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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키아프서울서 놓쳐선 안될 작품7…정수진에서 사라세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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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올해 키아프의 키워드는 'Expanding'(익스팬딩)입니다. 행사도 커졌고, 장소도 커졌습니다. 물론 컨텐츠와 부대행사도 늘었습니다". '키아프(KIAF)서울 2024'를 보름 앞두고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안수연 한국화랑협회 홍보이사(갤러리박영 대표)는 'Expanding'이란 말을 여러차례 반복했다. 안 이사 말대로 2024 키아프는 엄청난 '확장'을 도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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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 2024.09.07 art29@newspim.com


올해로 23회째를 맞는 키아프서울은 일단 페어장 규모가 대폭 커졌다. 서울 코엑스 1층의 A, B홀로도 모자라 그랜드볼룸과 2층의 더 플라츠까지 점령(?)했다. 전세계 22개국에서 206개 갤러리가 참여하는 '아시아의 매머드 아트페어'로 확대된 데다 특별전과 토크, 공연, 퍼포먼스 등 연계 프로그램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올 키아프에 참여하는 206개 화랑 중 74개가 22개국에서 온 외국 갤러리다. 해외 화랑 비중이 3분의 1이 넘어서며 '글로벌 아트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는 변환점을 맞았다. 키아프서울과 프리즈서울의 파급력과 성장세를 눈여겨본 정부와 서울시는 '대한민국미술축제' '서울아트위크'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비엔날레와의 연계, 상업 신과 비영리 전시행사의 만남 등을 적극 추구하고 있다. 이로써 나라 전체가 온통 현대미술로 들썩이는 9월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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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 2024.09.07 art29@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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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키운 아트페어가 서울을 '아시아의 프리미어 아트플랫폼'으로 정착시킬 것이란 청사진 때문에 삼청동 청담동 한남동 홍대 을지로, 그리고 인천 영종도 등 곳곳에서 화려한 나이트 파티가 이어졌다. 에루샤(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를 떨쳐입거나 럭셔리 명품패션으로 중무장(?)한 셀럽과 아트러버들이 야심한 시각까지 먹고 마시고 신나는 파티를 즐겼다. 메인의 자리에 놓여야 할 예술과 작가는 간 데 없고, 인플루언서와 파티족들이 인산인해를 이뤄 일각에선 '아트 없는 아트파티'라는 지적도 나왔다.

그런데 이같은 '나이트파티' 보다 수백 배 중요한 것은 키아프서울과 프리즈서울로 국내 미술계와 미술시장이 얼마나 질적으로 성장하며, 내실을 다지느냐 이다. 특히 현대미술을 거래하는 플랫폼으로써 다양하고 우수한 작품들이 충분히 모이고, 활발히 거래되며 시장을 활성화하고 미래를 담보하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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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 2024.09.07 art29@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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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성적표는 키아프서울이 막을 내리고, 사후평가와 종합적인 분석을 통해 확인될 터이지만 겉으로 드러난 떠들썩함과 달리 내적으로 예리하게 칼을 갈며 '글로벌 수준의 아트비즈니스 경쟁력'을 확보하는 노력을 얼마나 치열하게 했는지 묻고 싶어진다. 거죽만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역량을 갖춰가고 있는 화랑이 국내 화랑 중 과연 얼마나 될지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키아프서울은 사교장이기에 앞서, 본질은 아트페어인만큼 '고객의 지갑을 열게 하는' 참신하면서도 독창적인 작업들이 핵심일 것이다. 그런 작품들(이를테면 프리즈서울 갤러리현대 부스의 전준호의 야심찬 신작)이 키아프서울에서 종종 눈에 띄긴 했으나, 기대만큼 풍성하진 않았다. 올 키아프서울에서 다시 곱씹어보고 싶은 작품을 골라봤다.

먼저 특색있고 규모있는 기획전을 꾸준히 개최해온 서울 성수동의 더페이지 갤러리는 2024 프리즈서울에 소속 작가인 최명영의 추상작업을 비롯해 박석원 변종곤 이수경 나점수 정수진의 작품을 선보였다. 외국 작가로는 안드레 부처, 무스타파 훌루시, 나탄 콜리, 롭 윈의 작품을 선보여 한국 작가 작품과 공명을 일으키도록 했다.

