 물 위에 바윗돌을 던지면 처음엔 물결이 출렁이지만 차차 원 상태를 회복하는 것과 비슷하다. 심지어 트럼프가 총에 맞아 죽을 뻔한 사건도 지지도 그래프를 바꾸지 못했다. (처음엔 출렁이는 듯했지만 원래의 추세를 회복했다.) 결국 해리스 대 트럼프는 오차 범위 안에서 47:48 정도로 엎치락 뒤치락하는 상태로 재수렴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판이 '안정적으로 양분'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선거를 승리로 끌고 가는 방법은
1) 지지자들의 실제 투표율을 높인다. (이른바 '집토끼 동원' 전략)
2) 얼마 남지 않은 부동층의 마음을 사로잡아 중도층 지지세를 늘린다. ('산토끼' 전략)
이 두 가지다.
트럼프는 2)도 한다고는 하지만 1)만 열심히 하는 모양새다. 해리스는 트럼프보다 2)를 더 열심히 하고 있지만 애쓰는 것에 비해 효과가 나질 않고 있다. 유력 매체들이 발표하는 여론조사에서는 오차 범위 내 우세로 나오는 경우가 많지만, 해리스 캠프는 '실제 숫자는 덜 우호적'이라며 긴장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가을을 시작하는 국면에서 뉴욕타임스가 전국 지지도 조사를 실시한 결과 (9월 3일~6일) 트럼프의 지지율은 48%로 해리스를 1%P 앞서고 있었다. 해리스가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누리던 '허니문 효과', '컨벤션 효과'가 사라진 것이다. 오차 범위 내에서 해리스 우세로 나타나는 조사들도 있었지만, '해리스의 상승세가 둔화됐다'는 결론은 공통적이었다.
어떤 사람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나
트럼프는 막말과 거짓말을 일삼고 분열을 조장한다. 그래서 좋다는 사람들도 있는 게 세상이지만, '트럼프 지지'라고 답하는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다. 트럼프의 그런 점들이 불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민주당을 응징하는 표를 던지겠다는 사람들이 유권자의 절반에 이른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이런 사람들에겐 트럼프가 이번에 어떤 말실수나 막말을 했다는 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민주당의 실정을 심판할 트럼프라는 '존재 자체'에 표를 던지는 것으로 주권자의 의사 표시를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잘못된 현실에 대해 분노하고, 싹 갈아엎으려는 데 방해를 받다보면 심한 말 좀 할 수도 있지'라는 옹호에 이르기도 한다.
TV 토론에 임하는 트럼프 사진 : AP,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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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생각하는 민주당의 실정(失政)은 뭘까. ('미국은 지금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응답은 주요 여론조사들에서 65%를 넘나든다. 이들 중 일부는 '민주당에 다시 한번 기회를 주자'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은 '민주당에 또 맡기는 건 대안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선, 물가다. 미국의 물가는 서민들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치솟았다.
불법 입국자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문제도 절반의 유권자들이 '민주당은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데 일조했다. 올여름 이후로는 상황이 달라졌지만, 특히 지난해의 양상은 심각했다. 텍사스 등 공화당이 정권을 잡은 남부 국경의 주들은 쏟아져 들어오는 불법 입국자들의 일부를 실어서 민주당이 다스리는 북부 주들에 내려놨다.
수천 명의 중남미 출신 입국자들을 실은 버스가 뉴욕시에 줄지어 도착하고 있다. 올해 1월 9일. 사진 : 게티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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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난민들에 대한 인간적 처우'를 얘기하던 민주당 주(대표적으로 뉴욕)들은 곧 몸살이 났다. 민주당원인 뉴욕주지사와 뉴욕시장이 '어떻게 좀 해보라'고 바이든 백악관에 항의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범죄의 창궐도 유권자들의 심리에 큰 영향을 줬다. 민주당이 지자체 정권을 잡은 지역에선 1,000달러 이하의 절도는 감옥에 보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수감할 교정시설이 포화 상태라거나, 범죄자 교화 효과가 없다거나, 걸핏하면 감옥에 보내는 정책이 유색인종 억압 기제로 작용한다든가 하는 등이다. 각각 논리로 따져보면 그럴 수 있는데, 결과로 나타나는 현실은 일반적인 시민들이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 절도범들이 점점 대담해져서 백주대낮에 버젓이 주인 앞에서 물건을 쓸어간다. 조직화된 도둑들이 훔친 물건을 버젓이 온라인으로 되판다. 상점들은 치약과 세제조차도 수납장 안에 잠가두거나, 아예 감당 못 하겠다 싶으면 점포를 폐점해 버린다. 점원들이 일자리를 잃고, 주민들은 생필품을 살 곳이 없어진다.
오바마-바이든 12년 동안 확장된 진보 색채의 사회 변화에 대한 반작용도 있다.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면 '상대의 종교적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 태도'라고 비판한다든지, 스타워즈와 마블 히어로 영화에 인위적으로 유색인종이나 성소수자 캐릭터를 넣는다든지, 만화나 동화의 주인공을 흑인으로 바꾼다든지, 노예 제도를 옹호했다는 이유로 과거 인물의 동상을 철거하거나 고전 작품을 추천 리스트에서 삭제한다든지, 성전환자를 앞세운 마케팅을 기업들이 채택한다든지... 이런 일들을 역사의 진보라는 차원에서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뭔가 잘못되어간다'고 반감을 품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버드라이트 맥주가 2023년 성소수자 상대로 마케팅 캠페인을 펼칠 당시 모델을 했던 트랜스젠더 딜런 멀베이니(Dylan Mulvaney). 남성 소비자들은 이에 격렬히 반발하며 버드라이트 불매운동에 들어갔다. 사진 : 게티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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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양민 학살을 비난하며 인도주의적 휴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큰 한편으로, 하마스를 응원하고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버리자고 요구하며 성조기를 불태우는 시위대에 반감을 품는 유권자들도 적지 않다.
