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18 (수)

[기자수첩] 불법 보조금 받고 스마트폰 사겠다는 소비자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비즈



“싸게 살 수 있다는데 왜 주의보를 내립니까.”

방송통신위원회가 아이폰16에 대한 일명 성지점(이동통신 대리점)의 불법 보조금 지급을 모니터링한다는 기사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이다. 일부 성지점은 높은 수준의 지원금을 약속한 뒤, 신용카드 제휴 할인 등을 제안하는 속임수 판매에 나서고 있다. 막상 매장을 방문했을 때 미리 안내받지 않은 부가 조건으로 지나치게 큰 비용을 내고 가입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누리꾼들은 이 같은 위험 요인을 감수하고 차라리 성지에서 스마트폰을 사겠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는 정부의 통신비 인하 정책이 실효성 없이 공회전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정부는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을 폐지, 시장 경쟁을 유도하고 소비자의 통신비 부담을 낮추겠다고 밝혔다. 2014년부터 시행된 단통법은 통신사가 제공하는 보조금의 최대 한도를 법적으로 정해, 오히려 업체 간 경쟁을 저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지원금 공시에 대한 여야 간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았고, 정부의 무관심 속에 단통법 폐지 논의는 진전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한 ‘제4 이동통신’도 무산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2월 통신 3사(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외에 4번째 이통사를 출범해, 시장 경쟁을 유도하고 통신비를 낮추겠다고 밝혔다. 기업들의 저조한 관심 속에 ‘스테이지엑스’가 어렵사리 5G(5세대 이동통신) 28㎓(기가헤르츠) 주파수를 낙찰받았지만, 과기정통부가 ‘자격 미달’을 이유로 취소했다.

정부가 지난 3월 시행한 ‘전환지원금’은 통신 시장 독과점의 대항마 역할을 해오던 알뜰폰 업계만 침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방통위는 시장 경쟁 활성화를 명목으로 통신 3사 간 번호이동 가입자에게 최대 50만원까지 지원하는 전환지원금을 시행했다. 그러나 전환지원금으로 위약금 부담이 줄자 혜택이 더 많은 통신 3사로 알뜰폰 가입자들이 대거 옮겨갔다. 전환지원금은 더 이상 오르지 않고 있고, 과기정통부는 ‘알뜰폰 활성화’로 급히 운전대를 틀었다.

고물가 시대 소비자들의 통신비 부담은 현재진행형이다. 과기정통부가 집계한 지난해 국내 가계통신비 월평균 지출은 12만8100원으로, 전년 대비 고작 100원 줄어드는 데 그쳤다. 이 가운데 단말기 가격은 지속해서 오르고 있다. 지난 7월 출시된 갤럭시Z플립·폴드6는 전작 대비 10만원가량 올랐다.

과기정통부는 통신비 인하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유상임 과기정통부 장관은 지난달 인사청문회에서 “통신비 인하를 넘어 인공지능(AI)과 6G(6세대 이동통신) 시대로의 전환을 어떻게 준비할지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제라도 통신비 인하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 소비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방안은 빨리 시행하고, 불필요한 대책은 신속하게 없애야 한다. 이도 저도 아닌 통신비 인하 정책으로는, ‘성지’로 향하는 소비자의 발걸음을 돌릴 수 없다.

김민국 기자(mansay@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