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수 없는 '전문 변호사' 용어, 2차 가해 행태도
법조계 자정 노력 더해… 가이드라인 제정 필요
SK텔레콤과 경찰청의 딥페이크 범죄 예방 등 안전한 사회 만들기 공동 캠페인 모습. SK텔레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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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해 봐야 (형량은) 달라지지 않는다.' '단순 시청은 처벌받지 않는다.'
11일 한 포털사이트 카페인 '학교폭력·딥페이크 대책본부'에서 회원들이 조언을 구하자 이 같은 댓글이 속속 달렸다. 언뜻 피해자 커뮤니티로 보이지만 실상은 가해자를 위한 공간이다. 수사망을 벗어나거나 형량을 낮추는 법 등 수천 건의 글이 게시돼 있다. 카페 운영 주체는 한 법무법인(로펌)으로 파악됐다. '성범죄 등 형사범죄 전문카페'를 운영하기도 하는 이 로펌은 '변호사를 선임하면 합의를 적극적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글을 올리며 카페를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성범죄 분야엔 '전문 변호사'란 용어를 쓸 수 없는데도 버젓이 내세우는 등 불법 광고 정황도 보인다.
딥페이크 범죄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자 가해자를 대상으로 한 '법률 마케팅'도 늘고 있다. 로펌들은 사건을 조기 종결시킬 수 있다며 자체 블로그 등을 통해 광고하고, 대책본부처럼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커뮤니티를 개설하기도 한다. 불법 광고나 윤리 규정 위반 문제도 불거지면서 법조계의 자정 노력에 더해 구체적인 제재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불법 감수 '성범죄 전문 변호사' 내세워
성범죄 전문 변호사 광고. 홈페이지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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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한국일보가 '네이버 데이터랩'을 통해 검색어 추이를 분석해 보니, 온라인상에서 딥페이크 피해 학교 목록이 공유된 지난달 28일 '딥페이크 변호사' 검색량은 전날에 비해 5배 이상 증가했다. 딥페이크 합성물을 제작해 봤거나 자신이 피해자일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긴 이들의 검색량이 각각 증가한 때문으로 보인다.
피의자나 잠재적 피의자들의 법적 문의가 늘자 이들을 고객으로 영입하려는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이렇다 보니 '전문 변호사'를 내세운 불법 광고까지 버젓이 등장하는 실정이다. 대한변호사협회(변협)의 변호사 전문 분야 등록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변호사가 전문 타이틀을 붙일 수 있는 분야는 총 62개다. 성범죄나 딥페이크 범죄는 별도 분야로 취급되지 않아 '형사법 전문 변호사'로 표기해야 하지만, 수많은 광고글들이 '성범죄 전문 변호사' '딥페이크 전문 변호사'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과도한 홍보 과정에서 피해자를 비난하고 가해자를 '우발적' '호기심' '실수' 같은 용어로 옹호하는 등 2차 가해를 하는 영업 형태도 다수 발견됐다. 한 로펌은 블로그를 통해 소속 변호사 사건을 사례로 들며 '의뢰인은 호기심과 순간적인 충동에 의해 딥페이크를 제작했고, 저희는 고의와 관련한 법리를 근거로 무혐의로 대응했다'고 소개했다. 민고은 법률사무소 진서 변호사는 "피고인의 방어권도 지켜져야 하지만 합당한 처벌의 관점이 아니라 낮은 수준의 처벌이 가능하다고 오인하게 하는 광고는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변협, 가이드라인 만들어야"
2017년 서울 지하철 2호선에 한 로펌이 성범죄 해결 광고를 내걸었다. 진선미 의원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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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수사기관, 재판부, 변호인 역량에 따라 기소·구속 확률이 현저히 차이 나는 성범죄 특성이 삐뚤어진 '변호 열풍'을 키웠다고 분석한다. 정부가 운영하는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지난해 삭제한 딥페이크 범죄는 24만 건이지만 실제 기소 건수는 100건도 되지 않는 등 변호인의 역할이 중요해 영업 경쟁도 달아오르고 있는 것이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집행유예를 받는 패키지 상품을 판매할 정도로 영업에 열을 올리던 로펌들이 딥페이크 범죄 대두 이후 새 블루오션을 찾았다"며 "피해 정도에 비해 처벌 수위가 약하고 법망을 빠져나갈 방법이 많은 만큼 적극 홍보할 여지가 생긴 것"이라고 봤다.
법조계의 자정 노력에만 기댈 게 아니라 가이드라인을 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인 장윤미 변호사는 "변호사업은 공익성을 담보하는 성격이 있기 때문에 정도를 지켜야 한다"며 "물론 가해자는 변호받을 권리가 있지만, 성범죄 전문이라는 타이틀을 임의로 붙여서 수임하는 건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변협 차원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정도를 지나친 성범죄 광고를 규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유진 기자 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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