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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수)

<베테랑2>가 관객에게 던진 '찝찝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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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윤 영화평론가(dongyunlee08@gmail.com)]
*영화 <베테랑2>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15년, 서도철(황정민) 형사는 재벌가 2세 조태오(유아인)의 범죄행각을 막기 위해 온몸으로 자본 권력의 폭력을 받아내야 했다. 마치 조선 시대 왕의 액운을 없애기 위해 그 기운을 대신 받아내 건강을 잃어야 했던 액받이 무녀처럼, 그는 도심 속 시민들의 핸드폰 카메라가 응시하는 현장 속에서 스스로를 재물로 자본 권력의 폭력에 대한 증거물이 되었다. 이 순간은 류승완 감독이 2015년 당시 대중들에게 각인시키고자 했던 어떤 증상이었다. 현실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본 폭력의 증상들을 영화 속에 선명하게 기입하여 주인공의 희생이 우리의 책임임을 알리려는 일종의 경고장이기도 했다.

감독의 의도가 무엇이든, 1천삼백만 명이 넘는 관객들은 그 순간에 열광했고 높은 흥행 성적으로 응답했다. 그 응답이 감독의 경고에 대한 수긍이었을지, 아니면 폭력을 온몸으로 맞아내는 서도철 형사의 파토스를 소비한 것이었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9년이 흐른 2024년, 류승완 감독은 다시 한 번 서도철 형사를 소환해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또 다른 증상으로 제시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감독이 <베테랑 2>를 들고 나온 것은 흥행작을 다시 한 번 내놓겠다는 의지를 뛰어넘어 중견 감독으로서의 어떤 영화적 목소리를 발화하려는 몸부림일 수도 있다. 그 몸부림이 과연 이번엔 관객들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조금 더 두고 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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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형을 살고 나온 범죄자를 응징하기 위해 몰려든 시민과 범죄자를 보호하는 경찰.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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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사이 뒤 뒤바뀐 사회악적 존재

9년을 기점으로 <베테랑>의 세계관 속에서 바뀐 것이 있다면 바로 사회악의 경계다. 9년 전, <베테랑>의 세계는 악을 자본으로, 선을 법과 제도의 수호자로 분명히 선 그었다. 재벌가들의 비리와 폭력이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았던 당시의 풍토 속에서 대중은 자본의 착취와 그로 인한 억압의 구조를 <베테랑> 속에서 발견하고 열광했다. 분명히 적을 상정할 수 있었던 시대, 현재의 폭력이 자본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보다 명증하게 제시하려 했던 영화적 욕망은 일정 부분 옳았다. 하지만 9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자본 권력이 횡횡하고 있음에도 <베테랑 2>는 대중의 복수심에 초점을 맞춘다. 사회적 범죄에 대해 법과 제도가 합당한 처벌을 내리지 못하는 실정 속에서 대중은 억울함을 분노로 간직하며 또 다른 폭력으로 드러내길 욕망한다. 사회적 악을 처단하길 원하는 대중의 욕망을 영화가 담아내는 것은 동일하나 그 악의 종류가 자본에서 대중의 복수심을 양분 삼는 자들로 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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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로서 현장에서 범행을 계획하는 해치.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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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심에는 현대판 홍길동 '해치'(정해인)가 위치한다. 영화에서 해치는 재난을 막는 신화적 동물로서 범행이 일어난 곳에서 같은 방법으로 되갚아 주는 정의의 수호신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현실 속 해치는 살해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죽어 마땅한 자들을 살해하는 사이코패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해치를 영웅으로 만드는 이들은 사건 현장에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라이브 생방송 중계자들, 정의부장 TV이다. 그들은 스스로 영웅이 되기 위해서 대중의 분노를 양분으로 삼는다. 그들에게 목표는 정의수호가 아니다. 보다 많은 '구독과 좋아요'를 통해, 대중이 보내주는 후원금을 통해 자본을 축적하는 것이 목표다.

여기서 대중은 극악 범죄자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국가에 분노하는 자들이다.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현실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명목으로 국가가 아니라면 '우리'가 그들을 처벌해야 한다며 스스로에게 자격을 부여한 자들이다. 유튜버로 대표되는 라이브 생방송 중계자들이 양분 삼는 대중의 분노는 바로 이러한 자들의 복수심이다. 자신이 복수하는 것은 범죄가 아닌 정의를 수호하는 것이라 착각하는 대중, 그들의 욕망을 발판 삼아 자본을 증식하며 기생하는 자들이 바로 라이브 생방송 중계자들인 것이다.

서도철 형사는 살인에는 '좋은 살인, 나쁜 살인'이 따로 없다며 모든 살인을 범죄로 규정한다. 서도철 형사의 주장에 이의를 달 수 없다. 이는 정확한 명제다. 모든 살인은 범죄다. 하지만 <베테랑 2>는 서도철 형사를 형사이기 이전에 또 한 명의 대중을 대표하는 자로서 설정한다. 그는 형사임에도 응징하고 싶은 범죄자가 있고 법을 이용하여 교묘히 면죄부를 얻는 자들에게 분노한다. 어쩌면 직접 사건 현장 최전선에서 그들의 불의를 온몸으로 마주한 자이기에 '복수'의 욕망은 더욱 간절할지도 모른다. 해치는 이러한 서도철 형사의 욕망을 이용한다. 마치 라이브 생방송 중계자들이 범법자들에게 복수하고 싶어 하는 대중의 욕망을 자양분 삼듯이, 해치는 범죄자를 '죽이고 싶다' 하소연 하는 서도철의 욕망을 근거로 더욱 과감하게 범행을 저지른다. <베테랑 2>는 이러한 서도철 형사의 분열적 심리를 자극적으로 이용하여 관객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품고 있는 범법자들을 향한 복수의 욕망, 과연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9년간 성장한 악의 씨앗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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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부장 TV의 박기자.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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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2>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베테랑>에서의 서도철 형사가 심어 놓은 씨앗들을 배양해 그들의 9년 뒤를 추적한다. 첫 번째 인물은 정의부장 TV의 '박기자'(신승환). <베테랑>에서 박기자는 서도철 형사와 공모하여 조태오의 범행을 기사화 하려는 역할로 등장한다. <베테랑>은 두 사람의 공모를 조태오를 잡기 위한 또 하나의 카드로 제시하며 일정 부분 정당성을 부여한다. 큰 적을 잡기 위해서라면 경찰과 언론의 여론몰이도 필요하다는 태도다. <베테랑 2>에서 박기자는 비리에 휘말려 경질되고 인터넷에서 '정의부장 TV'를 운영하는 유튜버로 등장한다. 해치를 공식화한 인물도, 범죄자를 처단해야 한다며 여론을 선동하는 최전선에 선 인물도, 모두 박기자다.

