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17 (화)

[스타트업 리포트] '위기의 농업, 에어돔으로 되살린다' 스마트농장 뒤집은 권미진 애그유니 대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농작물 맛있게 만드는 에어돔 기술 개발
미국에서 무상으로 땅 빌려주며 적극 해외 진출 유치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기후 위기로 2050년 각종 식량 생산이 감소할 전망이다. 이미 지난해 59개국에서 약 3억 명이 심각한 식량 부족에 시달렸다. 사실상 농업의 생산 위기에 봉착한 셈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는 정보기술(IT)을 결합한 스마트 농업을 통해 생산성 증대를 강조하지만 현실이 녹록지 않다. 들어가는 돈에 비해 수익이 크지 않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일각에서 스마트 농업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여기에 기존 기술과 다른 방식으로 반기를 든 여성 기업인이 있다. 2019년 농업과 기술을 결합한 애그테크를 표방하며 신생기업(스타트업) 애그유니를 세운 권미진(32) 대표는 에어돔이라는 독특한 방법의 스마트 농업을 선보였다. 기술을 통해 농업 부활을 꿈꾸는 권 대표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만났다.
한국일보

권미진 애그유니 대표가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인터뷰를 하며 새로운 스마트 농업 기술인 에어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맛있는 작물 만드는 에어돔과 그로와이드 개발


스마트 농업을 위한 권 대표의 두 가지 무기 가운데 첫 번째가 '에어돔'이다. 에어돔은 온도와 습도, 압력 조절이 가능한 완전 밀폐형 식물공장이다. 1,000평 기준으로 높이가 무려 17m인 에어돔은 커다란 비닐하우스를 닮았다. 비닐하우스와 달리 높고 넓어서 내부에 농기계와 차량이 다닌다. 에어돔에서는 주로 과일과 배추, 감자, 무 등 채소류를 기른다. "원래 에어돔은 운동 경기나 공연 시설이었어요. 테니스장, 공연장 또는 쓰레기 매립장으로 썼죠. 이를 농업에 맞도록 기술 개발로 바꿨죠."

에어돔을 감싸는 것은 특수 필름이다. 권 대표는 강풍이 불어도 찢어지거나 뒤집히지 않고 칼로 그어도 망가트릴 수 없는 특수 필름을 개발했다. "특수 필름이 햇빛의 80%를 흡수해 자연스럽게 퍼지도록 하기 때문에 에어돔 안에 음지가 생기지 않아요. 그만큼 내부 작물이 골고루 빛을 받아 잘 자라죠. 따라서 유리 온실과 비닐하우스를 대체할 수 있어요."

이렇게 만든 특수 필름을 여러 개 이어 붙인 뒤 안과 밖에 걸쳐 두 번 덮는 이중 구조로 에어돔을 만든다. "안과 바깥 필름 사이에 1m 이상 공간을 둬 온도 보존력이 뛰어나요.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죠. 그만큼 기후 변화에 영향을 덜 받아요. 또 바깥쪽 공기 압력이 실내보다 1.3배 밀도가 높아 온도 및 습도 변화가 적죠."

에어돔은 놀랍게도 뼈대 없이 필름만 서있다. "특수 블록에 필름을 고정시킨 뒤 공기를 불어 넣으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요."

핵심은 공기압이다. 공기압은 에어돔뿐 아니라 기르는 작물을 맛있게 만든다. 여기에 높은 층고 때문에 분리되는 뜨거운 공기와 차가운 공기를 열교환장치로 모아 온도를 조절한다. "공기압으로 땅과 작물의 뿌리가 같이 호흡해요. 고랭지 배추가 맛있는 이유도 높은 공기압 때문이에요. 즉 에어돔은 고랭지 작물 환경을 기술로 구현한 시설이죠."

결정적으로 기후 변화나 자연재해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원형의 에어돔은 1m까지 쌓이는 폭설을 견딜 수 있어요. 눈이 많이 오면 대류 순환 장치를 이용해 안과 바깥 필름 사이에 따뜻한 공기를 불어 넣어 눈을 녹이죠. 태풍이나 강풍이 불면 내부 공기를 빼서 무너지지 않도록 유연하게 만들어요."

