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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하지 마!" 무대 난입한 소프라노…그는 왜 앙코르를 싫어했을까 [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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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게오르규는 잘못했지만… 오페라 앙코르 하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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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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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열린 오페라 '토스카' 무대에 선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가 상대역 가수 앙코르 중에 '무대 난입'해 항의하고, 커튼콜마저 거부했던 해프닝이 시중의 화제입니다. 세종문화회관이 게오르규 측에 사과를 요구하겠다고 한 지 며칠 만에, 게오르규가 소속사를 통해 '출연자 모두 앙코르 하지 않기로 사전 합의했었다'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세종문화회관은 이에 대해 '합의한 적 없으며, 본인의 앙코르 이외 나머지 성악가들의 앙코르에 대한 결정권까지 소프라노가 가질 수는 없다'라고 반박했습니다.

앙코르와 관련한 사전 합의가 있었느냐를 두고 양측의 말이 엇갈립니다만, 이 문제가 이번 사태의 본질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세종문화회관이 밝힌 바와 같이, 게오르규가 오페라 3막에서 공연 진행을 방해함으로써 관객의 공연 관람권을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것입니다. 현장에 있었던 저는 게오르규의 '무대 난입'에 당황스러웠고, 불쾌감을 느꼈고, 공연의 감흥은 깨져 버렸습니다. 함께 출연한 음악가들뿐 아니라 관객들도 무시한 행동이었습니다.

만약 게오르규가 주장한 대로 사전 합의가 있었다고 해도, 그의 공연 방해가 정당화되지는 않습니다. 항의하고 싶었다면 다른 방식으로 했어야 합니다. 게오르규는 성명에서 '한국의 관객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표명한다'고 했지만, 정말 관객들을 생각했다면 공연이 한창 진행되는 도중 그런 돌출 행동을 했을 리가 없습니다. 사과를 받고 싶었던 저는 게오르규의 성명을 보고 실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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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게오르규가 오페라 공연 도중 앙코르를 싫어한다며 밝힌 이유 자체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명에서는 게오르규가 '앙코르가 오페라의 서사 흐름을 방해한다고 믿고 있다'라면서 이를 '굳은 신념'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보통 클래식 공연에서 앙코르는 공연이 끝난 다음에 하는 건데, 왜 앙코르가 서사 흐름을 방해한다고 하는 걸까요?

오페라에서 앙코르는, 오페라에 출연한 가수가 그 오페라의 대표 아리아를 아주 잘 불렀고 관객의 반응이 아주 뜨거울 경우, 그 자리에서 이 아리아를 한 번 더 부르는 겁니다. 오페라 관객들은 앙코르를 요구할 때 '비스('다시 한번'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Bis)!'라고 외칩니다. (물론 '앙코르!'라고 해도 됩니다.)

게오르규가 출연했던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에는 유명 아리아들이 많은데, 3막에 나오는 테너의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이 문제의 앙코르곡이었습니다. 정치범으로 붙잡혀 사형을 앞둔 카바라도시가 연인 토스카와 함께했던 아름다운 순간을 회상하며 부르는 아리아인데요, 애달픈 곡조로 시작해 점점 격렬해지며 '이토록 삶을 아쉬워한 적이 있었던가!'라고 비통하게 노래하며 끝납니다.

이 아리아가 끝나고 나면 애인을 면회하러 온 토스카가 무대에 등장하고, 두 사람의 애틋한 재회 장면이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게오르규는 무대 뒤에서 등장할 준비를 하고 있다가 '별은 빛나건만'이 다시 연주되는 것을 듣고는, 자기가 나올 차례가 아닌데 무대로 '난입'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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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규는 2016년 빈 국립오페라극장 '토스카'에서도, 상대역인 세계적인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이 '별은 빛나건만'을 앙코르로 부르자, 분장실에 들어가 버려 공연이 중단된 적이 있습니다. 극장 관계자는 박수가 계속돼 게오르규가 무대 등장 시간을 놓쳤다고 설명했지만, 게오르규가 오페라 공연 도중 앙코르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해석됐습니다.

그런데 게오르규보다 더 심하게 앙코르를 싫어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전설적인 지휘자 토스카니니입니다. 사실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 극장에서는 오페라 공연 도중이라도 관객이 원하면 그 대목을 다시 하는 게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토스카니니는 앙코르를 한사코 거부했고, 이 때문에 앙코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가수는 물론이고 관객들과 종종 충돌했습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다혈질로 소문난 시칠리아 팔레르모 극장에서는 관객의 앙코르 요구를 계속 거부해 성난 사람들의 습격을 받을 지경에 몰렸다가, 토스카니니의 배짱을 좋게 본 마피아 리더의 중재로 위기를 넘겼다는 일화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토스카니니는 1903년 라 스칼라에서 베르디의 '가면무도회'를 공연하면서, 당시 인기 높았던 테너 조반니 제나텔로의 노래에 대한 앙코르 요구를 무시하고 그대로 연주를 진행했습니다. 관객의 앙코르 요구가 점점 더 거세지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고, 화가 난 토스카니니는 공연 도중 지휘봉을 내던지고 극장을 나가버렸습니다. 3년이 지나서야 라 스칼라 극장에 복귀한 그는, 오페라 공연 도중 앙코르를 공식적으로 금지했습니다.