그 가운데 더페이지갤러리 이스트관에서 현재 개인전(9월21일까지)이 열리고 있는 정수진(55)의 회화가 눈길을 끌었다. 정수진은 지난 20년간 독자적인 시각이론을 바탕으로 혼돈 속에 숨겨진 질서와 자유를 찾는 작업을 이어왔다. 이번 키아프서울에는 2022년 작품인 '옵저버' 시리즈가 나왔다.

깨진 달걀들이 붉은색 머리카락의 인간 위를 떠도는 그림은 일그러진 형상과 일상의 사물이 색채들과 뒤섞여 수수께끼처럼 다가온다. 정수진의 회화는 그러나 특정 내러티브나 상징적 의미를 품고 있지 않다. 작가는 회화를 이루는 기본적 요소인 형상과 색채가 다차원 평면 위에서 어떻게 인간의 의식을 가시화하는지에 관해 집중한다. 나아가 색형 조합의 연구를 통해 시각언어의 고유함과 균형을 찾고 있다. 작가의 회화이론은 적잖이 난해하지만 정수진의 작업은 팽팽한 긴장감과 남다른 개성이 녹아들어 있어 많은 아트러버들을 사로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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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313아트프로젝트가 키아프서울에 선보인 자비에 베이앙의 조각 연작. 모두 나무로 제작된 작지만 흥미로운 조각들이다. [사진=313아트프로젝트] 2024.09.08 art29@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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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313아트프로젝트는 조각의 높이가 8~18cm에 불과하지만 탄탄한 밤톨처럼 알찬 작품을 전면에 배치했다. 화려하고 큰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은 8점으로 이뤄진 이 조각들을 '휙'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조각가 자비에 베이앙(60)이 질 좋은 목재를 골라 모은 뒤, 자신이 흠모하는 사람이나 주변의 지인(그리고 반려견까지)을 3D 스캐닝과 컴퓨터 절삭기법으로 깎아 만든 조각이다.

그 중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1887~1965)를 새긴 검은 흑단(ebony) 조각은 르 코르뷔지에에게 바치는 오마주이다. 나머지 연작도 줄리앙 앨리스 에마뉴엘 마크 등 주변인들을 새긴 목조각들로 에디션이 없는 유니크 피스들이다. 소품이지만 그 사람의 특징이 잘 살아 있는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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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 2024.09.07 art29@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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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수동의 아뜰리에 아키는 독자적인 회화 스타일로 국제 미술계를 공략하고 있는 권능과 정성준의 신작을 출품했다. 이 두 작가의 작품은 젊은 미술가들의 작품을 컬렉션하는 박서보재단에 소장되기도 했다. 또 '동그리'연작으로 널리 알려진 인기작가 권기수의 회화와 신영미 윤상윤 이연미 정유미 정인혜 채지민의 신작을 소개했다. 아울러 현재 성수동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고 있는 스즈키 타카코의 작품과 영국의 샬럿 키츠의 작품도 선보였다.

이 가운데 채지민(41)의 회화는 그림 속에 마치 공간설치 작업이 담겨 있는 듯해 이채로왔다. '그림 속 무대미술' 내지는 '그림 속 또다른 그림'인 셈인데 입체적이면서도 다면적인 작품으로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런던 첼시대학에서 석사학위(회화)를 받은 채지민은 현실과 비현실, 일상과 예술을 오가는 색다른 작품을 선보인다. 회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일점소실점을 역설적으로 이용해 캔버스의 평면성을 불안정한 구조로 사용하며 평면회화에 독특한 시각을 구축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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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 2024.09.07 art29@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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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쾰른에 본거지를 둔 디 갤러리는 키아프서울에 참가하며 막스 에른스트(1891~1976)의 대형 브론즈 조각을 출품했다. 에른스트는 오토마티즘 기법으로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거장이다. 이번 키아프서울에 디 갤러리가 선보인 조각은 에른스트의 조각 중에서도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작가 생전인 1967년에 제작한 작품으로, 작가 사후인 2001년에 유족과 재단이 8점을 다시 캐스팅했다. 서울에 온 작품은 8점의 에디션 중 3번째 작품(3/8)이다. 높이 2m가 넘는 이 청동조각의 작품가는 14억원이다.