이런 사람들-미국이라는 나라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자신들의 분노를 유일하게 이해해 주는 정치인, 잘못된 세상을 뒤집어엎어 줄 수 있는 지도자가 트럼프다. 이들은 이번 ABC-TV 토론에서 트럼프가 졌다고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가 된 '개·고양이' 발언도 그렇다. 트럼프가 '불법 이민자들이 개·고양이 잡아먹는다'고 발언하자, 해리스는 세상에 별 미친 소리를 다 한다는 표정으로 실소를 지으며 "당신 정말 극단적인 소리만 하는군"이라고 응수했다. '미국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아직 해리스 지지로 넘어가지 않은 유권자들은 이 장면에서 '해리스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군.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질 위험이 있잖아?'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불만 에너지는 미국 정치판의 지각 아래 꿈틀거리는 마그마 같은 힘이다. 집권 여당의 현직 대통령이 후보 자리를 잃는 격변 때문에 잠시 잊히긴 했지만, 그 힘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은 채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다. 그 마그마가 터져 나올 화산이 바로 트럼프인데, 이번 선거 때 화산이 분화하지 말란 법은 없다.
해리스를 '더 알아야겠다'는 유권자들의 진짜 속뜻은
주요 여론조사들을 보면, "해리스라는 정치인을 여전히 잘 모르겠다. 더 알고 싶다"는 대답이 30% 이상 나온다. 이는 '찍어도 될지 모르겠어'라는 부정적 감정의 나이스한 표현일 수 있다. 해리스를 지지하는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 라폰자 버틀러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해리스가 대선 후보로 등장한 지 한 달이 넘고 바이든 정부의 부통령으로 있은 지 4년이 다 돼가는데, 왜 유권자들은 여전히 해리스를 '잘 모르겠다'고 할까? 그건, 해리스가 정치인으로서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대선 출마 이후 어떤 선택들을 바꿨는지, 그 이유가 뭔지, 여전히 설명이 석연치 않기 때문이다.
토론 중인 해리스. 사진 : AP,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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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TV 토론에서도, 해리스는 그런 부분에 대한 설명을 최소화했다. (대신 트럼프를 약 올리고 토론을 트럼프의 과거 쪽에 맞추는 전략을 썼다. 이에 대해서는 앞선 1편 참조.) 트럼프 앞에서 자신의 입장 변화 이야기가 길어질 경우 매서운 공격을 당할 가능성이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TV를 보는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로서는 여전히 물음표를 지울 수 없었을 것이다.
해리스 본인은 '민주당원이면 누구나 할 법한 주장을 하는' 정도의, 평균적인 리버럴이라는 게 미국 언론들의 평가다. 다만 2019년 대선에 도전장을 낼 때는 온건 보수 라인업에 이미 바이든 등 후보들이 포진하고 있었고 해리스의 기반은 캘리포니아 진보 진영이었으므로, '가장 좌파적'인 입장을 표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민주당 지지자가 아닌 유권자들에게도 어필해야 하므로 2019년에 했던 말들을 주워 담고 입장을 바꿔야 하는 부분들이 많다.
해리스의 참모들은 이런 배경을 언론에 설명했고, 정치 기사를 다루는 언론들도 익히 사정을 알고 있다. 정치 고관여층 유권자들도 머리로는 사정을 짐작한다.
문제는, 해리스가 자신의 '우클릭'을 얼마나 진정성 있게 설명하느냐, 바이든 정부의 지난 3년 반이 유권자들에게 '불호(不好)'로 기억되게 된 데 대해 자신의 책임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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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스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바꾸겠다'면서, 바꿔야 할 현실이 잘못됐다는 점을 속 시원히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려면 바이든 대통령을 비판해야 하고, 바이든의 부통령인 자신에게도 책임이 돌아오는 상황을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환경에 부담을 주는 천연가스 채굴 방법(프래킹) 금지 이슈에 있어서도, 그때는 잘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었다고 솔직히 인정하지 않는다. 범죄 창궐이나 불법 입국에 대한 공권력 강화 문제도, 바이든 정부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은 채 화살을 트럼프에게 돌린다. 트럼프가 통상 정책과 세금 정책을 잘못 다뤘다고 비판하면서도, 트럼프의 대중 관세 정책을 바이든 정부가 이어받은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이런 점들 때문에 유권자들은 뭔가 개운치 않다는 뒷맛을 느끼는 것이다. "해리스를 아직 잘 모르겠다"는 답변의 속뜻은 바로 거기에 있다.
뉴욕타임스의 진보 성향 논객인 토머스 프리드만, 에즈라 클라인 등은 해리스가 '인정할 점은 인정하고 사과할 점은 사과하는' 것이, 아직도 넘어오지 않은 부동층 표를 자기 것으로 끌고 오는 데에 오히려 도움이 될 거라고 지적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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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식 D콘텐츠 제작위원 hyunsi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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