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
사업자 간 거래를 하다 보면 크고 작은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대형거래처의 불공정거래로 인한 분쟁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막대한 부담이 되며 사업상 생존의 위기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불공정거래 관련 분쟁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결해야 최선일까?
분쟁 건마다 공정위에 신고해서 조사, 심의, 시정조치 절차를 거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해 법원의 판단을 받는 것이 가장 정석적인 해결방안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피해구제의 신속성 측면에서 한계가 분명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아무리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하려고 해도 조사인력은 제한돼 있고 면밀한 위법성 검토와 피조사인 방어권 보장 등에 요구되는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법원의 소송절차 역시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자금과 조직 여력이 부족한 을(乙) 입장에서 이기기란 만만치 않다.
이러한 공적집행 또는 소송절차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마련해 운영 중인 것이 바로 '공정거래 분쟁조정제도'다. 이는 불공정거래 혐의가 있는 행위로 인해 분쟁에 직면한 사업자들이 대화를 통한 양보와 타협으로 서로 합의해 분쟁을 해결하도록 도와주는 '대체적 분쟁해결 수단'이다. 분쟁조정은 공정위 행정절차나 법원 소송절차를 모두 거치는 것보다 경제적, 시간적으로 당사자 모두에게 더 큰 이득이 될 수 있다. 고대 중국의 병법서이면서 전술 지침서로 널리 알려진 '손자병법'에 제시된 '가장 훌륭한 승리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라는 메시지와 일맥상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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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 분쟁조정제도는 현재 6개 분야(공정거래, 가맹, 하도급, 유통, 약관, 대리점)에 대해 운영 중이다. 2007년 공정거래법에 최초로 법제화된 이후 가맹사업법, 하도급법, 대규모유통업법, 약관법, 대리점법에 순차적으로 추가 도입됐다. 그 성과도 매우 크다. 공정거래 분쟁조정을 대표하는 기관으로서 6개 분야 분쟁조정협의회를 운영하는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은 2007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3만여건이 넘는 분쟁조정 사건을 접수해 매년 수백억원 상당의 직·간접적 피해구제 성과를 달성했다. 2023년 기준으로는 3481건 접수, 피해구제 금액 약 1300억원이라는 상당한 성과를 거둔 바 있다.
공정거래 분쟁조정제도는 이미 대표적인 사적 분쟁해결 수단으로 자리잡았지만, 한 걸음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제도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6개 법률 각각에 순차 도입돼 운영 중인 만큼 그 개선을 위한 법령 개정을 따로 진행해야 하는 제약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전 분야를 아우르는 큰 폭의 개선보다 부분적인 개선만 간헐적으로 이뤄졌고, 6개 분야가 '따로 또 같이' 운영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분야 간 제도운영 규정에 괴리도 생겼다. 가령 조정신청의 각하, 조정절차 종료 사유가 일부 분야에서 다르게 규정돼 있고, 조정업무 담당자 등의 비밀유지 의무 위반에 대한 벌칙도 일부 누락돼 있거나 상이한 수준으로 규정돼 있는 등 분야별로 통일성과 체계성이 미흡한 실정이다.
그래서 공정위는 6개 분야 제도의 통합 운영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가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하는 국정과제의 세부이행과제로 '민간 자율적 분쟁해결제도 확대'를 반영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공정거래 분야에서의 분쟁조정제도 관련 일원화된 법률 제정'을 추진중이다. 이에 공정위는 작년 말부터 올해 8월 초까지 '공정거래 관련 분쟁 등의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에 대한 입법예고, 타부처 의견조회, 공청회, 법제처 심사 등 입법절차를 진행했고, 차관회의 및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확정된 정부안을 지난달 말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6개 법률에 흩어져 있는 제도를 일원화해 통합하는 것은 상당히 난해한 작업이었다. 기존 규정을 살펴 분야별로 달리 규정할 필요가 있는지를 꼼꼼히 검토하고 그렇지 않다면 가장 합리적인 방안으로 통일했다. 그리고 동일·유사 사안 분쟁을 일괄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집단분쟁조정제도'와 같이 일부 분야에만 도입되어 있던 제도를 모든 분야로 확대했다.
또, 피해구제 기능을 근본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제정안에 적극 반영했다. 전문가 도움을 통해 조정 성립 가능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감정·자문제도', 신속한 분쟁해결에 초점을 두고 이견이 없는 사건은 조정절차를 과감히 간소화하는 '간이조정절차' 등을 도입했다.
아울러, 조정원에 피해구제 및 분쟁 예방을 위한 능동적 역할을 부여하는 내용도 반영했다. 기존에는 공정거래법이 조정원 업무 범위를 분쟁조정 기능 등으로 좁게 규정하고 있었으나 이를 개선해, 조정원이 교육이나 상담 등을 통해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의 불공정거래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고 분쟁 발생 이후에는 피해구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를 분명히 했다.
하나하나의 물방울이 모여 강을 이루듯, 통합된 법률에 근거한 공정거래 분쟁조정제도는 중소기업·소상공인의 불공정거래 피해를 보다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구제할 수 있도록 하는 거대한 물결을 앞으로도 계속 이끌어나갈 것이다. 아직 국회 통과라는 큰 절차가 남아 있는 만큼 공정위는 통합법 제정이 신속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조홍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필자〉 공정위에서 조사와 정책 업무를 두루 섭렵한 정통 관료다. 1992년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 행정고시 37회로 공직에 입문해 공정위 조사관리관, 사무처장, 카르텔조사국장, 유통정책관, 서울사무소장, 대변인 등 주요 핵심 보직을 맡았다. 정확한 판단력과 신속한 의사결정, 탈권위적인 성품과 온화하고 합리적인 리더십으로 공정위 직원들의 신망이 두텁다. 공정위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쌓아온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지난해 7월 공정위 부위원장에 임명돼, 민생과 혁신을 지원하는 공정한 시장경제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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