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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8 (수)

[정진황의 앵글] "4강 아우르는 총체적 외교전략 가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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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락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

편집자주

<정진황의 앵글>은 외교 안보 현안에 대한 주요 인물 인터뷰와 소재를 다룹니다. 안보 현안만큼 다양한 논점이 제기되는 분야도 없습니다. 여러 각도에서 보고자 합니다.
한국일보

정통 외교관 출신인 위성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3일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 사무실에서 초당적 외교안보 모임 결성 등 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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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한미동맹과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를 이뤄냈다. 핵 확장 억제를 통한 핵우산 실효성도 담보했다. 한일관계 개선 틀도 마련했다. 하지만 북핵 고도화는 가속화하고, 북한과 러시아는 군사동맹 수준의 조약을 맺었다. 가치에 기반해 “힘에 의한 현상변경 반대”를 외쳤으나 한중관계는 껄끄럽다. 미국 중심의 외교 전략이 낳은 불가피한 역작용이다. 이 상황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영수회담에서 ‘국익 중심의 실리외교 전환’을 요구했다. 외교정책이 정부 중심이긴 하나 야당 입김도 무시할 수 없는 국회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한반도평화교섭 본부장과 주러시아 한국대사를 지낸 위성락 민주당 의원을 만나 견해를 들어봤다. 위 의원은 "한쪽 근육만 강화되고 다른 쪽은 마비 상황"이라며 "4강을 아우르는 총체적 외교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36년간 외교관으로 활동한 위 의원은 22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외교안보분야 여야 의원 모임인 ‘선진 외교를 위한 초당적 포럼’ 결성을 주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초당적 외교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선진 외교 포럼'에서 어떤 성과를 기대하고 있습니까.

“외교관 생활 동안 느낀 건 우리 외교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이념적이라는 겁니다. 나라 운명을 가를 중차대한 이슈를 국익보다 당파적으로 생각하는 게 많습니다. 당파성 속에서 외교를 다루니까 집권하면 반대 진영과 다르게 하는 데 집중합니다. 거의 모든 정부가 그래왔습니다. 세계 10대 강국인 한국 외교가 나아갈 방향이 아닙니다. 당장 성과를 거두기 어렵지만 이상적인 방향성을 향해 여야가 조금씩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길 바랍니다. 여당에서도 많이 호응해 주셨고, 한 분은 제안하자마자 무조건 하겠다고 했습니다.”

-초당 외교의 중요성은 어디에 있습니까.

“정파적 외교는 일관성, 신뢰성, 지속가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 핵문제가 두드러집니다. 좌우로 흔들렸죠. 그런 걸 줄이는 데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좋은 사례가 있지는 않지만 예컨대 미국 정부가 바뀌고 주한미군에 대한 변동사항이 생길 때 여야가 최소한의 컨센서스를 만든다면 워싱턴이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르겠죠. 초당적 포럼을 제기한 배경에는 정부가 더 국회와 소통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모임의 정파성을 줄이려 합니다. 맨 처음 중국 문제를 다뤘는데 비슷한 위상을 가진 호주나 싱가포르, 캐나다 대사를 초청해 그 나라 사례를 듣고 토론했습니다. 국회 내에서 협력 분위기도 진작하고 정부와 국회의 건설적 관계가 되도록 해 봐야죠.”

중대 외교 이슈, 국익보다 당파 고려
집권하면 반대진영과 차별화에 집중
정파적 외교는 신뢰, 지속성 떨어져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 전환을 언급한 이 대표 말의 의미는 뭡니까.

“외교방향이 이념성에 기울어져 있다는 문제의식으로 봅니다.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 시절 네오콘에 가깝다고 여겨집니다. 한국 외교에서 자유, 민주, 인권 가치가 반영되지 않았던 건 맞습니다. 역대 모든 정부에 걸쳐서 그러했고, 이런 부분을 반영해야 하는 시대적 흐름도 있습니다. 한국이 이걸 도외시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됐습니다. 그래서 윤 정부에서 강력한 가치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이죠. 그렇지만 어디까지 갖고 갈 것이냐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한국의 지정학적인 위치, 분단,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정착 과제, 궁극적인 통일을 생각하면 이 가치를 너무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방향이 틀렸다고 보지 않지만 현실이나 실용 면에서 꼭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가치가 너무 들어가는 건 현실과 충돌할 공산이 많습니다.”

이재명 실용외교로 전환 검토 요구
외교방향, 이념성에 기운 문제의식
가치외교, 현실과 충돌할 공산 커

-정부의 대일외교에 대해 민주당은 비판적입니다. 한일관계가 어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윤 정부가 일본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개선 방향으로 노력하는 건 평가합니다. 하지만 한일관계를 개선한다고 해서 과거사 문제가 해소될 수 없습니다. 고도의 정치력과 외교력을 갖고 대처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당면 장애요인인 강제징용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법원 판결과 다르게 조치해야 하는 데 그러면 큰 혼란이 생깁니다. 어떻게든 반대 진영과 소통하고 여론과 지혜를 모으는 정치적 프로세스를 거쳐서 해법을 찾았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지속가능하고 동티가 나지 않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끝난 사안이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이 없다는 식의 법적 접근을 합니다. 현실 외교가 법적 해석으로만 되는 건 아니거든요. 한국에서 정치적 프로세스를 거쳐 결과가 나오면 일본과 협의해 호응을 더 견인해 냈어야 했습니다. 우리 여론조사를 보면 미묘합니다. 일본이 21세기에 협력해야 할 나라라는 여론이 높은 반면, 일본의 과거사 자세에 대한 비판 또한 높습니다. 어긋나는 심리를 보면 과거사 문제는 그대로 비판하면서 한일 협력을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죠. 과거사와 협력 문제를 어설프게 섞는 일은 조심해야 합니다.”