장기간 해가 비치지 않는 장마철 등에는 내부에 설치한 보조등을 켠다. "햇빛과 비슷한 조도를 유지하는 보조등 빛이 필름에 반사돼 산란하면서 작물에 골고루 비추죠."

권 대표는 에어돔의 비용 경쟁력을 강조한다. 에어돔 구축 비용은 작물 종류에 따라 평당 70만~150만 원이다. "보통 스마트 농장 방식의 식물공장은 구축 비용이 평당 300만 원 정도 들어요. 또 스마트 농장은 햇빛 대신 인공조명을 사용해 전기료가 들고 열이 발생해 화재 위험이 있죠. 하지만 전기료가 들지 않는 에어돔은 식물공장보다 저렴하고 투자비 회수 기간도 짧아요. 5년간 재배하면 시설 투자비를 뽑을 수 있어요. 다른 방식의 일부 스마트 농장은 투자비 회수에 평균 10년 걸려요."

에어돔을 보조하는 또 다른 무기는 '그로와이드'다. 그로와이드는 수직으로 쌓아서 농작물을 기를 수 있도록 만든 생산 시스템이다. 그로와이드에 적합한 작물은 두릅, 지황, 당기, 백합, 의료용 대마 등 고부가가치의 기능성 식물이다. 그로와이드 기술은 에어돔에도 적용돼 용수와 양분을 공급한다.

그로와이드의 핵심도 공기압이다. "공기압으로 느슨한 토양 성분을 단단하게 만들어 물과 양분을 2.4배 오래 머금게 만들어요. 그래서 작물의 성장 속도가 땅에 심는 것보다 35% 빠르고 균일하게 자라요."

이를 위해 그로와이드에 들어가는 흙까지 따로 공급한다. "작물 재배에 적합하게 배합된 흙과 종자, 양분까지 공급해 농작물의 모든 생산 주기를 관리하죠."
한국일보

애그유니가 운영하는 경기 화성의 에어돔. 애그유니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테마파크처럼 즐기는 농업


현재 에어돔과 그로와이드는 경기 화성에 있다. "화성에 합쳐 5,000평 규모의 에어돔과 그로와이드를 운영하고 있어요. 에어돔에서 딸기, 블루베리, 바나나 등 약 20종의 작물을 기르죠. 그로와이드에서는 의료용 대마를 재배해요."

제주에도 한국공항공사와 실증 사업 계약을 맺고 에어돔을 만든다. "한국공항공사가 제주에 갖고 있는 목지에 1,000평 규모의 에어돔을 만들고 있어요."

권 대표는 추가 투자를 받아 에어돔을 계속 늘릴 예정이다. 이를 위해 현재 투자 유치를 진행 중이다. 에어돔은 직접 운영하지만 민간 분양도 검토한다. "노는 땅을 무상으로 빌려 직영 에어돔을 만들어 수익을 나눠주는 방식을 검토 중이에요. 여기에 기존 농민을 채용하면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돼요. 나중에 인구 소멸 지역의 예산을 통해 에어돔을 민간 분양해서 농업을 부흥시키는 것이 목표죠."

에어돔 계획은 권 대표가 지향하는 휴먼라이프 기업으로 이어진다. "휴먼라이프 기업은 사람들의 모든 생활과 맞닿아있는 기업이라는 뜻이죠. 기술로 농업 생산을 혁신해 기업형 농업을 부활시키고 관광 사업까지 만들어 낼 수 있어요."

이를 위해 그는 에어돔을 복합 공간으로 구상한다. "에어돔 안에 카페와 식물원, 암이나 당뇨 환자 등에게 좋은 기능성 작물을 체험하는 시설 등을 만들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죠. 더 이상 농업이 땀 흘려 작물 키우는 일에 국한되지 않아요."