서울 논현동의 서정아트는 국내외를 무대로 활동하는 다양한 작가들로 부스를 꾸몄다. 삶과 예술간 접점을 경쾌하게 만들고 있는 나난, 관찰과 사색을 통해 여러 소재를 빛의 유입에 따라 만들어지는 명암으로 표현해온 안다빈의 작품을 선보였다. 또 이춘환 최민혜 피정원 등의 작업을 출품했다.

중견작가 중에는 여러 레이어를 쌓아올리며 세대의 기억과 경험이 중첩되고, 사건의 풍경이 혼재되는 이미지를 선보여온 홍순명의 회화가 눈길을 끌었다. 특히 홍순명의 검푸른 풍경화와 미니멀하면서도 개념적인 회화는 서정아트 부스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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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2024 키아프서울에 아트사이드갤러리가 출품한 김시안 작 '정물 335'. 2024. 캔버스에 아크릴릭. 90x130cm [사진=이영란 미술전문기자] 2024.09.08 art29@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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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통의동의 아트사이드갤러리는 2024 프리즈서울에 소속작가들의 신선하고 과감한 회화와 조각을 선보여 관객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독특하고 탄탄한 풍경 연작으로 올곧은 예술세계를 견지해온 최진욱의 신작과 그의 딸인 최수인의 푸른 풍경화를 나란히 내걸어 이채로왔다. 또 젊은 작가인 김시안(42)의 기이한 회화도 흥미로왔다.

김시안은 일상 속 익숙한 오브제들을 마치 플라스틱같은 질감으로 재구성해 표현한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마주하는 모든 것들의 부가적 요소를 배제하고, 본질만 드러내기 위해서다. 정물로 재창조된 사물과 생물은 어떠한 온도도 느껴지지 않으나 단순하고 객관적이며 때론 솔직한 형태라는 점이 특징이다. 작가는 캔버스 속 모든 것이 가장 이상적인 '무'의 상태로 자리잡기를 원하며 현실의 복잡함과 관념을 덜어낸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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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 2024.09.07 art29@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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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아프의 갤러리현대 부스는 재미 조각가 존배의 철사를 용접해 만든 조각을 비롯해 한국 실험미술의 개척자 이승택의 다양한 작업들이 나와 키아프 중 볼거리가 꽤 풍성한 특급 부스였다. 갤러리현대는 프리즈서울을 전준호 작가의 파격적인 조각 신작으로 꾸민 것과는 달리, 키아프서울은 여러 작가 작업으로 다채롭게 꾸몄다. 즉 한국 현대미술의 주요한 흐름을 이끈 추상회화와 실험미술을 필두로 독창적인 작품세계로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중견 작가와 젊은 작가 작업을 어우러지게 했다. 즉 김기린 김민정 김성윤 김창열 도윤희 성능경 양정욱 이강소 이승택 등 한국 현대미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망해볼 수 있는 여러 세대 작가의 작품으로 부스를 구성했다.

외국 작가 중에는 토마스 사라세노(51)의 공중에 매달린 입체작품이 돋보였다. 공간에 활짝 핀 거울꽃처럼 사랑스러웠는데, 키아프에 두점이 나왔다. 그 중 'Foam 488/15p'는 2019년작으로 코팅한 스테인리스스틸과 금속 와이어로 이뤄졌다. 더없이 차갑고 딱딱한 소재로 부드럽고도 달콤한 작품을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흥미로왔다.

키아프서울은 9월 8일 막을 내린다. 코엑스에서의 아트페어가 끝나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서의 키아프 외부 특별전시는 오는 9월22일까지 계속된다. 이 특별전에는 조현화랑 조선화랑 갤러리가이아 갤러리윤 리서울갤러리 등 국내 10개의 화랑이 내놓은 작품들이 전시돼 공항을 이용하는 여행객들의 시선을 붙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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