그의 변질은 이미 <베테랑>에서부터 예견된다. 서도철은 박기자에게 조태오의 범행 행각을 전달하며 사건과 범인들을 시나리오와 배역으로, 전체 상황을 드라마로 은유한다. 이를 받아 든 박기자 또한 '설정 좋다'며 서도철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두 사람에게 조태오의 범행은 그 순간 일종의 '극'으로 전락하며 추상화된다. 범행이 일어나는 현실은 납작하게 압축되고 오직 특종과 여론몰이의 재료가 될 뿐이다. 박기자가 정의란 이름으로 허위 사실을 당당히 유포할 수 있었던 것은 애초에 현실 속 사건들의 피해자를 고려하지 않았던 처사다. 기자로서 그에게 사건은 기사 소재일 뿐이고 사건 속 인물들은 단순한 등장인물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결국 서도철이 범죄자를 붙잡기 위해 행한 모순된 행동이 9년 만에 다시 회귀하여 발목을 붙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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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를 붙잡기 위해 맞서 싸우는 서도철 형사.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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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인물은 서도철의 아들이다. <베테랑>에서 서도철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때렸다며 걱정하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은 때리면서 크는 거야." 폭력을 일종의 놀이로 치환했던 서도철의 태도는 9년이 지난 지금 아들을 학교 폭력의 피해자로 만드는 씨앗이 된다. 서도철에게 폭력은 법 집행 수단이자 자신을 지키는 무기였다. 물론 형사는 법 집행 과정에서 과도한 폭력을 행사할 수 없고 범죄자라 하더라도 먼저 폭력을 휘둘러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는 현장에서 스스로 상처를 내 피를 흘리고 흉기에 피를 묻힌 뒤 범죄자 손에 들리는 방식으로 자신의 폭행을 정당화한 바 있다.

사법제도로 응징할 수 없는 자들을 응징하기 위해 법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을 용인했던 서도철의 가치관은 고스란히 그의 아들이 존재하는 세계를 구성하는 토대가 된다. 그리고 폭력을 일종의 놀이로 쉽게 행하는 아이들에 의해 자신의 아들을 희생당한다. 아들이 피해자가 되었을 때 서도철은 말문이 막힌다. 생각 없이 내뱉었던 자신의 모순된 말들과 행동들의 문제를 그 순간 자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베테랑 2>의 엔딩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서도철의 고백록이 될 것이다.

배심원의 카메라와 유언비어의 온상이 되어버린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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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을 통제하며 범죄자를 대하는 서도철을 지켜보는 해치.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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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2>는 왜 법과 제도가 극악 범죄들에 합당한 형벌을 가하지 않는지 탐구하지 않는다. 그에 대한 탐구는 이미 <부당거래>(2010)를 통해서 한바탕 이뤄진 바다. 검찰 권력의 횡포 속에서, 실적 처리에 급급한 형사 조직의 무능력 속에서, 사건을 조작하고 서로의 이익을 하이에나처럼 나눠 가져가는 부당한 현실을 우린 이미 목도했다. 대신 <베테랑 2>는 서도철 형사를 중심으로 그의 모순이 어떻게 씨앗이 되어 부패한 열매를 맺고 또 다른 악으로 회귀하게 되었는지 밝혀낸다. 서도철 캐릭터에는 <범죄도시> 마석도(마동석)와 <살인의 추억> 박두만(송강호)의 DNA가 심겨있다. <베테랑>에서 무적으로 범죄자들과 맞섰던 서도철은 마석도의 원류다.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증인 사실을 꾸며내려 했던 박두만은 서도철의 원류다. 범죄자를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폭력을 폭력으로 응징하는 영웅으로서의 이미지가 서도철을 정의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러한 서도철의 이미지는 정당한가?

<베테랑 2>가 제시한 이 질문은 시대적 사태에 대한 문제점을 해석하기보다 그 문제의 한복판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책임을 묻는다. 2015년 조태오의 범행을 기록하고 배심원의 눈으로 기능했던 카메라가 2024년에는 유언비어의 온상이 된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가짜 해치, 진짜 해치, 경찰들이 뒤섞이는 난장 속에서도 꾸준히 플래쉬를 비춰가며 카메라를 들고 있는 엑스트라들의 무심함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이 질문이 <베테랑 2>를 보고 나온 뒤에도 한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그 무심함이 나의 것일 수도 있다고 자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베테랑>과 달리 <베테랑 2>를 보고 나온 뒤 남겨진 찝찝함의 근원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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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2>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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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윤 영화평론가(dongyunlee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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