여기 필요한 수익은 농산물을 판매해 해결한다. "농산물도 공산품처럼 공급을 안정적으로 만들어야 고정 가격을 유지할 수 있어요. 그러려면 꾸준하게 생산량을 유지해야죠. 이를 위한 대량생산 방법이 에어돔과 그로와이드죠."
한국일보

권미진 애그유니 대표는 에어돔을 미국 싱가포르 등 해외에 수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미국 시애틀에 현지 법인을 세우고 에어돔 수출을 준비한다. 이한호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의료용 대마 재배


애그유니는 의료용 대마 사업도 한다. "2019년 전남 나주에서 열린 농업국제박람회에 참가했는데 그로와이드가 의료용 대마에 적합하다는 해외 기업인의 조언을 들었어요. 암과 우울증 등 신경계통 질환 치료에 쓰이는 의료용 대마는 전 세계 시장 규모가 60조 원이에요. 마침 경북 안동에서 의료대마 특구를 유치해 특구기업으로 허가를 받았죠."

대마는 쓰임새가 많은 식물이다. 의료 성분은 수정되지 않은 암꽃에서 추출하며 줄기를 건축재로 사용하고 씨를 대체육류용 단백질 성분을 만들 때 활용한다. "재배 시설에 수십 대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엄격하게 관리해요. 의료 성분을 추출하면 환각 성분이 포함된 잎 등 나머지를 모두 불태우죠."

그러나 국내에 의료용 대마 시장이 없어 오직 연구용으로만 사용한다. "국내는 규제 때문에 시장이 없어요. 그 바람에 의료용 대마 성분이 들어간 치료제를 모두 수입해요. 나중에 규제가 풀리면 역수출을 고려해 봐야죠."

문제는 의료용 대마 특구 지정이 11월 종료 예정이어서 재배를 계속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특구 연장 여부를 알 수 없어요. 만약 무산되면 투자 기업들의 시설비와 연구비가 모두 물거품이 되죠. 해외에서는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는 능력이 뛰어난 대마에 대해 의료용 등으로 투자를 많이 해요. 국제 경쟁력 차원에서 재고할 필요가 있어요."
한국일보

공기압을 이용해 농작물의 생산성을 높이는 애그유니의 그로와이드 시설. 애그유니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분노가 낳은 창업…해외로 진출


대구가톨릭대에서 무역경영학을 전공한 권 대표는 농산물 유통 회사를 운영하던 아버지를 돕다가 창업했다. 창업의 계기는 분노였다. "아버지 일을 4년간 도우면서 농업 유통 시장을 이해했죠. 그런데 아버지가 사기를 당해 잘못도 없이 책임지는 모습에 화가 나 아버지를 지켜야겠다는 마음에 창업했죠. 이왕이면 균일하지 못한 생산 때문에 수익이 일정하지 않은 농업 생산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어요."

10명이 일하는 애그유니의 지난해 매출은 24억 원이다. 다른 기업들에 에어돔을 지어주고 매출을 올렸다. 올해 매출 목표는 100억 원, 내년 목표는 300억 원 이상이다. 내년 기준으로 50동 이상의 에어돔을 만들 계획이다. 투자는 지금까지 10억 원을 받았다.

미국에 법인을 만들고 해외 진출도 추진한다. "전 세계가 시장이죠. 미국 워싱턴주에서 땅을 무상으로 빌려주겠다는 제안을 해서 올해 초 시애틀에 에어돔을 만들기 위한 법인을 만들었어요. 미국도 기후 변화 때문에 식량 안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 애그테크 유치에 적극적이죠. 말레이시아에 에어돔을 만들어 싱가포르에 식량을 공급하는 방안도 싱가포르 식품청(SFA)과 논의 중입니다."

앞으로 그는 애그테크의 성공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 꿈이다. "앞으로 모든 비닐하우스와 유리 온실을 에어돔으로 대체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아직까지 애그테크 가운데 크게 성공한 곳이 없는데 첫 번째 성공 사례가 되고 싶어요."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