이는 그가 추진한 '오페라극장 문화 개혁'의 일환이었습니다. 오락과 사교의 장소가 된 오페라 극장을 종합예술의 산실로, 진지한 예술 감상의 장소로 바꾸려 했습니다. 오페라는 가수가 중심이 아니라 작곡가와 악보가 중심이라고 여겼고, 극의 일관된 흐름을 위해 앙코르를 거부했습니다. 공연 관람을 방해하는 여성의 모자 착용을 금지하는 등 관람 문화를 바꿨고, 오페라 공연을 발레로 끝내던 관습도 폐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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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카니니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도 활동했고 전 세계 음악계에 큰 영향력을 가진 지휘자였습니다. 토스카니니 이후 라 스칼라와 메트 오페라에서는 오랫동안 '앙코르 금지'가 정책이 되었습니다. 앙코르가 모든 오페라 극장에서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철 지난 구시대 관행'처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정책이 영원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걸출한 스타 성악가들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스타 성악가로 전설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빼놓을 수 없죠. 그는 메트 오페라에서 1994년 '토스카' 공연 도중 '별은 빛나건만'을 부르고 나서 열광적인 앙코르 요청을 받았고 그 자리에서 이 노래를 다시 한번 불렀습니다.

이후 2008년에는 테너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가 메트에서 도니제티 '연대의 딸' 중 '아 나의 친구들이여'를 부르고 뜨거운 박수갈채가 이어지자 이 곡을 다시 한번 불렀습니다. 이 아리아는 아찔한 고음인 '하이 C'가 무려 9번이나 등장하는 곡입니다. 플로레즈는 이 곡으로 이미 다른 오페라 극장에서 앙코르를 여러 번 했고, 이 중에는 라 스칼라 극장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보수적인 라 스칼라에서도 오랜 규칙이 깨진 셈입니다.

당시 기사를 보면 피터 겔브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총감독은 메트 오페라에서도 이 아리아에 대한 앙코르 요청이 나올 것을 예상하고 전략적으로 앙코르를 준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수의 앙코르 연주 의향을 확인한 겔브는 공연 당일 객석의 열광적인 반응을 보고 무대 감독에게 직접 'GO' 사인을 보냈습니다. 무대 감독에 이에 따라 지휘대의 조명을 켰고, 지휘자는 테너에게 앙코르 의사를 제스처로 물었고, 테너가 이에 화답하면서 앙코르 연주가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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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겔브는 2006년 메트 총감독이 된 이후, 오페라 실황을 영화관에서 생중계하고 새로운 레퍼토리를 도입하는 등 다양한 시도로 노쇠해 가던 메트에 활력을 불어넣은 인물입니다. 겔브는 '내 사전에 앙코르 금지는 없다'고 선언했는데요, 관객의 요구에 부응하고 더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는 오페라를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면 앙코르를 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럼 공연 도중 앙코르를 할지 여부는 누가 판단할까요? 관객이 원하고, 가수가 원해도,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앙코르 연주는 불가능합니다. 그럼 어떻게 판단할까요? 2016년 메트 오페라에서 여러 차례 앙코르를 한 테너 자비에 카마레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Gut feeling). 청중이 원하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도니제티의 '돈 파스콸레' 중 아리아 '만약 당신이 어느 날'을 앙코르로 불렀는데요, 보통 테너 아리아의 고음인 '하이 C'보다 더 높은 D 플랫이 나오는 곡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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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앙코르 요청은 대부분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나오는데요, 도니제티, 로시니 등 화려하고 기교적인 창법으로 부르는 벨 칸토 오페라, 그리고 베르디와 푸치니의 몇몇 유명 아리아 정도인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어에 비해 투박한 느낌의 독일어로 쓰인 오페라에서는 앙코르가 거의 없습니다. 특히 '뮤직드라마'로 불리는 바그너의 오페라는 관현악 비중이 크고 아리아가 끝나는 시점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막이 내리기 전까지는 박수를 칠 수 있는 대목이 아예 없습니다.

관객들은 보통 사람들은 꿈도 못 꾸는 아찔한 고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해야 부를 수 있는 테너 아리아들에 특히 매료되는 것 같습니다. 관객들은 유명한 아리아가 나오는 대목을 고대하며 오페라를 관람하고, 가수가 기대에 부응해 이 아리아를 멋지게 노래하고 나면, 뜨거운 박수갈채와 함께 '비스!' '앙코르!'를 외치기도 하는 겁니다. 그 순간만큼은 마치 리사이틀에 온 것처럼, 그 가수의 절창을 다시 한번 즐기고 싶어 하는 것이죠.

오페라 공연 도중 앙코르에 대한 극장의 '정책'은 이렇게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습니다. 안젤라 게오르규 같은 극렬한 '반대파'도 있지만, 스타 성악가들이 오페라 공연 도중 앙코르 요청에 따라 다시 노래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테너 이용훈이 같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했던 '투란도트' 마지막 날 공연에서 '네순 도르마'를 앙코르로 불렀던 '전례'가 있습니다. 하지만 앙코르가 흔한 일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합니다. 만약 앞으로 앙코르가 더 잦아지고 당연히 하는 관행처럼 되어 신선함을 잃는다면, 다시 토스카니니 같은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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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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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문화전문기자 sh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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