일본과 관계 중시, 개선노력 평가
과거사 야당과 소통 없이 밀어붙여
정치프로세스 거쳐야 동티 안나


-과거 민주당 정부에선 북한인권 문제에 소홀하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정부가 북한 인권을 중시해야 된다는 방향은 옳습니다만 과합니다. 정부 자료들을 보면 북한 인권을 대북정책의 중심축이라고 써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도 대중국 정책에서 인권을 중심축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민주당이 집권한다면 북한 인권 문제를 종래보다는 의미 있게 다뤄야 합니다. 하지만 중심 축으로 다루는 건 현실적이지도, 실용적이지도 않습니다. 북한인권 문제도 여야 간에 최소한의 컨센서스가 생기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북한인권 중시 방향 옳지만 과해
미국도 중국인권 중심축에 안둬
민주당도 종래보단 의미 있게 다뤄야

-정부는 대북 강경 모드입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폭주로 일각에선 독자 핵무장도 나옵니다.

“북한이 핵능력을 고도화하는 상황에서 대북 억지력을 갖고, 강하게 대처해야 되는 시대적 흐름은 인정합니다. 억지력을 갖기 위해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지만, 그렇게 하면 당연히 중국과 러시아가 반발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방략까지 있었어야 했습니다. 중러가 앞장서 방해하지 않도록 노력했어야 되는 것이죠. 그러한 조치가 없었습니다. 북한에 강하게만 대처하다가 그걸로 안 되니까 나오는 게 독자 핵무장론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취할 옵션은 아닙니다. 제재나 우리 경제가 견딜 수 있느냐는 문제도 있지만 미국의 핵확장억제가 사라집니다. 핵확장억제는 북핵만이 아니라 중국이나 러시아 핵에 대한 대처도 있습니다. 정부가 입장을 표명해 핵무장론을 확실히 불식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미중 전략 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미러 대립에서 우리가 중러를 견인할 여지가 있습니까.

“우리의 필요를 중심으로 봐야 합니다. 북한의 비핵화 등 절체절명의 필요를 전제로 어떻게든 중국과 러시아가 비핵화를 가로막고 한반도를 완전히 분단 상황으로 끌고 가는 일은 막아야 되는 겁니다. 미국과 일본은 물론 중국 러시아까지 통합한 총체적 외교 전략을 필요로 합니다. 한국형 외교 좌표를 가져야 합니다. 중국, 러시아 문제를 따로 해결하려 하면 안 됩니다. 거기에서 우리의 외교적 공간이 나올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것 없이 외교를 해왔습니다.”

우리 필요 기초한 한국형 외교좌표 가져야
특수 상황의 외교적 운신 공간 확보해야
미국 공조 강화, 상충된 대응도 할 줄 알아야

-미국의 영향력과 한미동맹이 안보 축인 상황에서 그런 전략이 가능한지 의문입니다.

“어려운 일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건 고민이 없는 단순한 외교라고 할 수 있어요. 그냥 미국을 따라가면 된다는 겁니다. 지금의 세계 구도에서 한국의 운신 공간이 있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유럽을 보십시오. 미국의 압도적 영향권에 있지만 영국이나 독일, 폴란드가 러시아에 대응하는 정책방향이 다 다릅니다. 요지는 우리의 이해관계를 좀 챙기자는 겁니다. 미국이 불쾌하게 여길 소지도 있겠지만 충분히 조정, 관리해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 외교역량이 국력에 못 미치고 있습니다.”

-러시아대사를 지내셨는데 북러 조약이 우리 안보에 미칠 영향을 어떻게 보십니까.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북러 조약은 실효성이 없어질 것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러시아는 아시아의 반러 다자 연대를 악몽으로 생각합니다. 과하게 반응합니다. 전쟁 이후에도 북러관계는 밀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북한은 운신 공간을 넓히고 안전판을 주는 시대적 환경이 조성됐다고 볼 겁니다. 북한이 핵을 갖고 있어도 중국과 러시아가 도와주는 상황 전개라고 보는 것이죠.”

-미국 대선이 미칠 영향을 어떻게 보십니까. 민주, 공화당 정강에서 북한 비핵화가 빠졌습니다.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가 되면 정책 연속성이 많아 정부로선 편한 부분이 있고,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되면 변화가 크고 거기에 적용해야 하니 부담이 될 겁니다.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성을 감안하면 그렇습니다. 북한 비핵화가 정강에 없는 걸 심각하게 보지 않습니다. 비핵화를 하지 않는다고 볼 수 없지만 주된 관심사에서 멀어진 게 걱정입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미국내 주류적 담론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이죠. 비핵화는 먼 목표로 두고 중간 조치로 갈 수 있다는 것이죠.”

-현 정부의 외교 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국제 정세에 비춰 한미나 한미일 간에 더 많은 공조가 요구되는 건 분명합니다. 보편적 흐름 속에서 한국이 처한 특수 상황에 대한 추구를 버릴 수 없습니다. 외교는 현실과 파워 폴리틱스만 있는 정글인데 교조적으로 접근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방안만 갖고 외교를 할 수 없고 현실이 복잡하니까 그만큼 다양한 대처를 해야 합니다.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면서도 상충되는 듯한 대응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물론 민주당도 많은 준비를 해야 하겠지요.”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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